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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 3
-불망비
나호열
잡풀처럼 꺾이지 않고
흥망에 노여워하지 않고
다만 무너져내리고 있는
비석 하나
생각에 겨워 비스듬하여라
잊지 않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무모하며 사치한가
또 얼마나 적막한가
한 자리에 오래
스스로 이름 지우며
그런 생각을 했을까
무심코 지나치는 길손의 뒤를
모퉁이 돌 때까지
전송하는 당신은
누구신가
안녕하신가
어떤 하루 · 14
나호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적막할 것인가
산자락에 걸려 장대비 쏟아내고는
구름은 다시 산을 넘어가는데
해답없는 문제를 나는
너무 쉽게 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의 가슴에
쾅쾅 못질을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시집 『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19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