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ross roof
죽은 것들에 대한 변명 / 임동윤
죽은 햇살이 베란다에 매달려 있다
새들이 돌아간 자리마다
빨갛게 고여 있는 울음
어디로 떨어질 것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다만, 그곳으로 바람이 불어와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을 뿐
입으로 훅 불면 힐끗, 무너질 것 같은
성냥갑 같은 창들
눈에 불을 켜고 어제 그대로다
언뜻 보이는 실루엣은 깡말라 있다
겹겹의 깡마름이 서로를 껴안는 시간
달은 아직 기울지 않았다
모두 얼굴을 숨기고
껍질만 남은 몸을 비우고 있다
구부러진 세상을 길게 눕히고 있다
다시, 하늘이 가까워졌다
훨훨 날아오르지 못한 관절들
배가 되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직은 먼 새벽 / 임동윤
어둠이 싹 튼다
날마다 한 뼘씩 똬리를 튼
새끼들이 꿈틀거린다
꽃이 되어
때론 웃음이 되어
독은 시퍼렇게 자라고
도심은 질주하는 차들로 텅 비어있다
거리의 나무들은
바닥으로 더욱 몸을 낮춘다
사람들의 발뒤꿈치가 갈라진다
살모사가 몸을 뒤튼다
내가 키운 어둠도
칼이 되어 일어선다
젖을 빨던 자궁도 사라지고
마침내 첫사랑 입맞춤도 사라진다
쓰나미 같은, 이무기 같은
내 속의 깊은 못
◀2010년 계간《시와세계》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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