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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창작 강의

22주차/ 진술과 표현의 차이

by 丹野 2006. 2. 15.

 

 

22주차

 

사이버시창작교실

 

 

진술과 표현의 차이

 

나호열

 

문학이 철학이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진리를 찾거나, 진리를 확정하려는 기도를 하지 않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문학은 자신의 길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의 고귀함, 자연의 신비, 삶의 아름다움, 아니면 그 반대편의 인간의 폭력성과 부조리 등 문학이 지니고 있는 시선과 지향점은 회의적이지 않다. 실재론자이거나 관념론자이거나, 色이나 空의 어느 세계에 몸담고 있거나 문학행위는 과학이 지향하는 엄밀한 법칙의 망령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신에 대한 반성을 다소 몽롱하게 드러내는데 전력을 다한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신 속에서 뭉클거리는 관념에 불과한 의미를 裝飾化하는 것이 문학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에 안개를 덧씌우는 것이다.

신문기사는 사실의 정확한 전달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문학 행위는 어떤 장소에, 시간에 일어난 사실로부터 야기된 작가의 정서를 선택적으로 드러낸다. 신문기사의 가치는 그 사실의 정확성에 무게를 두지만 문학 행위는 그 사실의 가치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것이다.

 

몇 달 째 낯익은 몇 사람의 작품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믿음직스럽고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좋은 작품은 끊임없는 소재에 대한 탐색과 발굴 그리고 그 소재로부터 야기되는 주제의 선명함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인데, 끈질긴 습작 태도는 조만간 좋은 작품들이 견고한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이라는 예감을 갖는데에서 회원들의 투지가 놀랍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확 띄는 작품들이 드문한 까닭이 아직도 사실의 드러냄과 드러난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점에서 아쉬움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좋은 작품은 깊은 사유의 맛과 향기가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진술이 아니라 표현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표현이라는 용어는 자칫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진술과 대척점에 있는 방식으로 의미를 좁혀서 사용하고자 한다. 진술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실에 대한 충실한 기록이자 객관적 언명이다. 하늘을 보면서 푸른 하늘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술이다. 표현은 개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푸른 하늘을 달리 묘사하는 것이다. “내 유년의 깊은 마당”이라고 언명했다면 그것은 진술을 넘어서는 표현이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진술에서 표현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작자가 드러내고자 하는 의미의 정확한 포착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어떤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작품의 생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일단, 작가가 욕구하는 바의 내용이 정리가 되면 그것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미화하는 작업이 뒤따르게 된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통해서 무한한 자극과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는데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위의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의 「서시」이다. 1행과 2행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법이다. ‘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 , ‘하늘에 맹세해’ 등등..그런 점에서 1.2 행은 진술에 가깝다. 3. 4행은 그러한 1,2행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의 방식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구축한 강조법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5,6행도 사실과는 거리가 먼 과장된 제스츄어일 수 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라는 언명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 현실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단지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는 의지가 드러날 뿐이다. 이 정도의 시라면 왠만한 시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거두어들일 수 있는 시상이다. 시가 여기에서 끝난다면 단지 한 시인의 토로에 불과할 것이다. 시인은 연을 띄우고 자신의 주관적 생각에서 벗어난 한 행의 묘사로서 시의 긴장감과 균형감각을 찾아내고 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언명은 앞의 모든 시귀들에 팽팽한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일개인의 感想에서 벗어나게 하는 보편적 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의미의 전달에 급급하다 보면 글이 신문기사화 하거나 자신의 감상을 날것으로 독자에게 강요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의미 전달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글을 맛나고 감칠 맛 나게 하는 리듬과 어법, 생략과 압축으로 빚어지는 상징을 적절히 구사하는 습작을 부단히 계속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