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차
사이버시창작교실
새로운 글을 쓰자
나호열
수 십 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실감난다. 暴炎이다.
한낮의 햇살은 마치 송곳처럼 피부를 찌른다. 덥다라는 말조차 덥다.
나도 모르게 쿨cool 한 것이 뭐 없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청량한 느낌! 그렇다,
우리는 청량한 그 무엇인가를 원한다. 차고 시원한 것이 뭐 없을까? 차고 시원한
느낌은 뭐니뭐니 해도 새 것이 최고라 할 수 있겠다.
새 옷, 새 차, 새 집.....금세 새 것은
헌 것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새 것은 헌 것보다 자극과 흥분의 강도가 훨씬 더하다.
어김없이 8월이 오고 '소요문학'의 원고가 오고 메일을 열어보면서
'뭐 새로운 글이 없나?' 가벼운 흥분과 기대에 휩싸인다.
새로운 것의 기대감은 반복과 복제로부터 빚어진 권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창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 계절의 변화, 상투적인 삶의 형식들을 뒤집어 보는 것은 다
내 마음의 작용일 지도 모른다.
'一切唯心造'의 경지를 깨닫는 것은 우리 같은 凡人들에게는 요원한 究竟일지라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겠다고 작심하는 것은 의미가 자못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글을 쓸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새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을 그르쳐 남이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행동(?)과 모양새를 뒤집어쓰는 遇를 범하기 쉽다.
글의 난삽함을 잘못 이해하여 글의 뜻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든다 던가,
우리가 허용할 수 없는 가치를 강요하는 폭력을 선사하기도 한다.
생각을 돌려보면 새로움의 의미라고 생각되는 여러 양상이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미 알고 있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다시 복사,
재생하여 독자들에게 읽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움'에 대한 자각은 글 쓴 이들에게는 매우 신중히 거듭 되새겨
보아야할 문제인 것이다.
시이던, 수필이던, 소설이던 '신작'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다루지 않은 영역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다루지 않은 영역이란, 새로운 주제, 새로운 소재일
수도 있고, 또 그러한 주제나 소재를 다루는 언어에 대한 기법이나 인식이 남다른
것일 수도 있고, 작품을 구성하는 구성이나 형식이 남다른 것일 수도 있다.
생각 같아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새로우면 금상첨화일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
단 한 가지라도 해당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작품은 당당히 신작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소요문학을 대하면서 늘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내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는 낯익은 이름들을 매달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단하지 않은 일상사가 어디 있으며 근심이 없는 날이 어디 있겠는가?
바쁘면 바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생각을 쪼개고 이어 붙이는 공력이 쌓여야
진정한 글을 쓸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소요문학의 앞길은 더욱 튼튼해지고 깊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새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자. 새로움의 원천은 생각을 바꾸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들을 뒤집어 보면 바로 그곳에 삶의,
사물의 진면목이 오롯이 살아 있다. 그래서 글쓰는 즐거움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의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어 보자,
'꽃은 아름답다' 라는 관념을 뒤집어 보면 늘 '꽃이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종잡을 수 없는 이 느낌은 내 마음과 사물이 진정으로 마주치고
합해질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은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희망은 절망 없이는 태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할 때, 내가 원한 모든 것을 다 충족된 상태를
뜻할 수도 있고, 거꾸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다 부질없고 안타까워 보일 때
느껴지는 감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의 새로움은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인 '언어'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전 번호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생략과 압축은 매우 다른 양상을
드러내는 기법이다. 단어와 단어가 모이고 구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갈 때
일으켜지는 화학작용은 마치 성질이 다른 두 물질이 합해져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독자가 전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글은 난해한
것이 아니라 지리멸렬한 것이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글은 독자의 상상을 압박한다.
새로운 글을 쓰자고 감히 제안한다. 내 글이 새로워지려면 다소 역설적인 말이지만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현실감을 돋보이게 한다는 취지에서 글을 쓰다보면 픽션 fiction의 참다운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픽션은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허구에서 태어나는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느낌을 강렬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말은 잘 된 글, 훌륭한 글은 중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잘 된 글은 표면에 드러난 의미말고도 마치 지하수처럼 맑고, 차게 深層을 지나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좋은 술은 오랜 시간 동안 숙성이 되어야 깊은 맛을 지닐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새로운 글은 이와 같이 오랜 동안의 생각의 숙성을 거쳐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열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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