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이 중요한가, 상상력이 중요한가
- 시적 표현의 문제
이 승 하
구체적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면 깊은 관심을 갖고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습작기 때였지요. 그 시절에 제게 큰 충격을 준
시가 있었습니다.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 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 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 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 시간 거리의 직행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니냐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그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도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 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
성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1981년 경향신문 당선작 [겨울의 첫걸음]의 전문입니다. 1
월 1일자 신문에 실린 이 시를 읽고 처음 온 느낌은 ?이렇게
시시한 시가 어떻게 신춘문예 당선작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에 심취해 있던
저로서는 도무지 시 같지 않은 이 시를 뽑아준 심사위원의 심
사 기준이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심사평을 읽어보았지요.
궁극적으로 시도, 우리 두 심사위원의 시까지 포함해서 구
체적인 데서 살아남을 것이다. 채충석의 [겨울의 첫걸음]이
당선작으로 결정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구체적이라
는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허세가 없이 담담한
이 작품은 그러나 진지함과 농스러움의 중간을 걷는 재미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깝고 먼 곳을 동시에 보려는
의지도 가지고 있다.
박재삼․황동규 두 분 심사위원 중 황동규 시인이 심사평을
썼으리라 짐작이 갔습니다. 박재삼 시인의 연세가 높았으니까
요. 구체적이기 때문에 당선작으로 뽑았다는 평은 저를 혼란
케 했습니다. 사상성과 애매성과 상징성 등을 배제하고 구체
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진지함과 농스러움의 중간을
걷는 재미있는 목소리?는 위트의 산물일 터인데 위트는 말재
주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시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고 평이한
산문의 연속일 뿐이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습
니다. 저는 이 시에서 시다운 표현을 한 곳을 마지막 행으로
보았는데, 나머지 모든 행이 시를 쓰기 위한 메모 내지는 일
기 같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당당히 뽑
혔으니 제 혼란이 어느 정도였겠습니까. 수천 편 중에서 딱
한 편 뽑힌 것이니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시적 형상화를 위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은 범작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저는 한동안 갈팡질팡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시가 괜찮다고 하는 친구도 없지 않
았는데 그래도 신춘문예 당선작치고는 너무 약하다는 말을 덧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시는 자신의 실제 체험을
솔직하게 기술한 것이었고, 저는 시에서 체험이 얼마나 중요
한 것인가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 황동규
시인은 1974년에 또 한 명의 심사위원 박재삼 시인을 거론하
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예술가가 농촌에서 자랐다고 해서 곧 그가 농촌 체험
을 갖고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도시생활을 했다고 해서
한 시인의 시가 도시 체험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
이다. 예를 들어 박재삼 같은 시인은 자기 생에서 도시생활을
한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그의 체험은 농촌 내지 어촌
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정현종 같은 시인은 소년시절
을 시골에서 보냈지만, 그이 시적 체험은 절대적으로 도시의
것이다. 예술가에게 체험이란 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과
주고받은 그 무엇인 것이다. [시와 체험], {황동규 문학선 風
葬}, 도서출판 나남, 1984, 355˜6쪽.
이 글을 읽은 1984년에야 저는 황동규 시인이 뚜렷한 신념
을 갖고 [겨울의 첫걸음]을 당선작으로 뽑아주었음을 알게 되
었습니다. 바로 그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제 시를 당선작
으로 뽑아준 분도 황동규 시인이었습니다. 저는 시에서 구체
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으며, 체험
이란 ?생활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과 주고받은 그 무엇?임
도 알게 되었습니다. 황동규 시인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쓰지 못했을 시가 있지요.
몸 한구석에 감출 수 없는 고민을 지니고
병장 이하의 계급으로 돌아다녀 보라
김해에서 화천까지
防寒服 外皮에 수통을 달고
到處鐵條網
皆有檢問所
그건 난해한 사랑이다
난해한 사랑이다
全皮手匣 낀 손을 내밀면
언제부터인가
눈보다 더 차가운 눈이 내리고 있다.
― [太平歌] 제2연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에서 ?병장 이하의 계급?이라는 신
분으로 있었을 어느 시점의 체험이 문맥에 잘 녹아 있는 시입
니다. 군대에서 쓰는 몇 가지 전문용어가 역설적인 제목과 잘
어울려 이 시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체험에는 이런 체
험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것이 다 들어갑니다. 각자가
글을 쓰고 있는 그 시점까지 보고 듣고 느낀 온갖 것이 다 체
험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독서 체험을 비롯하여 예술작품을
본 체험, 영화를 본 체험, 여행을 한 체험, 꿈 체험 등 오관을
통해 감각한 모든 것, 각자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이 다
체험입니다. 그런데 시적 체험은 정서적 체험입니다. 정서적
체험을 시에 담으면 ?공감? 내지 ?감동?을 줄 수 있고,
때로는 ?충격?이나 ?깨달음?을 줄 때도 있습니다. 내 마
음을 움직인 체험은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가슴에
남는 것이 있어야 시가 되지요.
체험은 소설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소설가 가운데 특이한 체험을 했던 사람들을 생각해봅시다.
헤밍웨이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무기여
잘 있거라}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스페인내란 중
스페인을 여러 차례 찾아가 취재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를 위
하여 종은 울리나}는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앙드레 말
로가 캄보디아에 가본 적이 없다면 {왕도}를 쓸 수 없었을 테
고, 중국에 장기간 체류하지 않았더라면 {정복자}와 {인간조
건}을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텍쥐페리가 비행기 조종을
해본 적이 없다면 {남방우편기} {야간 비행} {인간의 대지}
같은 작품을 남길 수 없었겠지요.
그럼 남북전쟁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이 그 전쟁을 배경으
로 한 탁월한 전쟁소설 {붉은 무공훈장}을 쓴 스티븐 크레인
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간접체험의 중요성은 여
기서 드러납니다. 그는 자료도 열심히 찾아보았고, 남북전쟁에
서 살아남은 당사자들(노인네들이었겠죠)과 그 후손을 수도
없이 만나 체험담을 들었다고 합니다. 꼭 등반 경험이 있어야
만 산악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업 체험이 있어야만
해양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자료를 찾
고, 사람을 만나고, 직접 가서 취재를 한 것도 다 체험에 포함
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겠다면 유심히 보는 습관, 메모를 하는
습관, 스크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일기를 쓰거나 편지
를 쓰는 습관도 매우 중요합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서양의 속담
이 있습니다. The poem is born, not made. 시는 체험에서 우
러나는 것을 갖고 써야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체험의 중요성을 다
음과 같이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감정
이라면 젊은 나이에 이미 봇물처럼 넘쳐흐를 정도로 많이 썼
을 것이 아닌가. 시란 정말로는 체험인 것이다.
아마도 워즈워드가 한 ?시란 넘쳐흐르는 감정의 강한 발로
이다?란 말에 반대하는 뜻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사람들은 만들어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신문기
사나 역사책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 세상의 하고많은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만들어낸 것, 즉 허구입니
다. 그리스 신화도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선녀와 나무꾼 전설
도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조
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도 만들어낸 이야기지요. 그
런데 누군가가 만들어낸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줍니
다. 신화나 설화는 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도 얼토당토않은 경
우가 많지 않습니까? 언론에 보도가 되었거나 여러분 주변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충격이나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문학의
감동은 보다 고차원적입니다. 고차원적인 감동은 체험만으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덧붙여 필요한 것이 상상의 힘, 바로 상
상력입니다.
상상력은 허구의 진실을 추구합니다
제 대학 동기 중에 조창인이라고 있는데 {가시고기}라는 소
설을 써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것인데, 그 소설을 읽고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아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그는 전업작가가 되기 전 잡지사 기자를 몇
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깃거리를 많이 갖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가시고기의 특이한 생태였습니다. 그는 직장을
그만둔 이후 자료 조사부터 착실히 했습니다. 그런 후 부자간
의 사랑을 가시고기의 생태 이야기에 대입시켜 아주 감동적인
소설을 썼습니다. 만들어낸 이야기란 일종의 거짓말인데, 그것
이 아주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울게 했다니 문학이란 참 대단
한 것이 아닙니까.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는 사실과 허구의
교묘한 혼합을 지향합니다. 사실인 것도 같고 만들어낸 이야
기인 것도 같고 잘 분간이 안 가는 데 시의 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것이 상상력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체험을 얼마든지 메우고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 상상력입니
다. 에세이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은
역사는 기억에, 문학은 상상에, 철학은 이성에 직결된다고 말
해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에 얽매이지 않고 사실들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사실보다 더
아름답게, 더 추악하게, 더 진실되게, 때로는 더 거짓되게 만
들어야 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인 것입니
다. 상상은 공상이나 망상과는 다릅니다. 상상은 허구의 진실,
즉 문학적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황당무계한 공상
과 혹세무민하는 망상과는 다릅니다. 16세기 영국의 시인 에
드먼드 스펜서는 ?상상력이란 것은 우리들이 전에 경험했던
것을 기억케 하며, 그것을 어떤 다른 환경에 적용하는 능력이
다.?라고 했습니다. 상상력은 체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
며, 체험을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이겠지요.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 P.B. 셸리는 ?상상력이야말로 도덕
적 선(善)의 훌륭한 방편?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슷
한 시대의 존 키츠도 ?상상력이란 것은 죽어가는 열정을 되
살리기 위하여 살[肉]을 잡아두는 불사의 신을 말하는 것?이
라고 했습니다. 체험은 현상과 실체를, 상상력은 꿈과 환상의
세계를 지향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반대
되는 의견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상상력이란 쉽게 말해 조금
엉뚱한 생각입니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 모든 예술의 원천이
됩니다. 셸리의 시를 읽어볼까요.
나와 저 숲의 슬프나 감미로운, 깊은 가을의
정조를 감득하게 되리라. 사나운 정기(精氣)인 너,
내 정신 되라! 격렬한 자여, 너는 나 되라!
시들은 잎사귀들 휘몰아가 새로운 탄생을 재촉하듯,
온 누리로 내 죽은 사상들을 휘몰아가라!
그리고 이 시를 주문 삼아
불 꺼지지 않는 화덕에서 재와 불꽃을 흩어내듯
인류에게 내 말을 퍼뜨려라!
내 입술 통해 아직 잠깨지 않은 세상 향해
예언자의 나팔 소리 되라! 오, 바람이여,
겨울 오면 봄 또한 멀겠느냐?
― 셸리의 [서풍] 끝 부분(강대건 역)
이 시는 셸리가 이탈리아의 아르노 강가의 숲 속에서 폭풍
우를 만났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것입니다. 그러나 시를
잘 읽어보면 폭풍우에 대한 묘사보다는 삶과 죽음, 구원과 부
활의 의미에 대한 치열한 고찰의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떠받치는 힘은 물론 상상력입니다. 우주적 상상력에
입각한 밝은 서정의 정신이 독자를 압도합니다. 상상력은 이
처럼 이 시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폭풍우 광경만을 곧
이곧대로 묘사했더라면 시인의 대표작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
다.
체험과 상상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저는 몇 해 전에 이런 시를 썼다가 뜻밖에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몸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을 모아
눈을 뜨신 아버지
가족 한 번 쳐다보고
천장 한 번 쳐다보고
눈을 감았다가 금방
다시 뜨신다
이 세상 이 순간 이렇게
뜨기는 싫으신 듯
이대로 그냥 눈을 감으면
영원한 암흑,
죽음의 세계일 테니
한 번만 더 눈을 뜨자
한 번만,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사물을 보자고
자, 한 번만 더 눈을 뜨자고
아버지는 안간힘을 다하고 계신 거다
삶의 마지막 암벽에
지금 매달려 계신 거다
오르고 미끄러지기를
갔다가 되돌아오기를
예닐곱 번
마지막 기운마저 빠지자
눈을 크게 떴다가
감으신 아버지
두 줄기 눈물을
주르르 흘리신 뒤
숨을 멈추셨다
그 몇 방울의 눈물로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 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다]란 제목의 이 시를 문예지에서 읽
은 여러 사람한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먼 친척과 문단의 선
배 등 여러 어른이 왜 아버님의 부고를 전하지 않았느냐고 책
망을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가 제 상상력의 소산임을 밝히느라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70대 중반이신 제 아버님이 그 언젠가
숨을 거두실 것을 상상하며 쓴 시가 저를 그렇게 곤혹스럽게
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들의 시를 통해 체험과 상상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백(706˜762)과 두보
(712˜770)는 같은 시대의 시인이고, 이하(791˜817)는 조금
뒤에 활동한 시인입니다.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
聖), 이하를 귀재(鬼才)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그들은 시세계가
달랐습니다. 특히 체험과 상상력의 측면에서 판연히 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술을 소재로 해서 쓴 세 사람의 시를 비교해
봅시다.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하늘에 어찌 술별[酒星]이 있겠으며
땅이 또 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땅에는 응당 술샘[酒泉]이 없었으리.
하늘과 땅에 다 술을 좋아했거니
내 술을 좋아해서 부끄러울 것 없네.
청주(淸酒)는 성인에 견준다 하고
탁주(濁酒)는 현인과 같다고 들었네.
성인과 현인들 다 마시거니
어찌 구태여 신선 되기 바라리.
석 잔의 술로는 대도(大道)로 통하고
한 말의 술로는 자연에 합하거니
그 모두 취해서야 얻는 즐거움
부디 깨어 있는 이에겐 말하지 말라.
― [月下獨酌 1] 전문(김달진 역)
이백이 낭만주의자라면 두보는 사실주의자이겠지요. 석 잔
의 술로는 대도로 통하고 한 말의 술로는 자연에 합한다……
이백 특유의 호방한 기상과 상상력을 발휘한 시가 아닌가 여
겨집니다. 약간의 과장과 도도한 기개가 특징인 이백의 시풍
은 이 시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안록산의 난을 겪은 이백인지라 자신의 실제 체험을 시에
옮긴 것이 적지 않은데, 거의 전편의 시를 자신의 체험을 갖
고 쓴 이는 역시 두보입니다. 특히 장시 [장안에서 봉선현으
로 가며 느낀 감회 오백 자]는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종이 양귀비에 빠져 향락의 극치를 즐기는 온천지 화청궁을
지나면서 두보는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지릅니다. 궐문 안에는
술과 고기가 썩어나는데 길에는 얼어죽은 시체가 나뒹군다고.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봉선현에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딸이
굶어죽은 것이었습니다. 이 비보를 듣고서도 두보는 출정하여
생사 기로에 놓인 병사들을 생각하며 안으로 울음을 삼킵니
다. 두보도 술을 갖고 쓴 시가 여러 편 있는데 그 가운데 이
시를 적어봅니다.
때는 동짓달 곳은 황폐한 마을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이 늙은이의 집이로다.
바라보면 눈보라 속 강 배 지나가고
바람 부는 대로 길섶의 대숲 비스듬히 휩쓸리도다.
추운 물고기들 마른풀 속에 모여들고
지난밤 와서 자던 해오라기 둥근 모래 벌판에서 나는구나.
이런 날 독한 탁주 한 잔이면 내 시름 이겨내련만
돈 없으매 어디 가서 외상술을 마시랴.
― [草堂卽事] 전문(고은 역)
이 시를 번역한 시인 고은은 이백이 취해 있었다면 두보는
늘 깨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간과하지 않은
두보의 시정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겠지요. 자연은 유구하
건만 (전쟁으로) 황폐해진 마을의 늙은 화자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습니다. 한잔 술로 위안을 받고 싶지만 돈 한푼이 없
어 아쉬워한다는 내용이지요. 두보는 늘 자신의 처지를 외로
워했고 세상살이를 괴로워했던 시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작
품에 상상력을 발휘한 흔적이 거의 없고 관찰한 바를 그대로
썼다는 것입니다. 관찰이 곧 체험이 된 시가 [草堂卽事]입니
다. 이하의 시를 봅시다.
유리 술잔에
호박빛 진한 술
술통의 술방울은 빨간 진주런가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우니 기름이 우는 듯
비단병풍 수놓은 장막에 향기로운 바람 감도네
용 피리 불며
악어 가죽 북을 두드리며
꽃다운 미녀 노래하고
가는 허리 춤춘다
하물며 봄날은 장차 이울려 하니
복사꽃도 비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유령(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 [將進酒] 전문(이동향 역)
마지막 행에 나오는 유령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술을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하의 시는 환상성과 초현실성으로
말미암아 애드가 앨런 포의 소설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요. 이
하는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시풍과는 달리
직접적이고 격렬한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냈고, 기괴한 환상과
감각적인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당대(唐代)라는 당대(當代)를
넘어서서 중국 시단에서 ?귀재?라는 별칭을 얻었던 것입니
다. 이 시에서도 용을 삶고 봉황을 굽는다느니 용 피리를 불
고 악어 가죽 북을 두드린다느니 하는 주술적인 장면이 보입
니다. 그의 대부분의 시가 영계를 넘나들고 있어서 체험보다
는 상상력에 입각해 시를 쓴 시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환타지 소설이 오늘날 크게 유행하고 있는데 그런 소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상상력이 없다면 어떻게 진행될 수 있겠
습니까. 시는 사실과 허구의 접점에 서 있는 것이며, 체험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밀가루 반죽으로 빵을 만들거나 국수를 만들
거나 자장면을 만들거나 그것은 만드는(글을 쓰는) 사람의 자
유이겠지요. 제 결론은 체험과 상상력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시에 따라 체험이 우세하면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
될 것이고 상상력이 우세하면 모더니즘이나 상징주의 계열의
작품이 될 것입니다.
참고 :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문학사상사)
www.poet.or.kr/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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