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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깃털에 기대다

by 丹野 2010. 10. 22.



깃털에 기대다

         - 누란의 미녀 미라*  / 김경성   

 

빛이 들지 않는 깊고 푸른 무덤 속에 그녀가 있었다

4 천년 세월을 풀어놓았던 것은

촘촘하게 잘 짜인 그녀의 털옷이었으니

아직도 뜨개바늘 만지던 손길 묻어나

지나간 시간이 실 끝을 따라 흘러나오고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가느다란 손가락 또한 섬세한 지문의 흔적이 그대로이니

발등을 감싸고 있는 가죽신 풀어

발바닥에 찍혀있는 길의 흔적 따라가

그녀 옆에 누워 사랑을 본다

그녀의 얼굴 위에 입술을 대어본다

바람도 햇볕에 녹아내리는 사막 한가운데

바람이 앉았다 떠나버린 누란의 왕국, 문 닫힌

성벽에 기대어 옷자락 여미고 은은하게 웃는다

몇 천 년의 세월도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늘

사랑의 증표로 머리에 꽂아준 깃털에 깃든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 것일까

유리벽 안에 갇혀 있어도 그녀는 웃는다

사랑 앞에서는 그 무엇도 적이 될 수 없다

모래 바람도 햇볕도 무기가 되지 못한다

어떤 말이 하고 싶어 지금까지 웃음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일까

누란의 미녀 미라, 사랑의 증표 깃털에 기대어

사랑에 대해서 다시 쓰려 한다, 사랑이란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그렇게

시간도 뛰어넘는 것

 

 


 

*누란의 미녀 미라 - 우루무치 신강성 박물관에 있는 나이 40세 키 160cm

                                 혈액형 0형의 지금도 웃고 있는 미녀 미라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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