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집트 역사
|
■ 이집트 역사 |
|
|
|
|
|
|
 |
|
|
이 시기는 기원전 3000년경까지의 시기로서 이집트는 상/하로 분열되어 있었다. 상이집트 동맹은 폭풍의 신 세트가 지배하는 나카다가, 하이집트 동맹은 매의 신 호루스가 지배하는 베네트가 중심도시였다. 나르메르(Narmer)는 전설의 왕 메네스와 동일인으로 추정되며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처음 통일한 이집트 최초의 파라오이다. 그는 상/하이집트 접경지역인 멤피스에 수도를 건설하였다.
|
선왕조Predynastic ( - 3000BC)
|
|
|
|
|
|
초기왕조 Protodynastic(2920-2575BC)
|
|
|
제1왕조와 제2왕조의 시대이다. 주변지역을 정복하며 영향력을 넓혔지만 내부적으로는 호루스와 세트 추종자 사이의 갈등이 상존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제2왕조 첫 번째 파라오의 이름인 하텝세켐베(Hetepsekhemwy)는 ‘두 세력이 평화에 이르다’라는 뜻이며, 마지막 파라오의 이름인 카제켐베 (Khasekhemwy)는 두 신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
|
|
|
|
고왕국 Old Kindom (2649-2152BC)
|
|
|
제3왕조로부터 제6왕조의 시기로서 최초의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이다. 제2왕조 마지막 파라오인 카제켐비는 아들이 없어 장녀의 아들인 사나트 (Sanahht)와 죠세르(Djoser)에게 계승되었다. 죠세르 시기의 재상 임호텝 (Imhotep)은 스텝 피라미드의 건축자이며 의사, 천문학자, 현자로서 후에 신으로까지 숭배되었다. 가자에 있는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쿠푸(khufu), 카프라(khafra), 멘카라( Menkaura) 파라오의 피라미드이다.
|
|
|
|
|
제1중간기 (2152-2065BC)
|
|
|
이집트가 분열된 혼란의 시기로 제7왕조로부터 제11왕조 전반기가 이에 속한다. 이 혼란은 기후변화에 따른 대기근으로 초래되었다고 보여진다. |
|
|
|
|
중왕국 Middle Kindom (2040-1781BC)
|
|
|
제11왕조 후반기와 제12왕조의 시기이다. 테베의 왕자였던 Nebhepetre MentuhotepⅡ가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으며 51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테베가 이집트의 수도가 되었다.
|
|
|
|
|
제2중간기 (1781-1550BC)
|
|
|
혼란의 시기로 제13왕조부터 17왕조가 이에 속한다. 힉소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
|
|
|
|
|
|
|
제18왕조부터 20왕조의 시기이다. 아흐모스(Ahmose)는 힉소스를 추방 하고 이집트 고왕국 시대의 영토를 회복하였으며, 그의 아들 아멘호텝 (Amenhotep) 1세는 남쪽으로 영토를 더욱 확장하여 번영의 기틀을 마련 하였다. 하셉수트(Hatshepsut)는 투트모스(Thutmosis) 1세의 딸이며, 또한 이복오빠인 투트모스 2세의 왕비이다. 투트모스 2세가 젊은 나이에 사망 하자, 하셉수트는 나이 어린 투트모스 3세의 섭정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투트모스 3세는 투트모스 2세가 소실로부터 얻은 아들로 정식으로는 이 소년이 파라오였다. 하셉수트는 처음에는 어린왕의 이름으로 통치 했으나 얼마 안가 남장을 하고 스스로 파라오라 자칭하며 20년간 통치했다.
| |
|
|
|
|
|
|
|
신왕국 (1550-1075BC)
|
|
|
투트모스 3세는 정권을 장악한 뒤에 하셉수트의 모든 기념물들을 파괴 하였으며, 무려 17차례의 전투를 벌여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아멘호텝(Amenhotep/Akhenaten) 1세는 아몬 신앙과 결별하고 태양으로 대표되는 유일한 보편적인 신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인 신 아톤(Aton)으로 신앙을 바꾸려 하였다. 자신의 이름도 "아몬이 넘쳐있는 신성있는 테베의 지도자" 의 뜻인 아멘호텝프 대신 "아톤을 섬기는 자"를 뜻하는 아켄아톤(IkhnAton) 으로 바꿨으며 텔 엘 아마르라로 천도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 투탕카멘은 다시 아몬 신 숭배를 부활시켰다. 람세스(Rameses) 2세는 왕중의 왕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67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그는 히타이트와의 치열한 전쟁 끝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수 많은 건축물을 후대에 남겼다. 카르낙 신전, 라벳세움, 아비도스 대신전, 누비아의 아부심벨 신전 등이 대표적이다.
|
|
|
|
|
제3중간기 (1075-664BC)
|
|
|
제21왕조로부터 25왕조의 시기이다. 이집트가 다시 상/하로 분리되었다.
|
|
|
|
|
말기시대 (664-332BC)
|
|
|
제 26왕조로부터 31왕조의 시기이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제가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다.
|
|
|
|
|
그리스시대 (332-30BC)
|
|
|
알렉산더 사후 이집트는 그의 휘하의 장군들에 의해 분할되었으나 그 중 프톨레미가 이집트를 차지하여 파라오가 되어 마지막 왕조를 열게 된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7세가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패해 자결한 후 이집트는 로마제국에 부속되었다.
|
|
|
|
|
로마시대 (30BC-AD313)
|
|
|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이 세력을 잡으면서, 기독교로 귀의하게 되고, 서기 313년 교회의 교리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신로마 정통파는 콥트교 라 알려져 있는 이집트의 국교와 여러 국면에서 부딪히는데, 이것이 종교 갈등의 시작이다.
|
|
|
|
|
그 후
|
|
|
서기 641년 아므르 빈 알 아스가 이집트를 점령해 이슬람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1517년까지 이집트는 무슬람교의 지도자 칼리프가 지명한 통치자들의 휘하에 있었다. 1517년, 터키 술탄 셀림은 이집트를 오트만 왕국의 일부분 으로써 터키의 소유국임을 공표한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 하면서, 1801년까지 통치하게 된다. 1805년, 알바니안 출신인 무하마드 알리 가 집권을 하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이집트 튼튼한 경제적 발판을 세우게 된다. 계속된 전투로 알리는 이집트 왕국을 아라비안 반도와 수단 까지 확대시켰다. 무하마드 알리 죽음 이후 이집트는 점점 유럽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영국은 1차 세계 대전 때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선포한다. 영국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1922년 영국은 이집트를 푸아드 1세의 통치아래 독립된 왕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1952년 모하메드 나귀브 장군 휘하에 군대 장교들이 왕을 내쫒고, 이집트는 1953년 공화국이 된다.
| |
|
■ 이집트 신화
<개요>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면 이집트 신화와 신들에 대해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집트는 다신교로써 수많은 신과 여신을 섬겼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는 것 조차 힘들 때도 있다. 이집트는 42개의 도시국가(노모스)에서 각각 그들의 신을 섬겼으며 신전과 무덤을 만들었다.
|
|
|
멤피스 |
테베 |
헬리오폴리스 |
헤르모폴리스 |
히에라콘폴리스 |
덴데라 |
프타 |
무트 |
아몬 |
토트 |
호루스 |
하토르 | |
|
|
|
|
|
|
|
|
그리고 이집트 신들은 대개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태양신이지만 상황에 따라 각 신은 적절한 역할을 담당 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은 3단계로 계층화하여 살펴볼 수 있다. 아툼과 누트 등은 세상을 창조한 신 으로 최고의 신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신전도 없고 누구도 이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그 다음이 이들의 자녀 혹은 손자인 이시스, 오시리스 등으로 이들은 이집트 역사에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신전은 전국에 산재되어 있고 이들 신의 가족은 지방과 도시마다 각자 고유한 숭배의 대상으로 발전되어졌다. 마지막 단계는 이류 신들로 일상적 생활을 지배하는 잡신이다. 여행, 출산, 가계들을 관장하는 신들로서 서민들에게 숭배를 받았고 신전을 집안에 두고 모셨다.
계층화된 신은 다시 수평적으로 양분된다. 태양의 신 라와 호루스는 매일 하늘을 순환하고 오시 리스와 그의 동생인 세트는 지하세계를 순환하면서 일년 동안의 풍요로움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이집트 신화를 보면 매우 복합적인 가족 관계를 볼 수 있다. 예컨대, 호루스는 어느 경우에는 오시리스의 아들로 나타나고 이집트의 왕으로 죽으면 호루스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죽음에서 부활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부인/어머니를 탄생시킨다. 이러한 복합적 이미지는 종교에 그대로 투영되어져 매우 다양한 신전이 건립되었다.
<신들의 계보>
|
|
|
|
 |
- 통화/환전
이집트의 화폐 단위는 이집트 파운드 E£이다. 이것은 100 피아스트르(Piastres)와 같은 가격이다.
지폐는 E£1, 10, 20, 50짜리와 1, 25, 50 피아스트르 짜리가 있다. 동전으로는 5, 10, 50 피아스트르
짜리가 있다.
이집트에서는 달러가 일상적으로 통용이 되므로 이집트 돈은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구매하고
팁을 주는 작은 규모의 지출에만 사용하게 되므로 많이 환전할 필요를 없다. 환전소에서는
환율에 따라 계산을 하지만 일반 상점 등에서는 보통 달러와 파운드의 교환비율이 1:6이다.
■ 기초회화
이집트를 다니다 보면 이집트인이 동양인을 보면 먼저 ‘야베니’라고 물어 온다. 이것은 일본인이냐고 묻는 것이다. 다음은 중국인을 뜻하는 ‘차이냐’라고 묻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이집트에서는 ‘꼬리’라고 발음한다.
이집트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매우 못사는 나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88 올림픽과 특히 2002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특히 이집트는 2010 월드컵 유치를 추진 중이라 2002년 월드컵을 매우 유심히 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꼬리’라고 답변하면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다음은 이집트의 가장 일상적인 회화들이다.
전 세계에 공통으로 통용되는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지만 실제로 이 숫자를 만든 것은 인도인이고 아라비아 상인을 통해 각지로 전파되었기에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 이집트에서 사용되는 숫자는 다음과 같다. |
|
|
|
|
 |
■ 이집트 한국 대사관
*주소: 3, BOULOS HANNA ST., DOKKI, CAIRO, EGYPT
*전화번호: (20-2)761-1234/7, 748-6976, 748-6958, 748-6954
*근무일 : 월요일 - 목요일
■ 전기
220V를 사용하는데 콘센트 플러그가 우리나라 220V와 같은 종류를 사용하거나 굵기가
가는 형태의 플러그를 사용한다. 공항이나 면세점 등에서 멀티플러그를 구입해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http://kropla.com/electric2.htm 에서 세계 각국의 콘센트 형태를
확인 할 수 있다.
■ 전화
이집트에서 한국에 전화를 하는 것은 거의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호텔에서 전화를
사용해도 연결이 잘 안되고 통화연결이 안되어도 사용시간 큼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호텔에서 서울로 구내전화를 이용할 경우>
0 또는 9번(외부연결번호) + 00 + 82(한국국가번호)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공항에서 서울로 국제전화를 이용할 경우>
0 + 82(한국국가번호) + 2(0을 뺀 지역번호) + 전화번호
<Collect Call>
한국통신 365-5082 , 데이콤 3655-64
■ 물 / 음료수 / 술
물은 반드시 사먹어야 하는데 Barak 이라는 브랜드의 물이 50피아스타 - 1파운드에 판매된다.
음료수는 비싼 편인데 콜라캔은 4파운드 정도 한다. 술은 외국인에게만 판매되는데 술을
좋아하는 분들은 공항면세점이나 기내에서 사가지고 가는 것이 편리하다
출처 / http://www.egyptmania.com/ egyptmania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