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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한라산 外

by 丹野 2009. 5. 11.

 

 

       한라산/ 나호열

       

       

       

       한라산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6

        

      어디서나 그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누구의 기쁨인가요


      산봉우리 하나 넘고 그대 알았다 하고


      그대의 마음 내려 놓은 잔 물결에


      바다를 보았다 외쳤던


      부끄러운 메아리는 어디에 품어 놓으셨나요


      각혈하듯 쏟아내던 붉은 마음은


      서늘한 하늘 한 자락 끌어내려


      푸르게 감춰 놓으시고


      그저 멀리는 가지 말라고


      키돋이를 하시는 모습


      누구를 그리워하는 까닭인가요


      머리 위에 뭉게 구름


      청노루 울음 소리 들리네요

       

       

       

       

      고사리 꺾기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5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 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 섶에 숨어 있는

      고 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 없다

      뽑히기를 평생 바랬으나

      수많은 군중 속에 하나에 불과한 것이

      행인가 불행인가

      문득 이 세상 모든 나무의 시조가

      바다에서 올라온 고사리라는 진화론의 한 구절이

      전생을 스치고 지나는 순간

      꼿꼿한 고사리들이 불쑥 돋아 올랐다.

      소도 말도 먹지 않는다는 고사리

      나도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p r a h a  

      
      
         
       

       

       

       

       

       

      저 소나무 /나호열


                   -제주도 기행. 7

       

       

      말하자면 무턱대고  우리가 세상에 내린 것처럼

      정류장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입산을 결심했던 것

      길에는 바름과 그름이 없으므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따라온 공동묘지는

      덧없는 시간의 비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산에는 절이 없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돌아서면 산이 가로 막았던 곳.

      나는 발목을 묻었다

      고요히 절간이 되어가기로 한 것은 아니었으나

      용케 허리가 휘지 않은 것은 저 채찍질

      산과 바다 바람이 밤낮으로 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새가 날아와서 잠시 머물렀으나 집은 아니라 했고

      산꾼들도 고단한 등허리를 내밀지 않았다

      독야청청은 내가 바란 바는 아니었으나

      맞은 매 만큼 독이 올랐다

      그대들은 모른다

      날름거리는 혀가 겨냥하는 푸른 하늘 

      또아리를 튼 채로 허물을 벗으려 안간 힘 쓰는

      서서 우는 뱀의 꿈을 해독하지 못한다

      속이 텅 빈

      저 소나무

       

      약속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8


       

      바다를 옆에 두면 되요

      바다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되요

      걷고 또 걸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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