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外 / 나호열
한라산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6
어디서나 그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누구의 기쁨인가요
산봉우리 하나 넘고 그대 알았다 하고
그대의 마음 내려 놓은 잔 물결에
바다를 보았다 외쳤던
부끄러운 메아리는 어디에 품어 놓으셨나요
각혈하듯 쏟아내던 붉은 마음은
서늘한 하늘 한 자락 끌어내려
푸르게 감춰 놓으시고
그저 멀리는 가지 말라고
키돋이를 하시는 모습
누구를 그리워하는 까닭인가요
머리 위에 뭉게 구름
청노루 울음 소리 들리네요
고사리 꺾기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5
맛은 없지만
밥상에 오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한
고사리 꺾으러 간다
새벽 해 뜨기 전 이라야
찔레 덩굴 속이나 풀 섶에 숨어 있는
고 놈이 보인다는데
내 눈엔 그 풀이 그 풀 같다
대궁을 잘라도 여덟 번 아홉 번
순을 올린다는 오기가
나에게는 없다
뽑히기를 평생 바랬으나
수많은 군중 속에 하나에 불과한 것이
행인가 불행인가
문득 이 세상 모든 나무의 시조가
바다에서 올라온 고사리라는 진화론의 한 구절이
전생을 스치고 지나는 순간
꼿꼿한 고사리들이 불쑥 돋아 올랐다.
소도 말도 먹지 않는다는 고사리
나도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p r a h a |
|
저 소나무 /나호열
-제주도 기행. 7
말하자면 무턱대고 우리가 세상에 내린 것처럼
정류장에서 한참을 걷다보니 입산을 결심했던 것
길에는 바름과 그름이 없으므로
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따라온 공동묘지는
덧없는 시간의 비석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 산에는 절이 없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고
돌아서면 산이 가로 막았던 곳.
나는 발목을 묻었다
고요히 절간이 되어가기로 한 것은 아니었으나
용케 허리가 휘지 않은 것은 저 채찍질
산과 바다 바람이 밤낮으로 나를 후려쳤기 때문이다
새가 날아와서 잠시 머물렀으나 집은 아니라 했고
산꾼들도 고단한 등허리를 내밀지 않았다
독야청청은 내가 바란 바는 아니었으나
맞은 매 만큼 독이 올랐다
그대들은 모른다
날름거리는 혀가 겨냥하는 푸른 하늘
또아리를 튼 채로 허물을 벗으려 안간 힘 쓰는
서서 우는 뱀의 꿈을 해독하지 못한다
속이 텅 빈
저 소나무
약속 / 나호열
- 제주도 기행. 8
바다를 옆에 두면 되요
바다를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되요
걷고 또 걸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요
'나호열 시인 >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산 外 (0) | 2009.05.19 |
---|---|
나호열 / 패랭이꽃을 보다 (0) | 2009.05.12 |
모란 (0) | 2009.05.03 |
당신에게 말 걸기 (0) | 2009.04.29 |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 (0) | 2009.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