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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세상과 세상 사이

한국문학의 안과 밖

by 丹野 2009. 2. 16.

 

 

 

                             한국문학의 안과 밖

                                

 

                                                                                  나호열  

    

                    

             

 지난 4월 12일 일본의 젊은 여성작가가 자신의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읽는다. 몇 번씩 꼼꼼이 읽는다.


한국계 日 유명작가 사기사와 씨 자살


 "일본인, 남.여. 그런 속박이 싫어요. 그런 속박의 안에서 안주하는 것도 싫고요"


이양지, 유미리씨 등과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계 여성작가로 꼽히는 사기사와 메구무(鷺澤萌.35)씨가 지난 12일 도쿄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메구로(目黑) 소재 사기사와씨의 아파트를 방문한 친구가 화장실 안에서 목을 매 숨져있는 그녀를 발견, 신고했다. 경찰은 사기사와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고 동기를 수사 중이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사기사와씨의 신간 「웰컴.홈」을 출간한 신초사(新潮社)의 편집담당자인 스기하라 노부유키(杉原信行)씨는 "짐작이 갈 만한 문제는 아무 것도 없었다"며 "순간적인 감정의 혼란으로 자살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기사와씨는 오는 6월15일 도쿄의 한 공연장에서 자신의 원작을 스스로 각색, 감독한 무대극 '웰컴.홈!'을 공연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져 일본 문단은 그녀의 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기사와씨는 최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해왔던 일기를 지난 9일 접었다. "최근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않다"고만 이유를 밝혔다.


일본 경시청 히몬야(碑文谷)서 관계자는 그녀의 사망 이유에 대한 연합뉴스의 취재에 "사생활에 관련된 문제라 일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한국인인 사기사와씨는 지난 1987년 여고 2학년인 18세에 문학계 신인상(작품 '강변길') 최연소 수상자로 화제를 뿌리며 등단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1989), '달리는 소년'(1990), '진짜 여름'(1992) 등을 잇따라 냈다.


부친의 삶을 형상화한 '달리는 소년'과 재일동포의 삶을 소재로 한 '진짜 여름'으로 일본 최고권위의 신인 등용문인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차례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 물망에 올라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사기사와씨는 흔히 한국계인 유미리씨와 비교되지만 '가족 담론'에 집요했던 유씨와는 달리 재일동포의 정체성 문제에 오랫동안 매달렸다.


대표적인 작품집은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여기에 수록된 '진짜 여름'은 재일동포인 주인공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본인 애인에게 들통날까봐 조바심치는 줄거리를 담고 있으며 표제작인 '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는 한국을 찾은 재일동포 2세인 여성의 심적 방황을 형상화했다.


사기사와씨가 숨지기 열흘쯤 전인 지난달 31일 그녀를 인터뷰했던 홋카이도(北海道) 신문의 무라카미 무쓰미(村上睦美) 기자는 사기사와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인터뷰 당시에는 그녀에게서 별다른 이상한 감을 느끼지 못했다"며 "그녀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에서 사기사와씨는 일체의 '속박'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일본에서는 지금 획일적인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고 울퉁불퉁함은 허락되지 않는 '보통교'(普通敎)의 교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런 교의에 반항하고 싶은 기분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근작 「웰컴.홈」은 2명의 남성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과 계모와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화해에 이르는 줄거리의 작품 등 2편을 담고 있다. 사기사와씨는 집필 배경에 대해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고 속으로는 곯은 가족이 아닌 형태는 비록 일그러졌어도 꿋꿋한 가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기사와씨는 20대가 돼서야 자신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뒤로 십 수년에 걸쳐 한글을 배우고 한국을 찾았다. 그러면서 재일동포라는 정체성을 자문자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그런 십수년간은 자기 재구축의 시간이었다"며 "이것이 내 재산이 됐다"고 토로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인의 신분을 가진 한 여성 작가의 죽음을 다룬 뉴스의 이면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동질감 에서인가? 그녀가 한국인의 기상을 일본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그들을 감응시켰기 때문인가? 일본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공인받는 아쿠타가와(芥川) 상에 여러 차례 수상 후보로 올랐다는 그녀의 필력을 아쉬워했기 때문인가? 지금도 신분 차별의 관습이 엄연한 일본 땅에서 일본인들은 왜 한국계 작가들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는가?

시마자키 토손의 「파계」는 백정의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는 한 지성인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모든 작가들에게 필수적으로 통과해야할 관문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내 짧은 식견으로는 많은 한국계 작가들이 수상의 명예를 얻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 찾기에 대한 그들의 열열한 분투와 회귀성을 일본인들이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정체성의 화두에 일본의 문학인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정체성은 그 영역의 너비와 깊이에 있어서 반드시 행복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양지나 유미리, 그리고 사기사와 메구무와 같이 일본에 거주하는 작가이면서 이회성 같은 작가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성을 만나게 된 것은 작년 9월에 있었던 제 3회 한민족 문화공동체대회에서였다. 재외동포재단과 대산문화재단 그리고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에서 주관한 이 콘퍼런스에서는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 작가 시인들이 참가하여 국내의 학자, 문인들과 폭넓은 의견과 정보를 나누는 장이었고, 이회성은 한 섹션의 발제자로서 참가했던 것이다. 그는 20 여분에 걸쳐서 자신의 문학관을 토로하였는데, 그 내용보다도 더 깊이 있게 내게 다가온 것은 그의 더듬거리는 한국어였다. 그의 한국어 구사수준은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면 자리를 박차고 싶을 정도로 지리멸렬했지만, 나는 바로 그 점이, 부정확한 발음과 어눌한 말투가 이회성이라는 소설가가 한국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짧은 시간 동안 그와 나눈 대화 속에서 나는 한일합방 이후에 굴절되어온 슬픈 가족사의 단면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팽겨쳐진 자신을 끊임없이 탐문하는 그의 분투를 체감했다.  한일 합방 이후 건너간 그의 선대는 일본에서도 사할린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곳에서 성장한 이회성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러시아(구소련 )로 넘어가 버린 사할린에 가족을 남겨두고 일본에 거주하게 됨으로써 이산의 아픔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단지 민족이라는 개념에의 천착을 뛰어넘어 좀 더 넓은 시야에서바라본 이데올로기와 민족성을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성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군의 재일 동포 작가들 이외에도 러시아 중국 중근동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수백 만의 동포가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민족문학이 무엇이며 과연 그러한 개념의 틀 속에 행복하게 안착할 수 있는 작가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되물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7,80년대 백낙청, 구중서 등이 제기한 민족문학론은 남, 북한 문학의 변증법적인 통합과 발전, 세계문학의 틀 속에서의 한국문학의 定置, 무엇이 한국문학인가를 묻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재가동되고. 담론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국내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은 국외에서 모국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작가, 시인들에 대해서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을 겸한 해외나들이 정도로 동포작가들을 만나고 해외문학 심포지엄을 여는 것으로 교포 작가들에게 할 일을 다했다거나,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초청강연 등으로 우리의 소임을 다했다는 생각은 너무 가볍다. 진정한 교류는 그들이 모국어로 글을 쓰는 한, 그들의 작품은 예술성과 작품의 가치로 엄격히 평가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재외동포재단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재외동포문학상을 제정하고 다섯 번 째 재외동포문학상 수상집을 발간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작품집은 비매품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국가에 속한 기관으로서 가지고 있는 제한된 소임 때문일 것이라고 일견 긍정하는 바이지만,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재외동포작가들을 위한 지원과 성원이 시급하다고 보여진다. imoonhak.com (인터넷문학신문),문학의 즐거움 등의 인터넷 매체에서 재외동포작가들에게 상시적인 작품 발표의 장소를 제공해 주고는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한국문학에서의 변방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부분으로서 동포문학이 단지 소수의 문제, 恨의 정서를 다룰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큰 틀에서의 정체성의 탐구에 매진하여야 하고 그 동력을 누군가는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과거의 수동적이고 운명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세계 각국으로의 이주가 성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재외동포 문학은 과거의 풍경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20세기의 이민자와 21세기 벽두의 이민자는 그 스펙트럼이 다르다. 끊임없이 이민 1세가 탄생하고 그 2, 3세가 등장하는 한 정체성의 화두는 그들의 전면에 나타나는 화두일 수 밖에 없다.

 

 재외동포작가들은 국내 작가들이 바깥 세상을 바라다보는 창이 될 수 있고 세계로 나가는 출구가 될 수 있다. 또 재외동포작가들에게 한국 문학은 모천 회귀의 휴머니즘을 제공해 주는 영원한 발전소가 될 수 있다.


 한 한국계 작가의 죽음을 접하면서 국내의 권위 있는 문학상에 교포 작가들이, 그 나라에 귀화하였으나 한국어로 글을 쓰는 시인들이 수상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망상인가?   


           ⊙ 발표문예지 : 예술세계 200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