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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저녁의 집 / 박서영

by 丹野 2009. 2. 13.

 

 

 

저녁의 집

 

박서영

생선궤짝들이 흘리는 냄새는 지독하다
어렴풋한 추억이라고
누군가 거짓말을 했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모든 만남이 농담처럼 지나가지만
그대가 떨어뜨린 눈알과 입술과 호흡이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갈치였다가 조기였다가 고등어였다가,
서로를 채우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사랑엔 뚜렷한 몸이 없다

텅 빈 궤짝을 떠나지 못하는
썩은 생선
냄새란 이런 것이다
病中에도 기어코 저녁이 오고
가로등 불빛이 궤짝 속에 엉덩이를 내리까는데
사방에서 몰려오는 시간의 내장이 붉다
저렇게 많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다 먹을까
소화시킬까
생선비늘들이 허옇게 달라붙어 있는 궤짝 몇 개
불빛에 능지처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