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창작 강의

시어의 선택과 배열 / 김동수

by 丹野 2009. 2. 5.

 

 

 

 

 

 

                                    시어의 선택과 배열

 

 

                                                                                                                김동수(시인, 백제예술대 교수)

 

 


1. 아름다운 표현

시의 감동은 내용보다는 형식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것을 얼마나 아름답고 효과 있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마치 장미꽃을 신문지에 싸서 주느냐 아니면 예쁜 포장지에 잘 정리해서 주느냐의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하이데커(M. Heidegger)도 ‘시는 언어의 건축물’이라 했다. 그러기에 시는 표현이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다운 표현(형식)은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쾌감은 독자에게 정서적 고양감(高揚感)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할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즐거운편지」전문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한 젊은 날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풍부한 감성의 서정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제목에서 시사하는 반어(시의 내용은 즐겁지 않음)와 역설(2연의 그치지 않는 사랑), 반복(그대, 사랑, 기다림 등)에 의해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그 고독한 이별의 예감이 암시적 환기로 내면화되면서 스스로를 달래는 독백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우수적 분위기에 알맞은 시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언어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기에 모든 일상어는 시의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일상어가 그대로 시어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일상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결합하여 그것을 갈고 다듬어 유기적 생명의 형태로 구성해 가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달려 있다.

위의 시에서처럼 시는 단어와 단어, 어휘와 어휘, 문맥과 문맥과의 적절한 선택과 배열 속에서 유발되는 특수한 정서적 쾌감이다. 그러기에 시란 결국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 곧 심미적 형식을 조합하는 능력에 다름 아니다. 마치 멜로디가 다른 리듬이나 화음과의 어울림 속에서 아름다운 음(音)을 발산하듯, 한 편의 시도 다른 언어와 언어와의 잘 짜여진 표현 구조 속에서 발생되는 아름다운 미감(美感)이다.




2. 시어의 선택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첫째 주제에 따라 시어가 선택되고, 둘째 이어 그 어휘들을 적절한 의미 단락으로 결합해 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컨대, ‘보슬비 내리는 거리’라는 문장에서 ‘보슬비’를 ‘가랑비’로 바꾸어 보자. 이럴 경우, 의미상 두 문장의 내용은 비슷(유사)할지는 몰라도 문맥상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시인은 아래의 예문과 같이 유사한 단어들 예컨대, ‘이슬비’. ‘가랑비’, ‘보슬비’, ‘안개비’ 중에서 심사숙고 끝에 ‘보슬비’를 선택했을 것이다. ‘보슬비’가 주는 내포적(이미지, 은유, 상징 등) 의미가 그와 유사한 단어들과 변별되는 뉘앙스상의 차이를 분명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슬비 내리는 거리

이슬비 -흐르는 -신작로

가랑비 -흩날리는 - 도로

안개비 - 젖은 - 골목

한 편의 시에 사용되는 시어는 이같이 ‘유사성(類似性) 원리’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 ‘유사성 원리’란 위의 예문들처럼 여러 유사어 중에서 특정 단어를 선택하는 경우로써 이 또한 내포적 의미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이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 -중략- /
술에라도 취해볼꺼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꺼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중략-/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꺼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꺼나.
-신경림, 「겨울밤」에서

위 시의 ‘주막집’, ‘술집색시’, ‘돼지’ 등도 유사성 원리에 의해 선택된 시어들이다. ‘주막집’은 보다 허술하고 규모가 작은 ‘포장마차’나 ‘선술집’보다는 규모가 조금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막집’은 도회풍의 ‘맥주홀’보다는 작은 규모로서 시장 사람들이나 인근 마을의 단골손님들이 자주 드나드는 읍면소재지 정도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정감어린 서민들의 정취가 배어 있는 술집이다. 그러기에 그런 분위기에 알맞은 시어로서 선택된 단어가 ‘주막집’이다.
‘술집 색시’란 시어 선택도 이와 같다. ‘술집 아낙’도 ‘술집 아가씨’도 그렇다고 ‘술집 여자’와도 그 내포적 의미가 다르다. 그러기에 그와 유사한 단어들 중에서 고심 끝에 ‘술집 색시’란 단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술집 색시’에서 풍겨오는 시적 분위기는 분명 시골 농촌 젊은이들과 어울린다.
뿐만 아니다. 1970년대 당시 농촌에 남아 있던 젊은이들의 형편을 감안하여 볼 때 그들의 재산 증식 수단으로 할 수 있던 일(사업) 또한 ‘돼지치기’ 정도가 알맞았을 것이다. 이 또한 탁월하게 선택된 시어이다. 그러기에 그보다 규모가 작은 ‘토끼치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보다 자금이 많이 드는 ‘소(牛) 사육’도 아닌 그 중간항으로써 그들의 생활수준에 맞추어 선택된 시어가 ‘돼지치기’이다.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 선술집
- 포장마차
- 맥주홀

술집 색시 싸구려 분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 술집 아낙
- 술집 아가씨
- 술집 여자

올해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 토끼라도
- 개라도
- 소(牛)라도

시어는 이처럼 ‘유사성 원리’에 의하여 선택되고 있다. 하지만 그 시어들이 또다시 문맥과 문맥으로 이어져 가면서 ‘구문적(構文的) 결합’을 이루게 되는 과정에서는 ‘연계성(連繫性) 원리’가 또다시 작용하게 된다. 유사성의 원리에 의한 내포적 의미도 소중하지만 그와 함께 하나의 주제를 향해 문장 전체에 나타난 문맥과 문맥상의 구문(構文的) 결합은 의미적 인접성이 그 바탕을 이루게 된다. 신경림의 「겨울밤」에 나타난 시적 주요 소재와 이미지들도 이 인접성 원리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얼핏 보면 우리 농가에서 흔히 쓰이는 일상어를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 평범한 일상어의 연계가 이런 유사성과 인접성 원리에 의해 짜여진 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1970년대 우리네 농촌 젊은이들의 실상, 곧 당시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농촌 젊은이들의 좌절과 울분이라고 하는 ‘시대의 흑점’에 초점을 맞추어 시어 하나 하나를 선택하고 배열한 시인의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야곱슨에 의하면 시의 내부에는 어떤 일관된 시적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나아가는 원리라고 하였다. 나병철도 그의 ‘문학연구의 방법’에서 ‘선택의 축’은 어떤 단어가 선택되는 수직적 관계를 말하는데, 이렇게 선택된 단어는 ‘결합의 축’ 즉 구문적 연결의 축으로 나아가면서 시적 등가성(詩的 等價性)의 패턴을 만들어 간다고 보았다. ‘시적 등가성’이란 어떤 시를 만드는 동질적 원리이다. 이 동질적 원리에 의해 단어들이 선택되어 연결되어 있기에 시의 구문(構文) 관계 역시 연계성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3. 배열과 구조 방식

시어의 배열이 이어져 가면서 이미지가 형성되고, 반복된 그 이미지들이 지속, 집중, 확산되어 가면서 한 편의 시는 비로소 이미지의 구조화라는 생명적 틀(form)을 갖게 된다.

어린 딸은 오늘도
제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집은 조용했고
아내는 아직 시장에서 오지 않았다.
아빠, 하고 부르며
가끔 아이는 혼자가 아님을 확인했고
그 때마다 옆방에서
나는 부드럽게 응, 하고 대답했다.
보이지 않아도
어떤 굳센 힘이 서로를 묶어 놓았고
아이는 다시 안심했다
그래, 우린 혼자가 아니야!
귀를 열고 소리치면
저 숲과 바람도 따스한 응답을 보내 줘
어느 휴일의 저물녘
어린 딸애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작은 하나를 깨달았다.
-이진엽, 「뜨거운 신호」, 전문
어린 딸애와 주고 받는 신호,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이 믿음 하나, 이 믿음의 끈이 있기에 이제 그 어떤 고난의 강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으리라. 이런 맥락으로 ‘딸아이’와 ‘나’라는 이미지가 처음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 ‘어린 딸- 아이- 서로- 아이- 우리- 어린 딸애’가 그것이다. ‘딸과 나’라는 시적 대상이 이처럼 시종일관 지속적 이미지 구조로 연계되어 있다.

누가 떨어뜨렸을까
구겨진 손수건이
밤의 길바닥에 붙어 있다.
지금은 지옥까지 잠든 시간
손수건이 눈을 뜬다.
금시 한 마리 새로 날아갈 듯이
금시 한 마리 벌레로 날아갈 듯이
발딱 발딱 살아나는 슬픔
-문덕수, 「손수건」, 1975년


서녘 하늘에 붉은 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달린 노란 들녘이 눈 시립니다.
문득, 저 붉은 해 속이 궁금해집니다.
붉은 해를 가방 속에 쑤셔 놓고 집으로 달려갑니다.
가방에 눌려 손톱 속의 봉숭아 꽃물만해진 해가
나를 빤히 쳐다봅니다.
-강명수, 「붉은 해」전문, 2005

시상이 집중 배열되어 있다. 금시 살아서 일어나 날아갈 듯 꿈틀거리고 있는, 그것도 ‘지옥까지 잠든 시간’에 눈을 뜨고 있는 손수건에 대한 독자의 시선이 잠시라도 다른 곳에 해찰할 수 없도록 시상이 온통 손수건에 집중ㆍ 밀착되어 단단한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고 있다.

강명수의 시에서도 이미지(붉은 해)가 집중 배열되어 있다. ‘서녘 하늘, 노란 들녘, 봉숭아 꽃물’ 등이 노을에 지는 ‘붉은 해’의 이미지 형성에 집중되어 한 곳(가방 속)으로 밀착ㆍ응집되어 글자 하나하나가 전체와 긴밀하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라.
- 김동명, 「내 마음은」,전문

4연 전문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거의 비슷한 시상이 병렬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첫 행이 제 2연의 ‘내 마음은 촛불이요’, 제 3연의 ‘내 마음은 나그네요’, 제 4연의 ‘내 마음은 낙엽이요’로 이어지면서 1연에서 전개된 시상의 짜임새가 기본 패턴이 되어 제 4연까지 그대로 병렬적 동격으로 이어져 있다.

팬지가 발가벗고 웃고 있다.
아이가 맨발로 걸어가
말을 건다.
무슨 말을 했을까
엄마가 꽃처럼 웃고 있다.

물버드나무 왕눈을 뜨고
앨더브라 거북이가
등에 봄을 지고 엉금엉금 기는 연못가
그 옆에 노인이 하나
아장 아장 걷고 있다.
-김완철, 「어린이 대공원」,전문


이 시에서도 어느 봄날 어린이 공원의 한가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마치 두 폭의 그림처럼 나란히 병렬적 구조로 이미지가 확산되어 있다. 호수를 중심으로 한 쪽에선 ‘팬지/ 아이/어머니’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물버드나무/ 거북이/ 노인’이 절묘한 대칭 구도를 이루며 봄날 평화롭고 한가로운 공원의 내밀한 정취를 그리고 있다. ‘엄마가 꽃처럼 웃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서는 ‘노인 한 분이 거북이처럼 아장 아장 걷고 있는’ 봄날의 풍경이 옴니버스(omnibus)식 병렬로 나란히 전개되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