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는 아니게 (1)
너무 오래는 아니게
서 있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로 와 달라붙었다고, 나는 파리잡이 끈끈이처럼 그것들을 몸에 붙이고
눈이 뜨거워져서
잠깐,
아주 잠깐, 울었다고......
그 자리에 서서 한바뀌를 돌아도 보이는 것은, 온통 폐허
내게 덤비는 것은, 찬 바람
나를 스치고 가는 것은, 내 몸을 건너가는 새들의 부리
내 그림자 위에 겹쳐지는 새들의 그림자
새들은 어디서 날아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명주실로 꽁꽁 묶었나,
그림자 하나 흘리지 않고 그대로 데리고 가는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방인 / 김경성
부레,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지느러미 흔들며 뭍 위로 올라갔다
해당화 가시에 찔린 바람의 파편 갯바닥에 흩어졌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청둥오리 떼 그물에 갇힌 채 날아갔다
새들은 제 그림자를 명주실로 엮어서
그림자 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바다 끝까지 끌고 갔다
물 빠져서 번들거리는 갯벌의 가슴 어루만지며 미끄러지는
바람, 그 바람을 타고
세상의 모든 것이 와서 달라붙었다
지느러미 몇 번 흔들었을 뿐인데 너무 멀리 왔다
새들의 부리 끝에 걸린, 겨울 볕
왈칵 쏟아졌다
닿을 수 없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그림자 말아서 몸에 넣고
물속 깊이 침잠해야 한다고, 이제 그만 돌아가야할 때라고
감아지지 않는 눈꺼풀 껌벅거렸다
너무 많은 것을 보아버린 눈, 비늘 한 장 떼어 가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사진과 인문학 > 소래 폐염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폐허 / 바람의 발바닥 (0) | 2009.01.28 |
---|---|
폐허 / 너무 오래는 아니게 (2) (0) | 2009.01.28 |
폐허 / 바람의 길 (0) | 2009.01.28 |
폐허 / 꼭, 화가는 아니어도 (0) | 2009.01.28 |
폐허 / 깃털 편지를 읽다 (0) | 2009.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