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경치
-낯선 마을의 달
심재휘
겨울과 봄의 사이 또는 낮과 밤의 사이에서
생각하면 나는 어느 쪽에 서 있었던가
낯선 마을의 초입에서 어느덧 달이 뜬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도
젊은 사람들은 마을 공터에 모여
알 수 없는 저수지의 깊이에 관해서
차고 기우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돌리는 깡통 속의 불은
제 목숨으로 속없이 둥굴게 빛난다
허나 제자리에서 오래 돌수록 밝음도 지치는 것
그러면 타다 만 불씨들을 발로 비벼 끄듯
엉덩이에 붙은 검불을 떨어내듯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 것이다
마침내는 어둠에 빚지게 될 터이다
그랬던 것이다 저 낯선 마을의 달이
어둠에 깃들어 사는 것처럼
나는 어느 쪽에서도 서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을 하나가 불현듯 내게로 다가와
나를 슬쩍 슬쩍 지나갔던 모양이다
그랬던 것이다
p r a h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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