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praha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초저녁 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 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 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탈한 자가 문득 > 향기로 말을거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의 경치 / 심재휘 (0) | 2009.01.10 |
---|---|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0) | 2008.11.06 |
꽃잎처럼 / 이수익 (0) | 2007.08.17 |
풍경의 깊이 / 김사인 (0) | 2007.07.30 |
금강 하구언 갈대밭에 갔을 뿐 / 이화은 (0) | 2006.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