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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루이 말 (Louis Malle)

by 丹野 2008. 12. 5.

 

 

 

루이 말 (Louis Malle)
도덕과 금기를 넘어서는 주제와 늘 새로운 연출 스타일을 추구한 프랑스의 거장
IMDb 링크 http://www.imdb.com/name/nm0001501/
출    생 1932.10.30. 프랑스 태생, 1995.11.23 별세
주요작품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1957)
<마음의 속삭임> (1971)
<라콤 루시앙 > (1974)
<굿바이 칠드런 > (1987)
<데미지 > (1992)
포토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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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장편>
  • 42번가의 반야 _ Vanya on 42nd Street(1994)
  • 데미지 _ Damage(1992)
  • 밀루의 어떤 5월 _ Milou en mai(1990)
  • 굿바이 칠드런 _ Au Revoir Les Enfants(1987) :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 OCIC상
  • 알라모의 총성 _ Alamo Bay(1985)
  • 크랙커스 _ Crackers(1984) : 베를린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 앙드레와 저녁식사 _ My Dinner With Andre(1981)
  • 아틀란틱 시티 _ Atlantic City(1981) :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 프리티 베이비 _ Pretty Baby(1978) : 칸 영화제 기술대상
  • 블랙 문 _ Black Moon(1975)
  • 라콤 루시앙 _ Lacombe Lucien(1974)
  • 마음의 속삭임 _ Le Souffle au Coeur(1971) : 아카데미 각색상 노미네이트 &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진출, 황금종려상 노미네이트
  • 파리의 도둑 _ The Thief Of The Paris(1967)
  • 비바 마리아! _ Viva Maria!(1965)
  • 도깨비불 _ Le Feu follet(1963) :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 베니스 영화제 Italian Film Critics 대상
  • 매우 사적인 일 _ Vie Privee(1962)
  • 지하철의 소녀 _ Zazie dans le metro(1960)
  • 연인들 _ Les Amants(1958) :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_ Ascensure Pour L'Echafaud(1957)
<단편>
  • Crazeologie (1953)
  • Station 307 (1954)
  • Histoires extraordinaires (1968) (segment "William Wilson")
<다큐멘터리>
  • 침묵의 세계 _ Le Monde du silence (1994)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Vive le Tour (1962)
  • Calcutta (1969) : 칸 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 Humain, trop humain (1974)
  • Place de la r?publique (1974)
  • Close Up (1976) Short
감독 소개 루이 말은 1932년 프랑스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IDHEC’(프랑스 국립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이전에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말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선정된 <조용한 세계>(Le Monde du silence, 1956)를 자크 쿠스토와 함께 공동으로 연출하여 주목 받았다.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사형수 탈출하다>(Un Condamne A Mort S'est Echappe, 1956)의 조감독을 거쳐 자신의 첫 장편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 1957)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되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 음악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를 사용하였는데 당시 영화 음악으로 재즈가 사용된 예가 없었기에 큰 화제가 됐었다. 또한 ‘코메디 프랑세즈’의 헤로인이었던 잔느 모로를 전격 주연으로 발탁, 이후 누벨 바그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말이 이 작품으로 흥행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나이가 24세였다.

역시 잔느 모로의 주연으로 완성된 말의 <연인들>(Les Amants, 1958)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사회적으로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불륜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서는 외설로 판정 받아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루이 말은 종종 누벨 바그와 잘못 연결이 되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엄밀하게 말하면 트뤼포, 샤브롤, 로메르 등의 누벨바그 기수들의 연출 스타일과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뿐더러 ‘까이에 뒤 시네마’와도 직접적인 연결이 없기에 누벨바그의 군단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부 작품이 누벨 바그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트뤼포는 그의 영화 <지하철의 소녀>(Zazie dans le m?tro, 1963)를 보고 큰 영감을 받아 말에게 열정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말은 주로 사회의 도덕과 금기를 넘어서는 주제와 새롭게 시도되는 연출 스타일로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는 감독이었다. <도깨비 불>(Le Feu follet, 1963)은 우울증에 빠진 남자의 짧은 외출과 자살의 과정을 그렸고, <마음의 속삭임>(Le Souffle Au Coeur, 1971)은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소재로 하였으며 <라콤 루시앙>(Lacombe Lucien , 1974)은 2차 세계대전 중의 프랑스 비시 정부 하의 나치 정권의 몰락을 담아 냈다. 이 영화는 아카데이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1978년에는 브룩 쉴즈가 주연한 <프리티 베이비>에서 10대의 성 매매춘을 다뤘고 92년작 <데미지>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한 여성의 파격적인 사랑을 연출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리고 <굿바이 칠드런>(Au revoir Les enfants, 1987)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세자르 상을 석권하며 그의 작품세계가 건재함을 세계에 드러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불어와 영어 모두를 사용하여 영화를 연출한 루이 말은 사실적인 심리 묘사와 짜임새 있는 드라마 구조를 세우는 작품 경향을 보여 헐리우드 연출 기법에 가까웠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카메라가 집중하는 곳은 부조리한 사회, 그리고 그 안에 뒤엉켜 있는 인간과 그들의 꿈틀거리는 욕망이었다. 1995년 사망까지 19편의 장편을 만들었으며 이외 단편과 다양한 다큐멘터리로 약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작품 세계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간 독자적 시네아스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자유로운 형식적 일탈을 감행하면서도 고전영화적인 틀을 유지했던 것과 달리, 이후 루이 말은 파격적인 주제와 다양한 스타일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베니스영화제의 은사자상 수상작인 <연인들>(1958)은 자유로운 형식적 실험 외에도 과감한 성적 표현으로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고, 레이몽 크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지하철의 소녀>(1960)는 원작 못지 않은 다양한 이미지와 소리의 실험을 감행하여 그야말로 영화적 자유로움 그 자체를 실현해냈다. 또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각색한 <라콤 루시앙>에서는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인들의 비루한 삶을 충격적으로 묘사해 논쟁의 정점에 섰고, <프리티 베이비>(1978)에서는 10대들의 성매매춘을 동정적으로 그러내 비난을 사기도 했다.

평가 절하되었던 불운의 감독
루이 말은 그의 영화들에서 완벽한 기술적 통제 능력, 엄격하면서도 유려한 미장센,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 등의 천재적인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네아스트 목록에서 자주 배제되고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었던 불운의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195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 영화계에 형성되기 시작한 세 가지 흐름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독자적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흐름은 구세대 감독들의 전통적 창작방식을 그대로 수용하는 감독들을 가리키며(클로드 오탕라라, 로제 바담 등), 두 번째는 ‘카이에 뒤 시네마’에 평론을 기고하다가 감독으로 데뷔한 누벨 바그 그룹들(고다르, 트뤼포, 샤브롤 등), 세 번째는 누벨 바그 그룹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단편영화나 기록영화로 자신들만의 입지를 다진, ‘좌인파’라 불리던 감독들(레네, 바르다, 프랑쥐 등)을 말한다. 이 같은 경향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고 쌓아 올린 영화적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 루이 말은 대부분의 평론가들에게 고다르나 레네처럼 전복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감행한 감독으로 평가 받기 보다는, 그저 영화를 잘 만들 줄 아는 감독 중 하나로 치부되었다.

계속되는 논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말은 <애틀란틱 시티>(1981)과 <앙드레와의 저녁식사>(1981)로 미국의 지성팬들을 사로잡으면서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며 미국 제작사들과 손잡고 여러 작품들을 발표한다. 미국 거주시기에 그가 간간이 만든 프랑스 영화들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십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와 연출한 <굿바이 칠드런>(1987)만큼은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루이 말의 연출 스타일 -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의 성공적인 시도
루이 말은 파격적인 주제부터 정치적인 화두, 판타지까지 주제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했다. 그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면, 유부녀가 낯선 청년에게 반해 불륜을 저지른다는 <연인들>, 엄마와 아들의 근친상간을 소재로 한 <마음의 속삭임>, 부자(父子) 사이의 한 여성의 사랑을 그린 <데미지> 등 개인의 열정과 성적 욕망이라는 일련의 주제들을 어떤 제약도 없이 스크린에 옮겨 담은 작품들이 있다. 또한 나치의 하수인으로 유태인의 딸을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 <라콤 루시앙>, 루이 말 자신의 어린 시절을 영화화하여 진정 빛과 같이 아름답게 연출해 낸 <굿바이 칠드런>, 68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밀루의 어떤 5월> 등에서는 역사와 개인간의 관계를 다루며 묵직한 주제들을 원숙하게 다루어 내기도 하였다.

말은 로베르 브레송에 비견되는 절제된 미장센과 카메라 이동 등 세련된 연출로도 유명하다.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영화에 걸맞는 배경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그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음악을, <지하철의 소녀>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프리 재즈를, <연인들>, <굿바이 칠드런>, <블랙 문> 등에서는 브람스, 슈베르트, 리하르트 바그너 등의 클래식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 유려한 솜씨를 뽐냈다. 특히 <도깨비불>에서는 천재 음악가 에릭 사티의 음악을 사용해 주목 받기도 했다.

루이 말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와 <연인들>외에도 레이몽 크노의 원작을 각색한 <지하철의 소녀>와 파트릭 모디아노원작의 <라콤 루시앙>등을 발표하면서 문학 작품의 각색 영화도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루이 말과 누벨 바그(Nouvelle Vague)
사실 루이 말이 누벨 바그의 주자인지 그 밖의 시네아스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루이 말이 그만큼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누벨 바그의 영화들은 약 반세기동안 세계의 영화를 지배해온 수많은 관습과 규범들에 전면적인 반기를 들면서,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 호소력이 뛰어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영화 창작기법의 타당성과 유효성을 입증해 보였다. 누벨 바그의 전성기는 대략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약 6년여 동안의 시기로 간주되며, 이 시기에 발표된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와 트뤼포 등의 영화들은 이후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 남아메리카 등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각 나라의 영화적 전통을 쇄신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누벨 바그의 탄생에는 크게 세가지 요인이 언급된다. 트뤼포의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1954)이라는 짧은 글이다. 이 글은 ‘작가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트뤼포를 중심으로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 새로운 영화를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이 젊은 영화인들이 몇 년 후 누벨 바그를 만들어내는 장본인들이다. 둘째, 트뤼포의 글이 실렸던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이다. 앙드레 바쟁이 편집장을 맡았던 이 잡지는 젊은 영화인들이 자유롭게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담론의 장이 된다. 셋째, 1940년대 말 앙리 랑글루아에 의해 설립된, 일종의 ‘국립 예술전용 극장’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이다. 다수의 희귀 필름들과 영화 도서들을 소장한 이곳에서 당시 새로운 영화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1940년대 초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네오 리얼리즘’영화는 특수효과를 배제하고 직업 배우와 비직업 배우를 고루 기용했으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견지했다는 점에서 누벨 바그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또, ‘실존주의 철학’도 누벨 바그 영화들의 정신적인 배경이 된다. ‘부조리한 세상에 부조리한 방식으로 맞서는’현대인의 모습은 특히 고다르의 영화들에 자주 등장하며, 카톨릭 문명보다 고대의 희랍 문명에서 사상적 근원을 찾으려 했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고다르나 트뤼포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다양한 암시들을 영화 곳곳에 숨겨 놓곤 했다.

루이 말과 자크 드미 등은 전통적인 영화제작 시스템을 계승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벌여 현대 영화로의 길목을 개척해갔다. 그것은 누벨 바그도 아닌,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만의 작품 세계였다.

Quote “예측 가능한 방향은 늘 일정한 습관이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정반대로 사고해왔다.
나는 내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하길 바란다.”
- Louis Malle

“감독들은 미래를 위해 남겨질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들은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한 필름과 화학물질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를 곧 사라질 것이다.
200년이 지나면 우리의 작품들은 먼지가 될 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 Louis Malle

 

 

출처-씨네큐브 http://www.cineart.co.kr/wp/archive/series/mall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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