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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물안개

by 丹野 2008. 6. 29.

                                                                                           - p r a h a
 
물안개 / 나호열

  
앞이 캄캄하고
하늘은 더 막막할 때
나는 물안개를 보러 간다

물이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향기도 없고 형체도 없는 물방울 꽃들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미는지
몸의 슬픔마저도 함께 배워 버렸다

물은 고독을 닮아 너무 물렁물렁해서
헤집을수록 더 깊이 나를 내려다 놓아
이 세상의 거친 신발은 벗어두어야 하지

이 산등성이에서 저 산등성이까지
수평을 이룬 물
머리를 숙이고 내려다보면 그 때
유리창 아래로
길이 집들이 마을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나무들이 그토록 닿고 싶어했던 하늘이
별들이 구슬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양철지붕이
죽어서야 동구 밖에 나왔던 무덤들이
물의 나라에 잠들어 있다

물안개는 깃발처럼
그들이 내미는 하얀 손들처럼
나를 이끈다
물의 길을 걸어라
물의 집에 들어라

물안개를 한아름 꺾으러 나선 새벽
나는 절교의 외마디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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