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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8년만에 다시 일반 공개돼

by 丹野 2019. 3. 24.

[서소문사진관]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18년만에 다시 일반 공개돼

최승식 입력 2019.03.24. 16:31

                 


18년간 복원공사를 마친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 왼쪽은 동탑.[연합뉴스]
18년간 복원공사를 마친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연합뉴스]

국보 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이 18년간의 보수정비를 마치고 지난 23일 일반 관람객에게 다시 공개됐다.
전라북도 익산시 기양리 미륵사지에 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1962년 국보 11호로 지정됐다.
24일 미륵사지를 찾은 관람객들이 석탑(국보 제11호. 뒤)과 당간지주를 구경하고 있다.[연합뉴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전후 모습.[사진 문화재청]
한국 석탑의 기원으로 꼽히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 5층을 복원하는 모습.[사진 문화재청]
지난 2015년 복원공사 작업이 진행되는 백제 미륵사지 석탑모습.최정동 기자
석탑 4개의 모퉁이에 놓여진 석인상 중 유일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있는 석인상.[뉴스1]
지난해 6월 공개된 미륵사지 석탑의 내부. 통로 가운데 불빛이 비추고 있는 심주석에 사리장엄구가 봉안되어 있다. [뉴스1]

삼국유사에는 백제 30대 왕 무왕(武王·재위 600~641)과 신라 선화공주가 결혼한 뒤 미륵사를 지었다고 적혀있다. 2010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절의 유래가 적힌 봉안기가 출토됐다.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적덕의 딸에 의해 미륵사가 창건됐단 사실이 기록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사진 문화재청]
지난해 6월 언론에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모습. 과거 재료인 구재와 새로운 재료인 신재가 혼합되어 보수정비 되어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언론에 공개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모습. 과거 재료인 구재와 새로운 재료인 신재가 혼합되어 보수정비 되어 있다. 보수를 마친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없었던 덮개돌이 최상단 옥개석 뒤쪽을 지지해주기 위해 추가됐다.[뉴스1]
지난해 9월 복원을 마친 익산 미륵사지 석탑모습. 권혁재 기자
지난해 7월11일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 복원공사장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김현용 학예사가 해체, 보수 정비공사중인 백제 말기의 화강석 석탑인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미륵사지 서쪽 석탑)의 공사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639년)에 창건된 백제 최대사찰이다. 최초에는 목탑 1개와 석탑 2개가 세워졌으나, 목탑은 소실되고 동탑은 1993년 다시 복원됐다.
이번 복원작업은1998년 구조 안전진단을 거쳐 2001년부터 18년간의 보수정비 끝에 복원이 마무리됐다.
익산 미륵사지 동탑. 1993년 복원된 동탑은 2년만의 공사과정을 통해 다시 지어졌다. 권혁재 기자
1910년도 당시 훼손된 미륵사지 석탑 서측면 모습. 벼락을 맞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로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시멘트를 땜질해서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사진 문화재청]
1910년도 당시 훼손된 미륵사지 석탑 동측면 모습. 벼락을 맞아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로 있다가 일제강점기인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시멘트를 땜질해서 응급 보수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사진 문화재청]
전북 익산 미륵사지 전경. 백제말기에 지어진 미륵사지는 사적 150호로 지정됐다.[사진 문화재청]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 9층이었지만 석탑 상층부가 무너져 6층까지만 남아있다. 높이 14.5m, 폭 12.4m로 남아있던 6층 높이로 다시 복원됐다.
가장 오래된 자료사진인 1910년 기록에도 지금과 같은 6층만이 남아있다. 문화재청은 검증과 첨단 보존기술을 사용해 원래 있던 부재를 81% 사용해 복원을 마무리했다.
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