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풍경이 되고싶은 詩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파미르에서 쓰는 편지 / 김경성

by 丹野 2019. 2. 18.

세계일보  2019-02-11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파미르에서 쓰는 편지 / 김경성

 

마음의 뷰파인터 속으로 들어가 있는 풍경이 익어서

암청빛 저녁을 풀어놓을 때 별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세상의 별들은 모두 파미르 고원에서 돋아난다고

붉은 뺨을 가진 여인이 말해 주었습니다

 

염소젖과 마른 빵으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돌산은 마을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설산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빛나는 아침입니다

나귀 옆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나무 우듬지에 걸쳐있고

풀을 뜯는 나귀의 등에는 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백양나무 이파리가 흔들릴 때

왜 그렇게 먼길을 떠나왔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머니에 가득히 주워 담은 별들이 차그락거립니다

 

당신은 멀리 있고 설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원에 부는 바람을 타고 나귀가 걷기 시작했습니다

나귀가 노인을 이끄는지

노인이 나귀를 따라 가는지

 

두 그림자가 하나인 듯 천천히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원은희






파미르고원에 갔을 때였습니다.

세상의 별들은 모두 파미르고원에서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암청빛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주머니에 가득 주워 담습니다.

어젯밤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파미르의 아침. 돌산은 마을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높은 설산이 보입니다.

붉은 뺨을 가진 여인은 아침을 해주고, 아이들의 눈빛은 빛나고, 나귀 옆에 서 있는 노인의 그림자는 나무 우듬지에 걸쳐 있고, 풀을 뜯는 나귀의 등에는 짐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백양나무 이파리가 흔들립니다.

풀을 뜯던 나귀가 고원에 부는 바람을 타고 걷기 시작합니다.

나귀가 노인을 이끄는지, 노인이 나귀를 따라가는지, 나도 그들 뒤를 따라 걷습니다.

나도 노인도 나귀도 모두 하나의 그림자로 천천히 풍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머니에 가득 주워 담은 별들을 차그락거리면서.

박미산 시인



출처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90211003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