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지증후군
이현서
낯선 계절 속으로
북극의 눈 덮인 자작나무숲 수만 평이 몰려왔다
흰빛의 환이 소용돌이를 치다 협곡 속으로 사라진다
범람하는 귀, 내 몸을 스치며
뚜벅뚜벅 낡은 시침 속으로 걸어간 시간이 징검돌로 떠오른다
전생을 건너온 영혼들이 눈사람이 되는 밤
마술사의 긴 손가락이 달의 궤도를 잡고
무수히 실금이 간 심장을 꿰매고 있다
새들이 떠난 가지런한 발자국마다
어미의 간절한 기도문이 박혀있다
오롯한 허공의 집, 헐거워진 문살마다
난해한 구름의 질문이 걸린다
허기진 바람의 눈먼 독법 속으로
겨울나비 한 마리 날아들었다
오랜 비행으로 파리해진 나비
날개와 더듬이가 상했다 상흔을 어루만지면
문득 내 안의 상처에서 얼음 알갱이가 만져진다
울컥 가슴으로 솟구치는 뜨거움에도 녹지 않는 알갱이들
차가운 음계를 오르내린다
몸속 품었던 달과 별의 운행이
서로 몸 비비며 달그락거리다 이내 눈보라에 묻힌다
바삭해진 꿈 밖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는 집
한 우주가 무너진다, 속수무책이다
—《시산맥》201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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