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한서
유목의 시간
김경성
떠나는 것들은 그 사연조차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비가 긋고 가는 길을 따라 흘러갈 뿐
어제는 비가 와서 꽃이 피었고, 꽃을 먹은 양 떼는 넘치도록 젖을 내어주었다
문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몸속에서 키우는 숲 속 나무가 잎을 편다
해와 달이 둥근 창으로 드나드는 사이
초경을 건넌 처녀는 제 몸속에 아이를 들이고
건너고 또 건너서 닿은 구릉 너머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던 청년이 입안에 고인 침으로
새들을 키운다
높이 나는 새들이
먼 곳에서 부는 마른 바람의 서걱거림까지 그대로
청년의 입속에 넣어준다
사막에서 집들은 고래가 되어 엎드려있다
고래 뱃속에서 자라는 나무가 한꺼번에 몸을 포개어 지느러미를 흔들어댈 때
고비 사막에서는 물 흐르듯 몇 마리의 고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목의 시간은
게르에서 시작해서 게르에서 익어간다
-시집『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사진 / 김경홍
melody with khoomii몽골국립마두금연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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