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유목의 시간

by 丹野 2019. 8. 13.

 

 

 

 

 

 

 

 

                       사진 김한서

 

 

 

유목의 시간

 

김경성

 

 

 

떠나는 것들은 그 사연조차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비가 긋고 가는 길을 따라 흘러갈 뿐

어제는 비가 와서 꽃이 피었고, 꽃을 먹은 양 떼는 넘치도록 젖을 내어주었다

문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몸속에서 키우는 숲 속 나무가 잎을 편다

 

해와 달이 둥근 창으로 드나드는 사이

초경을 건넌 처녀는 제 몸속에 아이를 들이고

건너고 또 건너서 닿은 구릉 너머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던 청년이 입안에 고인 침으로

새들을 키운다

높이 나는 새들이

먼 곳에서 부는 마른 바람의 서걱거림까지 그대로

청년의 입속에 넣어준다

 

사막에서 집들은 고래가 되어 엎드려있다

고래 뱃속에서 자라는 나무가 한꺼번에 몸을 포개어 지느러미를 흔들어댈 때

고비 사막에서는 물 흐르듯 몇 마리의 고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목의 시간은

게르에서 시작해서 게르에서 익어간다

 

 

 

 

-시집『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사진 / 김경홍

 

 

 

 

 

 

 

 

     

 

 

 

melody with khoomii몽골국립마두금연주단

 

 

 

 

 

'丹野의 깃털펜 > 시집『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국  (0) 2019.08.13
오래된 서고   (0) 2019.08.13
세렝게티의 말[言] / 김경성  (0) 2019.08.13
암연의 시간  (0) 2019.08.13
풀등 / 김경성  (0) 2019.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