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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개인적인 현무암 / 서안나

by 丹野 2013. 9. 18.

 

 

 

개인적인 현무암

 

     서안나

 

 

 

   1

 

   현무암은 구멍이 많다

   대낮에도 벌과 나비가 드나든다

   눈과 코가 가렵다 울다가 웃는다

 

   2

 

   돌의 구멍은 돌이 무언가를 품으려던 생각

   돌은 돌 아닌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누르면 피가 툭 터진다

   이쯤에서 사내는 피가 묻은 돌을 던진다

 

   3

 

   돌을 던지면 공중에 불이 붙는다

   공중은 불타는 구멍

   불타는 공중은 불타는 대로 두어라

   사내가 장자의 구멍타령을 소리 내어 읽은 탓이다

 

   4

 

   사내가 불타는 허공을 걸어 돌 속에 얼굴을 묻는다 돌 속에 곡식을 심고 돌옷을 입고 돌 항아리를 부수어 진흙의 아이들을 빚는다 진흙 인간으로 솟아 태양을 안아 들었다 해가 둘이다 도솔가를 부르리라 해를 물리치면 돌 속에 숨결이 돌 것이다 사내가 다시 구멍을 소리 내어 읽는다

 

   5

 

   사내가 돌과 돌을 부딪쳐 불을 꺼낸다 불의 칼로 봉인된 죽은 자들의 이마에 문신을 새기면 진흙 아이들이 사흘 동안 찾아오리라 떡과 고기를 먹이리라 진흙 아이들이 당신의 눈과 코와 입과 귀 일곱 개의 구멍에서 만근의 화살처럼 느리게 날아다닌다 사내의 믿음이 그랬다 현무암은 아침이면 얼굴이 많다 녹말가루처럼 생각이 많다 울다가 웃는다

 

 

 

                          —《현대시학》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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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제주 출생. 1990년《문학과 비평》등단.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박사. 시집『푸른 수첩을 찢다』『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 동시집『엄마는 외계인』, 평론집『현대시와 속도의 사유』등.

 

 

출처 /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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