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송재학
비를 한 번도 피하지 못한
나무 아래에서 엽서를 쓰는데,
또 누군가 한숨 쉬는 사람의 찡그린 미간이 스미기도 하지만
이건 낯익은 글씨,
나무잎 아래 글썽이는 빗방울은 미묘하거나 무겁기도 하고
눈물투성이,
난 눈동자 없는 시선과 마주친다
또 누군가 비의 무릎을 통해 정강이가 젖고 관절염은 도지는 거지
폭우가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에 새겨지는 우레가 저녁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옹이에 박힌 것이 형광 불빛이라고 생각하면서
여름이라는 우화
송재학
느티나무 그늘이 내 그림자를 붙들고 울고 있다
건반을 한움큼 쥐고 있는 나뭇잎들과 내 머리카락이 엉키지만
내가 헤아리는 잎들마다 더위먹어 후줄근하다
울퉁불퉁한 등짝만 보면 나무 속에 누군가 뒷모습만으로 숨쉬는거지
내 안에 나무가 자란다는 고백은 또 누군가 엿듣고 있지
물집을 비켜가지 못한 수피와
내 손바닥의 체온은 비슷하기에
초록 나뭇잎이 나를 포함시키면
새떼의 지층을 가진 낡은 유화 한 점이
여름 지열을 붙잡고 있다
- <시와 정신> 2013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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