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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참, 멀다 / 나호열

by 丹野 2013. 5. 10.

       

       

       

       

      참, 멀다 

      나호열

       

      한 그루 나무의 일생을 읽기에 나는 성급하다

      저격수의 가늠쇠처럼 은밀한 나무의 눈을 찾으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창을 열어보인 적 없는 나무

      무엇을 품고 있기에 저렇게 둥근 몸을 가지고 있을까

      한 때 바람을 가득 품어 풍선처럼 날아가려고 했을까

      외로움에 지쳐 누군가가 뜨겁게 안아주기를 바랐을까

      한 아름 팔을 벌리면 가슴에 차가운 금속성의 금이 그어지는 것 같다

      베어지지 않으면 결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문신

      비석의 글씨처럼 풍화되는 법이 없다

       

       

      참, 멀다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멀어서 아름답다

      살을 찢어 잎을 내고 가지를 낼 때

      꽃 피고 열매 맺을 때

      묵언의 수행자처럼 말을 버릴 때

      나무와 나 사이는 아득히 멀어진다

       

       

      한여름이 되자 나무는 인간의 마을로 온다

      자신의 몸에 깃든 생명을 거두어

      해탈의 울음 우는 매미의 푸른 독경을

      아득히 떨어지는 폭포로 내려 쏟을 때

      가만가만 열뜬 내 이마를 쓸어내릴 때

      나무는 그늘만큼 깊은 성자가 된다.

       

      청보리스님 

       

       

      Magic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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