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있었다 / 나호열
-용장사지 3층 석탑
내가 걸어왔던 길을
가시덤불 헤치며 다가오는 사람아
이 절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번은 푸른 하늘을 보아야 하리
공손히 허리를 굽혀야 하리
몇 번인가 무너져서
소리 없이 흩어지고 싶었으나
허공의 깊은 힘이
천 년을 떠받들고
앞으로도 천 년을 그래야 한다는구나
옛 강물은 멀리 흘러 바다로 갔는데
잔 물결은 이제야 강 기슭에 닿아
시름 깊은 갈대의 발목을 잡아주는데
오늘도 바람은 어김없이 와서
그만 네 옆에 주저 앉으라 하는구나
- 시집『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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