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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거기에 있었다 / 나호열

by 丹野 2013. 5. 25.

     

     

    거기에 있었다  / 나호열

    -용장사지 3층 석탑

     

     

     

    내가 걸어왔던 길을

    가시덤불 헤치며 다가오는 사람아

    이 절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한번은 푸른 하늘을 보아야 하리

    공손히 허리를 굽혀야 하리

    몇 번인가 무너져서

    소리 없이 흩어지고 싶었으나

    허공의 깊은 힘이

    천 년을 떠받들고

    앞으로도 천 년을 그래야 한다는구나

    옛 강물은 멀리 흘러 바다로 갔는데

    잔 물결은 이제야 강 기슭에 닿아

    시름 깊은 갈대의 발목을 잡아주는데

    오늘도 바람은 어김없이 와서

    그만 네 옆에 주저 앉으라 하는구나

     

     

     

    - 시집『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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