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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그물을 거둔 자리 / 김병호

by 丹野 2012. 11. 17.

 

 

 

그물을 거둔 자리

김병호

 

새들의 덧문 같은 울음이

온몸을 묶었다

녹슨 문장을 거느린 나무들과

먼 심장박동 소리 같은 저녁 구름들

남은 햇살을 한 땀 한 땀 기우며

사내가 몸과 기억의 사이를 건너자

강기슭의 한 끝과 꽃 진 나무

사이를 늘이며 비가 내렸다

빈 강의 빗소리는 배 속 하얀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길 잃은 별자리들의 남루한 기척 같기도 했는데

기척보다 울음보다

먼저 생겨난 물빝의 잠이 사내를 받아주었다

사내의 미소가 물여울처럼 출렁이고

구두 한 짝이 천둥소리로 흘렀다

 

 

 

 

—《밤새 이상李箱을 읽다》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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