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원의 시인탐방[26]
세속적 초월에 서 있는 나쁜 소년, 허연 시인 대담: 김명원(시인,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웹진 시인광장 2012년 11월호[통호 제45호]
-시인광장 시인탐방 / ■ 시인광장 특집 &평론
2012/11/13 01:42
http://seeinkwangjang.com/60175570286
사진 설명: 2012년 10월 13일, 서울 혜화동 ‘예술가의 집’에서 허연 시인을 만나 그의 삶과 시에 깃든 푸른빛을 나누었다. (사진-김경성 시인)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12년 11월호(2012, Nember)
□ 허연 시인
1966년 서울에서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이 당선. 졸업 후 《출판저널》 등에서 근무.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을 지냄. 시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와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고전 탐닉』, 역서로 『유혹하는 프레젠테이션』 등이 있음. 현재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2006년 한국출판학술상 수상.
■ 김명원 시인
1959년 충남 천안에서 출생. 이화여대 약학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 문학박사. 1996년 《詩文學》으로 등단. 시집으로 『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와 『달빛 손가락』이 있음. 2002년 '노천명문학상'과 2007년 '성균문학상' , 2008년 제13회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을 수상. 현재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웹진『시인광장』편집위원.
김명원의 시인탐방 26 세속적 초월에 서 있는 나쁜 소년, 허연 시인
세속적 초월에 서 있는 나쁜 소년, 허연 시인
특별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무수한 평범을 견뎌내고야 만나게 되는, 그야말로 특별한 날이다. 허연 시인을 만나기로 한 날이 그러했다. 10월의 햇살은 불량식품 첨가 물 색깔처럼 유독 파랗고, 오후 2시의 바람은 점점이 가루로 흩뿌려지며, 몸집을 부풀린 도심이 큰 덩어리의 리듬으로 마냥 출렁이는 날이었다. 약속장소인 서울 혜화동대학로의 샘터 ‘파랑새극장’ 앞에 섰을 때, 주변의 온갖 소음이 소거되고, 연인들끼리 마시는 커피 잔들이 솟구치며, 그들이 내는 무성의 웃음들이 저글링 공들처럼 튀어 올랐다. 이상하게도 현실이 한 순간에 지워지고 슬로우 모션으로 연결되는 환상적인 풍경들이 펼쳐졌다. 인파 속에서 허연 시인이 나타났을 때였다.
키가 크고 세련된 용모의 그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돌연 등장했을 때, 일요일의 격정 속에서 큐 사인을 받고 출연하는 주인공 배우처럼 당당히 우리 앞으로 다가섰을 때, 나는 모처럼 오늘은 참 특별한 날이겠구나, 하는 빛나는 예감이 스쳤다. 그 순간, 이 특별함을 잘 받아들이고 싶어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심장을 두드리는 환희로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댔던 것 같기도 하다. 무리한 부하가 걸려있던 일상들이 보상될 특이한 느낌에 살짝 입 맞추었던 것 같기도 하다. 대담 사진을 봉사해주려고 동행한 김경성 시인의 요청대로 우린 만나자마자 근처에 있는 ‘예술가의 집’으로 옮겨 정원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소소한 이야기부터 두서없이 나누었다. 그의 차분하고도 젖은 음성은 야외 공연의 독백과도 같았다.
오랜만에 정원 잔디에 앉아 본다는 이야기, 바둑이건 장기건 포커건 단순한 컴퓨터게임이건 간에 모든 잡기에 약하지만 유일하게 축구 관전만은 좋아하는데 잔디를 보니 축구장이 떠오른다는 이야기, 축구는 손을 못 쓰게 하는 경기라 투박한 원시성이 멋지다는 이야기, 축구 경기를 보고 있자면 초록 들판에 산양들이 떼를 지어 뛰어다니는 장면이 연상되어 시원해진다는 이야기, 까뮈도 다치기 전까지는 축구선수였다는 이야기, 축구 말고도 좋아하는 것 중에선 비밀리에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길들이 세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인 가평의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는 허연 시인의 이야기들을 우린 사진 찍는 내내 들을 수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지각 턱으로 맛있는 최고의 커피를 사겠다고 앞장서는 그를 따라 우린 ‘학림’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고, 뒤로는 젊은 버스커의 연주가 싱싱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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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신부와 화가의 길
■ 김명원:
커피 향이 정말 좋은데요. 선생님께서 준비해 주셔서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커피를 마시며 질문을 드려 볼까요? 음……세시풍속에서 중요한 뜻을 지니는 각기 나름대로의 명절 중에서도 절기로나 의미로나 ‘추석’이 단연 으뜸일 듯싶어요. 바로 며칠 전이 추석이었는데요. 우리의 큰 명절, 추석을 잘 보내셨는지요? 뒷마당의 밤나무에서 쩍쩍 벌어지던 알밤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추석을 쇠기 위해 새로 바른 눈처럼 하얀 창호지문 사이로 하경할 오빠들을 기다리던 유년의 추석이 그립기도 했고요. 선생님께서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성장하셨는데, 고향이 서울이니 추석 명절에 대한 어떤 기억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선생님께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서울은 어떤 모습인가요?□ 허연: 서울이 고향이라는 건 참 슬픈 현실이죠.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살면서 서울을 욕하는데요. 인정도 없고, 멋도 없고, 추억도 없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서울을 만든 건 바로 타지사람들이지요. 자기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욕을 하는 거예요. 소수의 서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내 고향을 이렇게 망쳐놓은 사람이 내 고향 욕을 하고 있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요. 제 고향은 서울 혜화동인데, 서울만의 고유한 말투와 풍습과 문화가 있었어요. 이젠 그 모든 게 사라졌지만요. 서울이 고향인 사람이 워낙 소수로 전락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겠지요.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슬픈 고향이자, 가장 버림받은 땅이죠.
■ 김명원: 선생님 표현대로 가장 슬픈 고향이자 가장 버림받은 땅인 서울에서 자라고 사시는 선생님께는 남다르게 형성된 실향감도 있겠군요. 아마도 그런 근원적인 체험이 선생님 시의 지반이 되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선생님 스스로를 소개한 글을 보면 중학교 때까지는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연유가 있었던 것인가요?
□
허연: 집안이 독특했어요, 구한말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거든요. 할아버지는 그 시대로는 드문 건축기사셨는데 일찌감치 신학문을 익히셨고, 외가 쪽은 벽초 홍명희 선생 집안인 충청북도 지역 풍산 홍씨 집안이었고요. 집안 할머님들조차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을 만큼, 서구문물에 열려있었다고나 할까요.집안에 전통 아닌 전통이 있었는데요. 자식들 중 한 명을 성직자(신부나 수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전 세례명이 바오로인데, 우리 집에서는 제가 그 대상이었죠.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했고, 중학교 때까지 당연히 신부님이 되어야 하는 줄 알고 살았어요. 어머님께서 한동안 아프셨는데 줄곧 제게 신부가 되라고 이르셨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신부가 되려면 가톨릭신학대학을 가야 했는데, 제가 그걸 거부했지요. 일종의 반항을 한 거예요, 거창한 이유는 없었고, 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니까요. 하여튼 그 일로 제 인생의 모든 계획이 어긋나버렸고,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된 거구요.
■ 김명원: 그랬군요. 예정된 길을 가지 않으신 반항이 방황으로 이어졌군요. 그런데 선생님께 받은 인상은 사제가 되었어도 인기가 많으셨을 듯싶다는 거예요. 단정의 일격逸格, 침착의 고수로서 신자들에게 고루고루 사랑과 위안을 나누어주는 신부님으로 적격이다 싶거든요. 더 나아가서 적극적인 아부를 하자면, 맹렬한 여성 신도들 사이에서 사랑과 전쟁을 겪으셨을 수도 있었겠고요. 웃자고 드린 말입니다.
□ 허연: 그러게요. (웃음) 저도 지금에 와서는 사제가 됐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 김명원: 고등학교 때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데요. 지금도 그림에 열중하시는지요?
□ 허연: 그림을 원래 잘 그렸어요. 신부가 될 생각을 안했다면 그길로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물론 별도로 화실을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지금은 그림을 안 그리고 보러 다니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제 문학적 상상력에 그림이 끼친 영향은 커요. 프란시스 베이컨, 손상기, 권진규, 파이닝거, 이인상, 일리야 레핀 등등을 많이 좋아했지요.
대학에 들어가 시를 쓰며 세상에 적응하다
■ 김명원: 대학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을까요?
□ 허연: 신부되는 것도 포기하고 화가 되는 것도 포기하고 미래가 불투명했어요. 대학 원서를 쓰러 갔는데 선생님이 “뭘 하고 싶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예술이 하고 싶다”고 했고요. 그 말을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연극영화과를 추천하시는 거예요.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는 딴따라는 절대 없다고 못 박으신 데다가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아서 싫다고 했더니 다시 ‘문예창작과’를 추천하시더군요.
그때 문예창작과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어요. 문예창작과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대학 원서를 쓰면서 알아보니까 당시에 딱 세 군데에 문예창작과가 있더라고요. 전기대 하나, 후기대 하나, 전문대 하나요. 그중 한 군데를 어찌 어찌 응시하여 문예창작과를 다녔고요. 처음엔 소설을 쓰다가 김종삼, 김수영, 에즈라 파운드, 말라르메, 바이런, 랭보, 이런 시인들의 작품을 읽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지요.
■ 김명원: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이 당선되면서 등단을 하셨지요. 참 이른 등단이었는데요. 작품을 응모하셨던 《현대시세계》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인가요?
□ 허연: 등단이 뭔지도 몰랐어요. 어디 내 본적도 없었구요. 군대를 다녀와서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당시 을지로 입구에 있던 ‘을지서적’ 문학 코너에서 문예지를 뒤적이다가 제목이 멋있고 표지가 예뻐서 《현대시세계》 신인상 공모에 내게 됐어요. 그게 덜컥 당선이 된 거죠. 문예지나 신춘문예 같은데도 좀 내보고 최종심에도 오르고, 하는 그런 추억을 가지고 싶었는데요. 게다가 천천히 준비해서 등단을 했으면 등단작도 훨씬 탄탄해졌을 것 같구요. 그런데 첫 응모가 당선이 됐으니…… 그것도 어린나이에 말이지요. 아쉬워요.
비가 내렸습니다
권진규 씨는 허름한 옹이 박힌 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시들지 않을 것 같은 꽃은 모짜르트가 들고 왔습니다. 잉크가 번져 얼룩진 리본엔 <내 정신이 너의 가슴에>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여섯 명의 조객 중엔 천재도 범인도 바보도 있었습니다. 하관이 끝나고 빗줄기가 굵어지자 붉은 황톳물이 그들의 발을 적셨고 갑자기 모짜르트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 「권진규의 장례식」 전문
■ 김명원: 권진규는 1950년대 일본에서 유학한 테라코타 조각가이지요. 귀국 후 국내미술계의 냉담한 반응과 작가로서의 고통과 갈등 끝에 51세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이고요. 목을 매 자살을 하려고 결정했을 때 얼마나 절박했을까요. 시대가 인정해주지 못한 천재 예술인은 늘 고독과 투쟁해야 했겠죠. 저는 「권진규의 장례식」을 읽으면서 반 고흐가 떠오르더라고요. 자살한 신자는 성당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가톨릭법에 의해 허름한 식당에서 고흐의 장례를 치렀다지요. 장례식에 와준 문상객 몇몇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동생 테오가 선물한 고흐의 그림들을 문상객 모두가 식당 뒷문에 놓고 갔다고 하던데, 요즘 고흐의 그림 경매 평균가가 368억원이라네요. 권진규도 반 고흐도 너무 일찍 세상을 버리고 갔어요. 어쩜 그런 고결하고 치열한 저항이 그들의 예술 세계를 고양시켰는지도 모르겠지만요.
□
허연: 저는 권진규 작품을 참 좋아했어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구독해서 열심히 읽었던 《미술세계》나 《월간 미술》 등에서 보면 권진규의 작품들은 엄청 대작이었는데, 실제로 전시회에 가서 보면 아주 작은, 소품들이더라고요. 충격이 컸어요. 게다가 그의 작품들은 어깨가 없어요. 가오를 잡고 어깨에 힘을 주는 것으로부터 거세되어 있는 거죠. 그게 참 맘에 들더라구요. 조각에 유약을 바르지 않은 원시성도 좋았고요. 《현대시세계》 신인상 수상작들에는 「권진규의 장례식」 외에도 권진규 작품의 제목인 「곡마단」도 있지요. 그만큼 권진규에 대한 제 애정이 남달랐다는 얘기가 되네요. 권진규는 이렇게 말했어요. “예슬에 정형은 없다”고요. 자멸의 계보로 간 길이 그런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김명원: 문청 시절의 문인으로는 누가 있나요? 그 시절, 동학이나 문단 선후배끼리 만나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노셨는지요?
□ 허연: 제가 등단했던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동갑내기들이 많았어요. 소설가는 거의 없고 시인들만 잔뜩 있었죠. 김중식과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고, 박형준, 차창룡, 함명춘, 김태동, 나희덕, 장철문 등을 자주 만났어요. 평론가인 김춘식, 허혜정, 김종욱 등과도 친했고요. 가끔 오다가다 윤대현, 박정대 등과도 술을 마시곤 했지요. 그때 놀이문화는 주로 술이었구요. 술과 한숨,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분노나 울분이 많았지요.
기자 시인, 생업과 시는 다른 문제
■ 김명원:
90년대 중반, 그 당시에는 대학 졸업 후 시인의 진로는 대개 어떤 방향으로 모색되었나요?□ 허연: 참 암담했죠. 예술학교를 나와 할 일도 없었고, 오라는 데도 없었어요. 그때 김중식 시인과 약속을 한 게 있었는데요. “우리는 절대 글을 팔아서 먹고 살지는 말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찾아 헤맸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일이 기자인 것 같아서 잡지사를 다녔고, 잡지사를 다니면서 신문사 시험을 준비했지요.
그러다 신문사 시험에 붙게 됐고, 지금까지 신문사에서 일을 하고 있네요. 다른 친구들은 문학출판사를 알아보고, 문예지에서 일거리를 얻고 했는데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냥 문학과 독립된 직장을 다니고 싶었거든요.
■ 김명원: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께서는 《출판저널》이라는 잡지사를 거쳐 현재는 《매일경제신문》 신문사에서 근무하시는데, 기자라는 직업은 선생님께 잘 맞는 옷인가요? 신문사 중에서도 경제신문을 선택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 허연: 직업은 다 똑같죠. 그냥 노동이에요. 다 쉽지 않고 애환이 있고, 그런……. 경제신문을 선택한 건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꾸준히 언론사에 원서를 냈고 시험을 봤는데 저를 뽑아 준 곳이 《매일경제신문》였을 뿐이지요.
■ 김명원: 시는 직관과 주관적 통찰로 사물을 투시하는 본능이라면 기사는 사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요구하는 이성이 작동해야 할 듯싶은데요. 시인과 기자 사이에서의 균열이라는 게 있다면, 조율이 필요한 부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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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유명 소설가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나 살면서 시 이외의 생업을 갖죠.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아이엄마의 시만을 쓰지 않듯, 학교 선생님이 선생님의 시를 쓰지만은 않듯, 치과의사 시인이 치과 시를 쓰지 않듯, 농부가 농부 시만 쓰지는 않듯, 생업과 시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물론 영향은 줄 수 있겠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명원: 현재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에서 출판·문학 담당 부장기자로 계시지요. 신간 도서를 평가하고 문인의 작품 세계를 제시해야 할 때, 같은 문인으로서 곤혹스러운 점도 있겠어요.
그렇지요. 난처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문학책은 주로 후배기자들을 시키는 편이에요. 후배들도 제 난처함을 아는지 그 부분은 잘 도와주는 편이고요.
■ 김명원: 우문입니다. 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얼마큼의 효용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 허연: 시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장 큰 단점이 자본과 유리遊離 되어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시는 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또 그것 때문에 시는 늘 가난했지요. 다시 말하지만 시의 가장 큰 매력은 경제와 유리되어 있는 거예요. 경제와 밀접했다면 시가 지금껏 시로서 존속할 수 있었을까요. 이미 다른 걸로 변질되지 않았을까요.
나쁜 소년이 쓰는 검은 시
■ 김명원: 선생님께서는 지난 2012년 5월에 세 번째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를 출간하셨지요. 표제시인 「내가 원하는 천사」에서 감지되는 비정한 고소苦笑는 ‘바보 천사’가 부재하는 시대, 혹은 완벽한 허상을 추구하는 세상을 조롱하는 듯이 보여 집니다. 또한 시집의 표지에는 ‘살아있는 누구도 날 동화시키지 못하며 날 감동시킬 수 없다. 사라진 자들만이 추앙된다.’는 글이 도드라지고 있는데요. ‘살아있는’과 ‘사라진’으로 대비되는 존재와 시간의 대위법에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외연적 삶/허상’은 몰아내고 ‘내재적 소멸/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이 시집에서 전언하고자 한 시적 주제랄까요, 의도랄까요, 궁금합니다.
□ 허연: 저는 인간 혐오론자에 가깝습니다. 살아보니 인간은 찬양할 만한 존재는 아니더군요. 인간은 그저 욕망에 휘둘리는 포유류의 한 등속이지요. 아닌 척은 할 수 있지만 결국 인간은 이해관계와 욕망 속에 휘둘리는 동물적 존재예요. 결국 편하고 싶고, 안전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그로 인해 자기만을 위한 선택을 하는 존재니까요. 물론 말은 그렇게 안하죠. 그래서 살아서 숨 쉬고 욕망하고 자기변명을 하는 사람은 전혀 추앙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이번 시집에 담고 싶었어요.
■ 김명원: 그래서 선생님 시들을 읽다 보면 이미 소멸한 것이나 죽은 자만 예뻐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군요. 그래도 목숨이 있는 대상이나 살아있는 사람은 왜 그토록 배척하는지요? 하기야 제가 죽은 이후에도 선생님처럼 숱한 죽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노래해 주는 시인분이 있겠구나 생각하면 위로가 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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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은 사라진 인간이에요. 그로부터 어떤 변명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니까요. 우리가 보는 모습이 바로 진실이 되기 때문이니까요. 그래서 사라진 사람은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김명원: 선생님의 이번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에는 아포리즘에 가까운 시적 통찰이 이전 시집들에서보다 더욱 눈에 띄곤 하는데요. 예를 들면 “강력하고 조용한 저녁에 후회란 없다. 초원에서 죽음은 객관적이다.”(「새들이 북회귀선을 날아간다」) “신념은 식고 탑은 무너진다. 다행히 지칠 시간은 없다.”(「천국은 없다」), “생은 선택된 적이 없다. 생은 시달리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은 것들이죠. 이런 언술에 휩싸여 있을 때 전 비로소 시가 정치한 철학과 만나는 순간이구나 싶거든요. 시인의 이념이나 신념으로 무장, 단정하면서 독자들을 강하게 끌고 가는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반성이 아닌 순종을 하게 되지요. 저항할 여지가 없으니까요. 이런 허연식式 문체를 궁리하셨던 건가요?
□ 허연: 전 이렇게 생각해요. 시는 음풍농월이 아니라고요. 시는 어떤 사물과 현상에 대한 그럴듯한 묘사도 아니고, 더구나 어떤 감정에 대한 낭만적인 묘사도 아니라고요. 묘사 정도는 대중가요 같은 다른 장르에서 더욱 멋지게 할 수 있지요. 시는 담론이에요. 깊을수록 넓을수록 오히려 정확해지는 담론을 찾아내 기호화 하는 것이 시를 쓰는 일 같아요. 물론 사견이지만 시는 거대한 상징이고요. 시공간도 넘는 상징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기막히게 정확한 기호적인 상징이지요. 이런 생각에 매달려 시를 쓰다 보니 허연式 문체가 생긴 것 같네요.
■ 김명원: 그렇군요. 그래서 선생님 시를 읽으면 눈앞이 밝아져요. 정신이 번쩍 드니까요. 아마도 선생님께서 지뢰로 심어둔 적확한 상징과 만나기 때문이겠지요. 궁금한 것 한 가지, 「나의 마다가스카르」 연작시는 훼손되지 않은 생의 근원성과 고립성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어쩌면 선생님께서는 구체적으로 마다가스카르에 선생님 시의 공화국을 건설하신 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그곳은 희망과 절망이 거세된 반유토피아적 유토피아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저도 비루한 욕망을 버릴 수 있을 그 공화국으로 이민 갈까 고민 중예요. 선생님 시에서 어머니로도 은유한 슬픈 마다가스카르에는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곳에서 받으신 영감은요?
□ 허연: 마다가스카르를 가보지 않았어요. 처음 ‘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린 건 그 묘한 음가phonetic value때문이었어요. 너무나 멋있더라구요. 받침이 하나도 없는 여섯 음절과 그 음절 사이에 박혀있는 격음이 너무나 잘 어울리더라구요. 또 한 가지는 바오밥나무 때문이었는데. 마다가스카르에 줄 지어 서있는 바오밥나무 사진을 본 순간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혹성 B612행성’이 마다가스카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점들이 저를 마다가스카르 연작시를 쓰게 했을 거예요. 마다가스카르 하면 왠지 무엇인가 놓아두고 온 어떤 이상향이 떠오르거든요.
■ 김명원: 시 「나의 마다가스카르 3」에서 “생은 그저 가끔씩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것”을 증거하셨지요.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의 ‘자서’에서도 “결국,/ 범인(凡人)으로 늙어간다./ 다행이다.”라고 쓰셨고요. 선생님에게 있어서 ‘평범’은 어떤 성정을 지니고 있는 단어인가요?
□ 허연: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평범하게 산다는 건 이런 거잖아요. 인간관계를 위해 웃기 싫은 웃음을 지어야 하고, 선의라고는 하지만 가끔 거짓말을 해야 하고, 모든 자존심을 포기한 채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야 하고, 가끔 융자금 대출에 시달리고, 친구의 배신에 속상해하고, 늙어가는 내 자신에 속상해하고, 뭐 대체로 이런 것들이죠. “누구나 다 그런 거지 뭐”라는 건 범인들의 말일 뿐이고요. 시인에게 그 평범은 자조이자 슬픔이지요.
별자리가 천천히 회전을 하는 동안
우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동안
마다가스카르 항구에선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가 가슴을 치고
사랑 하나, 서서히 별똥으로 떨어진다
나는 투항했던가
감당 안 되는 빗물이 길을 막아버린 오늘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투항했는가
젖은 그물에 엉켜 죽어가는 펠리컨을 보며
비틀스의 해산을 떠올렸다
항구에서의 세월
나의 마다가스카르에선 세월과 친해질 수 없다
오늘 또
뼈만 남은 노인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들짐승처럼 소리 없이 등 뒤를 지나갔다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날
세월 같은 게 하나 지나갔다
- 「나의 마다가스카르 1-세월 하나 지나갔다」 전문
■ 김명원: 선생님께서는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를 1995년에 내셨지요. 문학평론가 황병하는 “‘무의미의 의미’라는 두려우리만치 아름다운 미학을 창출”하여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그 어떤 유類도 아니”라고 극찬하였는데요. 세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이후 13년 만에 긴 공백기를 넘어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로 복귀 선언을 하였고요. 『나쁜 소년이 서 있다』에 실린 시 「휴면기」를 통해 살짝 짐작은 했지만, 그 긴 휴면기동안 시를 떠난 이유, 그리고 다시 시 앞에 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허연: 신문사에 들어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웃고, 이렇게 슬퍼하고, 이런 글씨를 쓰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사랑하고, 이 모든 걸 시가 가르쳐 준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나는 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구나. 나는 이미 병들었구나.”라고요.
■ 김명원: 선생님의 시들은 제 미력한 시력으로는 부정不正,不淨을 부정否定해서 부정不定을 획득하는 긍정을 낳더라고요. 그래서 고통스럽고도 사랑스럽지요. 선생님께서 지향하는 시는 어떤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길 원하시나요?
□ 허연: 예쁘다는 것의 허구와 아름답다는 것의 거짓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가 아름다운 말들이나 아름다운 이미지의 조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는 외마디 비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시가 뭐 세상을 구원한다든지 시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든지 하는 말들을 들으면 동의할 수가 없거든요. 시는 발언이에요. 누군가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짧게 무엇인가를 명징하게 정의하는 방법, 그것이 바로 시죠. 그래서 시에서 아름다움을 기대하거나 이런 걸 원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해요. 하지만 시는 아름다운 말을 해서 감동을 주는 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말을 쓰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아름다운 감동과 느낌을 주는 것이잖아요.
■ 김명원: 37세 나이로 숨진 뇌성마비 장애시인 서정민의 유고시집 『망가진 기타』를 논하며 그가 얼마나 비장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는지가 절절하게 드러난다고 하면서,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유명 문인의 시보다 뛰어나다고 평하셨는데요. 시에서의 ‘진정성’은 어떤 관점에서 평가되는 것인가요?
□ 허연: 진정성은 곧 절박함이지요. 절박함에는 시공간이 존재해요. 다음과 같은 요소가 모여지면 정말 절박한 게 아니었을까요. “내가 절박했는가/ 내가 절박한 상황에 있었는가/ 그 절박함이 내 존재를 위협할만한 것이었는가/ 글이 아니면 절박함을 표현한 도구가 없없는가” 서정민의 『망가진 기타』에 들어있는 시인데요. 서정민 시인의 시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측면에 부합했던 것 같아요. 시의 표현력이나 그 어떤 기교를 떠나서요.
오랫동안 시 앞에 가지 못했다. 예전만큼 사랑은 아프지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비굴할 만큼 비굴해졌고, 오만할 만큼 오만해졌다.
세상은 참 시보다 허술했다. 시를 썼던 밤의 그 고독에 비하면 세상은 장난이었다. 인간이 가는 길들은 왜 그렇게 다 뻔한 것인지. 세상은 늘 한심했다. 그렇다고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염소 새끼처럼 같은 노래를 오래 부르지 않기 위해 나는 시를 떠났고, 그 노래가 이제 그리워 다시 시를 쓴다. 이제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무것도 아닌 시를 위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며 시 앞에 섰다.
- 「휴면기」 전문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전문
책은 고대문명의 입석立石
■ 김명원:
선생님께서 2008년에 내신 표제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책자에는 “인생의 답을 책에서 구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요. 낯선 단어인 ‘비블리오필리bibliophily’는 '책에 독립된 성격을 부여해 이를 감상하고 수집하는 취미'를 뜻한다고 표지 안쪽에 설명해 주셔서 다행였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짐작만 했지 그 단어를 저만 모른 게 아니었나보다 싶어서였죠. 본문에 인용되어 있는 『체 게바라 평전』에서 『시 읽는 기쁨』에 이르기까지 166권의 책들은 선생님의 손에서 새로운 레시피로 조리되고 있더군요. 단정하면서도 자유롭고 맛깔스런 미각적인 문장들이라니요… 신선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이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친구이며,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만들어왔다고 그 책에 쓰셨는데요. 책에 경도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허연: 어렸을 때 집에 책이 많았는데 그 책을 고대문명의 입석立石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이를 뛰어놀면서 숨바꼭질하면서 책에 익숙해졌고, 그 냄새에 길이 든 거 같아요. 어린 시절의 되바라진 유희가 커서까지 남아있는 것이고요.
■ 김명원: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대자적 존재로서의 세상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소통의 문제가 다루어지면서 선생님께서 본문에 인용하고 있는 책들과 더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책을 선택하는 기준과 독서 방법 등을 알려 주셨으면 해요.
□
허연: 어려운 책이 가장 좋은 책이지요. 책을 덮고 나면 더 읽어야 할 책이 떠오르거든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깨닫게 되고요.■ 김명원: 작년 2011년에 『고전 탐닉』이라는 책자도 상재하셨지요. 선생님께서 고전이라고 선별 확정하신 조건은 무엇이었나요?
□ 허연: 명저는 나누는 기준이 간단합니다. 그 책이 있기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는 책이 명저예요.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은 그 이전과 이후 세상을 나누었습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밀턴의 『실낙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등이 그러했지요.
■ 김명원: 선생님의 문학 수업은 이런 고전 읽기에서 다져진 것인가요? 가장 영향을 받은 저자와 책자들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 허연: 시인 중에는 릴케와 말라르메, W.H.오든과 이브 본느프와를 좋아했고요. 문학작품으로는 『소립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변신』, 『분노의 포도』, 『백년보다 긴 하루』, 『길 위에서』, 그 밖에는 『여론』, 『과학혁명의 구조』, 『광기의 역사』, 『군중과 권력』, 『이기적 유전자』 등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가장 잘 혼자일 수 있는 사람
■ 김명원: “타인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계급”(「좌표 평면」)이라고 시에서 언급하셨는데, 시의 외부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요? 선생님 시를 읽으면 혼자서도 잘 노는 분 같거든요.
□ 허연: 시인은 외로운 존재지요. 이미 인간이 외로운데 시인은 더하겠지요. 자기 혼자 자기를 직면할 수 있는 사람, 그 직면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세상사가 외로워서 생기는 일 아닐까요. 외로우니까 남에게 의지하고 의지했으니까 배신감도 느끼고 그러면서도 또 의지하고,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그 외로움에 대해 복수하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어차피 혼자라는 것만 인정하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모두 해결되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인간의 사랑이나 신념만큼이나 쉽게 변하는 게 어디 있나요, 인간은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영원한 존재가 될 수는 없어요. 그걸 인정하기가 참 힘들지만요.
저는 혼자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잘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인거 같아요. 물론 친구도 있지만 그들을 위해서라도 잘 혼자여야 하지요. 혼자서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잘 찾는 일, 그것이 훌륭한 자세인 거 같아요.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자기를 위한 이유 말이에요. 그런 인간들의 행동이 모여서 세상이 이루어지죠. 그리고 그 행동은 다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구요.
■ 김명원: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쓸쓸해지네요. 그래도 요즘처럼 하늘이 푸른, 푸르다 못해 아픈 가을에는 그리워할 사람이 있으신지요. 선생님은 시 「편지」 에서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를 언급하셨는데, 그리움 같은 것에 대해 묻는 죄를 지을 대상이요. 혼자임을 입증할 타자로서의 대상 말이지요. 선생님의 거침없는 솔직함에 호소하고픈 질문입니다.
□
허연: 인간의 사랑을 믿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변하지요. 시간이 변하고, 나라는 물성이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요. 그래도 그리운 것은 인간의 본성인거 같아요. 아마 지금도 그리운 대상을 찾고 있는 지도 몰라요. 모순되지만요.■ 김명원: 그런 모순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사유이고 시가 아닐까요. 10월이라서, 푸른, 이라는 단어를 발성하다 보니 선생님 시에서의 푸른 색채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선생님 시들에서 자주 출연하는 푸른색은 어떤 상징성을 지니고 있나요?
□ 허연: 이제 제 나이도 50을 바라보지만 “나이 먹고 좋은 사람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푸른색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늙어서 푸른색을 잃은 자가 시를 쓸 수 있을까요.
■ 김명원: 선생님께서는 산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물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감정은 늘 이성보다 힘이 세다”고, “눈물이 나거든 울자”고 선동(?)을 하고 있으신데요. 눈물을 흘리는 때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어느 때인가요?
□ 허연: 자주 웁니다. 특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자주 우는데요. 진실 된 한 장면을 만나면 울게 되죠. 사람보다는 동물 때문에 많이 울고요. 음악을 들을 때도 많이 웁니다. 클래식을 들을 때도 그렇고 재즈를 들을 때도 그렇고 전인권을 들을 때도 그렇고 심수봉을 들을 때도 그렇습니다. 잉글랜드 축구 3부 리그 수비수를 보면서 울 때도 있고, 얼마나 더 살겠다고 MRI 찍는 통 속의 고독을 견디는 구순의 노인을 보면서 울 때도 있습니다. 또 하나, 북극권 빙하 앞에서 반나절을 운적도 있었지요. 시베리아의 경비행장에서 무중력 같은 설경과 마주쳤는데, 하얀 눈으로 금 간 풍경 위에 또 하얀 눈으로 금 간 풍경이 얹혀 져 있는데, 또 그 하얀 눈으로 금 간 풍경 위로 하얀 눈으로 금 간 풍경이 더 얹혀 져 있는데, 그때, 인생은 좃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시를 쓰는 건 정말 다행이다, 싶으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네요.
천사를 본 사람들은
먼저
실망부터 해야 한다.
천사는 바보다.
구름보다 무겁고,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천사는 바보이고
천사는 있다.
천사가 있다고 믿는
나는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를 떠올린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 천사.
허우적거리다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그 난처한 아름다움.
아니면
야간 비행 실수로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불시착한 천사
가까스로 매달린 채
엉덩이를 내보이며
날개를 추스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면
비둘기 똥 가득한
중세의 첨탑 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망연자실.
내가 원하는 천사다.
- 「내가 원하는 천사」 전문
한 편의 시에 한 번의 황홀경ecstasy
■ 김명원: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해진 현대의 면모나 삶의 양상들을 표현해 내기 위해 시는 이제 어떤 변모 과정을 겪게 될까요? 예견하시는 시의 미래는요?
□ 허연: 시는 그대로일 겁니다. 시를 가지고 돈을 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상 시는 살아남을 겁니다. 만약 시가 돈이 된다면 시는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변질 되겠지요. 이대로라면 시는 시로서 살아남을 겁니다. 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탐을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 김명원: 언제 시와 만나시나요? 시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편이세요?
□ 허연: 어떤 때는 한 달 내내 밤이고 낮이고 시만 생각하는 날이 있고, 또 어떤 때는 한 달 내내 시 한 줄 안 쓰는 시기도 있습니다. 시가 찾아오는 계절이 있는데 그때 아주 힘이 듭니다. 시가 찾아와서 몇 달을 머물다가 갈 때가 있는데, 그때는 몸도 너무 힘들고 생업에도 좀 지장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가 써지는 날은 계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엄청나게 제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사건이 있을 때지요. 말하자면 자발적인 반성이 있을 때예요. 한번은 지난한 장마가 계속돼서 뉴스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날이었는데요. 제 집이 한강에서 가까운데, 장마가 지난 후 걸어 나가 뚝방에서 내려다보니 간이화장실이 강물에 쓸려 가고 있더라고요. 돼지가 쓸려서 가고, 시체가 쓸려서 가고, 책상이 쓸려서 가고요. 순간 생각했지요. 내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살았구나, 라고요.
■ 김명원: 자발적인 반성이 있는 날이 시가 써지는 날이라니요. 이 말씀에 저야말로 타의적인 반성을 해야 하는 날이 되어 버렸네요. 전 제 자신을 반성하며 시를 썼나 싶어서요. 시를 쓰실 때 가장 유의하시는 점이 있다면요? 물론 창작품이 공식에 의해 면밀히 제작되는 게 아니니 여쭤보기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선생님만의 창작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작품을 예로 들어주시면 선생님 시를 경배하는 시인지망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특강 요약본이 될 듯하고요.
□
허연: 한 편의시에는 한 번의 황홀경ecstasy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손으로 쓰면서 궁리하고 고치는 편이 아닙니다. 맥이 끊어지고, 분절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시를 쓰는 방법이라면 머릿속에서 거의 한편의 시를 다 쓰는 편이에요. 노래 가사를 읊조리듯이 계속 읊조리다가 어느 정도 틀이 가득 차면 글로 옮겨 적어요. 물론 글로 옮기는 순간 많이 손을 보지만 호흡만큼은 유지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하면 하나의 황홀경이 있는 한곡조의 노래가 나올 수 있지요. 습작생들의 시를 보면, 여러 편을 붙인 듯한 느낌도 들고 시의 느낌이 들쭉날쭉하고 완결성이 떨어지고 주제의식이 희미한 경우가 있는데 손으로 먼저 쓰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명원: 시에 대해 묻기 시작하면 인터뷰가 끝나간다는 조짐인데요. 허연에게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요?
□ 허연: 시인은 괴물 같아야 해요. 누구와도 똑같이 살려고 하지 않는 힘을 가진 자들이 시인이에요. 더불어 속물로 살지 않으려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시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김명원: 그렇다면 허연 시인에게 시는 무엇일까요?
□ 허연: 시란 '비명'같은 거예요. 논리 이전에 튀어나오는 외마디 비명 같은 게 시니까요. 그래서 억지로 만들어질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비명이니 막을 수도 없는 것 말이지요.
지겹도록 떨치지 못하는 바람이 있다면요?
□ 허연: 동북아시아에 태어난 사실이 싫어요. 열대나 극지에 태어나 살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바랄 때가 많아요. 동양인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서죠. 동양인들은 왠지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거든요. 동양인의 병은 너무 부지런해서 생긴 병입니다.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병 말이에요.
■ 김명원: 맹목적 일과 예술적 지향은 서로 위배 되지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다면 삶에서, 시에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 허연: 내 방식대로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시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오후가 무르익고 있었다. 풍경이 무르익고 있었다. 허연 시인의 넘치지 않으면서도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뜨거우면서도 냉철한 이야기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는 세속적인 욕망을 기꺼이 연민하면서도 탈속적인 경지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마지막 인간다운 위의를 지키는 보루로서 예술을 보듬고 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로서 자신의 존엄을 드러내고 시에 의해서 자신의 비루함을 용서 받고 있었다. 그에게 시는 신념이었다. 게다가 죽고 잊혀지고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시로 증언해내는 그는 “부족 공동체에서 시를 적는 나는 제사장이자, 사라져버린 부족들의 과거를 불러오는 확신범”이라고 외치고 있지 않는가. 그에게 죽음 이전은 시의 제재이고 죽음 이후는 주제가 된다. 소멸의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그의 삶은 슬프도록 푸른색이 된다. 그에게 시는 자신만의 종교이다.
그의 이야기를 기록하던 수첩을 덮고 마음 놓고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자유로이 하고 있을 때, 나는 허연 시인에게 어떤 시가 좋은 시냐고 물었다. 그는 끝까지 간 시가 좋은 시라고 대답했다. 시를 읽고 나면, 시인이 그 시를 위해서 맨발로 얼마나 끝까지 가기를 거부하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는 시가 좋은 시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울컥했다. 우리 앞에서 성실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김경성 시인이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났을까. 나도 김시인도 어떤 대사에서 심장이 젖었을까. 끝까지 간다는 치명적인 운명의 조짐이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우린 몽환적으로 낯선 대학로의 골목에 있었고, 거짓말 같은 아름다움에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었고, 대답을 비유와 상징으로 하는 매력적인 시인과 마주앉아 있었고, 그리고 10월이었다. 우린 이미 끝까지 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을 속속 파고들어와 끝내 눈물을 흘리게 만든 허연 시인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나는 귀가 후에도 한동안 인터뷰 원고를 쓰지 않았다. 더 많은 시간을 끌며 그 날의 기이한 느낌에 빨리 다가가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한없이 느려지고 게을러져서 그 날의 회고를 즉시 돌아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날로 묻어두고 싶어서, 최고인 채로 매장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나의 언어로 날라 가 버릴지도 모르는 특별함을 더 보류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가 좋아한다는 커피를 내리면서 심호흡을 한다. 그를 써야 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지리멸렬에 저항하는 그 나쁜 소년을 어떻게든 착한 언어로 써내야 하는 것이다. ■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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