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말言 / 김경성

 

 

 웹진 시인광장 선정 2013년 올해의 좋은 시 1000         317     

 

 

 세렝게티의 말言 

  

     김경성

 

 

 

  세렝게티의 밤은 밀림 속 롯지에

  전기가 끊기는 밤 열두 시에 시작된다 

  램프를 든 마사이족 청년의 눈으로 들어간 별 몇 개가 

  후드득 방문 앞에 떨어지는 시간, 밀림 속에서 짝을 지어 다니는 

  임팔라, 톰슨가젤의 킁킁거리는 사랑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아도 좋으리라 

  박쥐 떼가 파드득거리며 동굴 속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는 램프는  

  제 심장을 꺼내서 

  기린이 속잎을 따 먹었던 아까시나무에  

  박쥐 그림자를 걸어 놓는다 

  롯지 앞마당까지 들어온 임팔라 십여 마리 

  투두드득 투드드득 풀잎을 뜯으며  

  달의 가슴을 그어대는 별의 모서리 부딪는 소리를 탄다 

  살아 있는 동안 다친 상처의 틈으로  

  별빛 얼마나 많이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상처에 새살이 돋게 할 수 있을까 

  기린이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나무 우듬지에서 어린 속잎이 기린의 입술을 부르던 초저녁의 서늘함 

  밤이 깊도록 흐르고 

  밀림 속으로 들어간 야생동물들이 소리를 지르며 오르가즘의 절정일 때 

  나도 램프처럼 심장까지 다 빠져나간 듯 허기가 져서  

  가장 높은 바위에 앉아 있었던 것인데 

  검은 나무에 앉아있던 독수리가 발톱을 세운 채

  미끄럼을 타듯 날개를 펴고 내려왔다

   

  저만큼, 저만큼 

  아까시나무가 커다란 램프를 들고 서 있었다

 

 

 

  

 

 

계간 『창작21』  2012년  봄호 발표

 

 

 

 

 

 

 

김경성 시인

 

 

전북 고창에서 출생. 2011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와온』(문학의전당, 2010)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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