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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암전(暗箭) / 김명기

by 丹野 2012. 6. 6.

암전(暗箭)

 

김명기

 

 

괜찮은가요 이제

그래요 이 어둠속에서 나기지 못할 테니까요

더이상 결전의 각오 따윈 없어요

기대할 것이 없어 어깨가 저문 엄마도

이미 시든 정물(靜物)인걸요

빠져나갈 수 없으니 그냥 빠져 있을래요

어둠이 걷힐 때 나가 어둠을 맞받아치며 돌아오지만

그 사이도 그저 막간(幕間)일 뿐이죠

투명한 유리컵에 몸을 반쯤 담군 고구마처럼

푸른 순은 점점 시들어 말라가고

오래된 갈등이 썩어가듯 속은 비어가고

그 속절없는 생을 떠받치느라

하얗게 쉬어버린 뿌리처럼 늙어지겠지요

하지만 덫이 아니라 유산이라 해두지요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짓인지 알 나이니까요

가끔 마음이 쓰릴 때도 있지만 슬픔은 없어요

이쪽과 그쪽의 바람이 머무는 이곳이 좋아요

내란 같은 삶이 잠시 멈춘 시간, 그 너머가 궁금해도

더는 생의 호객꾼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부디 잊어주세요

그러다 보면 그렇게 살아지다 보면

어느날은 모두 잊혀지고 또 무엇인가 되어 있겠지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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