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살이의 증거로 살아남은 나무 | |
태안 천리포수목원 숲의 봄을 노래하는 순백의 크로커스 꽃. | |
[2012. 4. 2] | |
봄 기운을 빠르게 알아채는 풀꽃들과 달리 큰 나무들의 봄 마중은 더딘 편입니다. 가을 단풍도 더디게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하기야 큰 덩치에 물을 고루 끌어올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조금 늦은 걸음이지만, 저 육중한 몸 곳곳에 물을 끌어올린다는 것도 곰곰 짚어보면 놀라운 신비입니다. 무슨 힘으로 뿌리 끝에서 빨아들인 물을 높은 가지 끝까지 끌어올리는 지 놀랍습니다. 그렇게 신비로운 힘으로 더디게 봄 마중에 나선 커다란 은행나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강원도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입니다. | |
큰 은행나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실 나무가 아마도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이기 십상입니다. 물론 용문사 은행나무는 키가 40미터 정도이니, 키에서는 가장 큰 나무인 게 맞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직으로 쭈욱 뻗어오른 높이가 장한 나무이지만, 반계리 은행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보다 키는 작아도 사방으로 펼친 품만큼은 용문사 은행나무와 비교해 훨씬 큰 편입니다. 구체적인 크기를 비교 측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부피를 비교하면, 서로 자웅을 겨루기 어려울 만큼 비슷할 겁니다. | |
이 나무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과연 '누구에게나 공통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떠오른 사람이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입니다. 에코는 아름다움의 역사를 살펴본 역저 '미의 역사'의 서론 부분에서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한 대상에는 거의 어김없이 '선함'의 개념이 포개진다고 했지요. | |
반계리 은행나무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던 데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여기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가이 들었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바로 착한 사람이 모여 착하게 사는 마을의 선한 살림살이의 상징인 나무입니다. 나무에 전해오는 천년 전의 전설이 바로 그런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무에는 늙고 거대한 흰 뱀이 산다는 이야기 등 여러 전설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렇습니다. | |
몇 해 전 가을,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노란 빛으로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의 단풍 풍경. | |
두레박을 받아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스님은 잠시 다리쉼을 하느라 우물가에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물가 앞으로 펼쳐지는 들녘과 마을 풍경을 바라보았지요. 그때 스님의 눈에 비친 마을의 풍경은 무척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언젠가 이 마을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 자리를 오래도록 표시하고자 했습니다. 스님은 그 동안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그 자리에 꽂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 커다란 은행나무는 바로 그때부터 천년 동안 이 마을이 착하고 아름다운 마을임을 상징하며 융융하게 자랐습니다. | |
천피포수목원의 돌담을 따라 넝쿨져 자란 영춘화가 피워 올린 봄 마중 노래 한 소절. | |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우리 반계리 은행나무가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나무들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우리네 살림살이가 더 오래 선하고 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돌담에 늘어진 가지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봄마중을 재촉하는 영춘화 꽃송이. |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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