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살이의 증거로 살아남은 나무

by 丹野 2012. 4. 2.

[나무를 찾아서]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살이의 증거로 살아남은 나무

   태안 천리포수목원 숲의 봄을 노래하는 순백의 크로커스 꽃.

   [2012. 4. 2]

   봄비 촉촉히 스며드는 소리를 땅 밑의 작은 생명들이 침묵 속에서 흐뭇이 즐겼나 봅니다. 겨우내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 자리에서 솟아오른 생명의 아우성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보여주는 아우성입니다. 긴 겨울 언 땅 아래에서 어떻게 저 가녀린 생명을 지켰을지, 볼수록 기특하고 장한 생명들입니다. 저만큼 장하고 아름다운 생명들이 살아가는 이 땅에서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더 없이 귀한 축복이지 싶습니다.

   이미 '나무 편지'와 짤막한 '나무 엽서'를 통해 복수초, 설강화, 풍년화의 개화 소식은 전해드렸습니다. 그들과 함께 천리포 숲의 봄을 노래하는 예쁜 풀꽃으로 크로커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크로커스는 설강화 복수초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어납니다. 주홍 빛 꽃이 가장 많긴 하지만, 크로커스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거의 파랗다 해도 될 만큼 짙은 보라 빛 꽃을 피우는 종류도 있고, 사진에서처럼 순백으로 청초하게 피어나는 종류도 있습니다. 모두가 이 봄을 가장 화려하게 노래하는 대표적인 풀꽃입니다.

   봄 기운을 빠르게 알아채는 풀꽃들과 달리 큰 나무들의 봄 마중은 더딘 편입니다. 가을 단풍도 더디게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하기야 큰 덩치에 물을 고루 끌어올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조금 늦은 걸음이지만, 저 육중한 몸 곳곳에 물을 끌어올린다는 것도 곰곰 짚어보면 놀라운 신비입니다. 무슨 힘으로 뿌리 끝에서 빨아들인 물을 높은 가지 끝까지 끌어올리는 지 놀랍습니다. 그렇게 신비로운 힘으로 더디게 봄 마중에 나선 커다란 은행나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강원도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입니다.

   주관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반계리 은행나무를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꼽습니다. 먼저 크기에서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몇 그루의 은행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높이가 무려 32미터나 됩니다. 이 정도면 층간 높이가 비교적 높은 빌딩의 10층 높이에 해당하는 정도입니다. 그저 위로만 자라나서 높기만 한 건 아닙니다.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나뭇가지의 품 역시 나라 안에서는 최대 규모라 해도 될 겁니다.

   큰 은행나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올리실 나무가 아마도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이기 십상입니다. 물론 용문사 은행나무는 키가 40미터 정도이니, 키에서는 가장 큰 나무인 게 맞습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직으로 쭈욱 뻗어오른 높이가 장한 나무이지만, 반계리 은행나무는 용문사 은행나무보다 키는 작아도 사방으로 펼친 품만큼은 용문사 은행나무와 비교해 훨씬 큰 편입니다. 구체적인 크기를 비교 측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부피를 비교하면, 서로 자웅을 겨루기 어려울 만큼 비슷할 겁니다.

   나이도 그렇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전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 8백 년에서 1천 년 쯤은 족히 살아온 나무입니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1천 1백 년을 살아온 나무이니, 두 나무는 나이에서도 비슷한 겁니다. 그러나 정작 반계리 은행나무가 장한 것은 그리 오래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문사 은행나무에 비해, 혹은 비슷한 나이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여전히 한창 때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요.

   이 나무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과연 '누구에게나 공통된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떠오른 사람이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입니다. 에코는 아름다움의 역사를 살펴본 역저 '미의 역사'의 서론 부분에서 이야기합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한 대상에는 거의 어김없이 '선함'의 개념이 포개진다고 했지요.

   역사적으로 미(美)와 선(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물론 전반적인 트렌드를 이야기한 것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전제도 덧붙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시대까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 것에는 언제나 '선함' 혹은 '착함'의 미덕이 들어있었다는 것이지요. 달리 이야기하면, 아름답다 혹은 선하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그를 따르고 싶고, 혹은 닮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에코는 이같은 생각을 인류 역사 속에 남겨진 예술작품들을 통해 하나하나 논증합니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던 데에 대한 대답의 일부가 여기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가이 들었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바로 착한 사람이 모여 착하게 사는 마을의 선한 살림살이의 상징인 나무입니다. 나무에 전해오는 천년 전의 전설이 바로 그런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무에는 늙고 거대한 흰 뱀이 산다는 이야기 등 여러 전설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이렇습니다.

   천년 전에 이 나무 곁에는 자그마한 우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절집 지을 자리를 찾으러 온 산을 헤매 다니던 한 노스님이 이 마을을 지나게 됐지요. 지친 몸을 잠시 쉬어 가느라 스님은 우믈가를 찾았습니다. 마침 우물가에는 착하게 생긴 한 처녀가 두레박으로 물을 긷고 있었지요. 스님은 처녀에게 다가가, '물 한 잔 다오'라고 청했어요. 처녀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물 위에 나뭇잎 한 장 살그머니 띄워서 스님께 공손하게 드렸다고 합니다.

   몇 해 전 가을,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노란 빛으로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의 단풍 풍경.

   두레박을 받아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스님은 잠시 다리쉼을 하느라 우물가에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물가 앞으로 펼쳐지는 들녘과 마을 풍경을 바라보았지요. 그때 스님의 눈에 비친 마을의 풍경은 무척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언젠가 이 마을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 자리를 오래도록 표시하고자 했습니다. 스님은 그 동안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그 자리에 꽂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 커다란 은행나무는 바로 그때부터 천년 동안 이 마을이 착하고 아름다운 마을임을 상징하며 융융하게 자랐습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70) -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신문 칼럼 원문 보기
   위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반계리 은행나무에 대한 신문 칼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전설이긴 하지만,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나무 앞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녘의 지금의 풍경도 옛 스님의 그런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덧붙이게 합니다. 지금은 들녘 양편을 휑하게 가로지르는 국도와 고속도로가 생뚱맞긴 하지만 여전히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직선으로 뻗은 자동차 도로가 없던 옛날의 풍경을 그려보게 됩니다.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않았어도 충분히 사람살이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는 풍경입니다.

   천피포수목원의 돌담을 따라 넝쿨져 자란 영춘화가 피워 올린 봄 마중 노래 한 소절.

   앞으로도 더 오랫동안 우리 반계리 은행나무가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나무들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우리네 살림살이가 더 오래 선하고 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봄 마중에 가장 앞장 서 달려나온 영춘화로 오늘의 나무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벌써 곳곳에서 개나리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만, 개나리와 닮은 노란 빛의 영춘화는 벌써부터 꽃을 피우고, 우리들 마을에 봄을 불러오느라 애썼습니다. 이 봄 영춘화 꽃과 함께 더 맑고 영롱한 날들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돌담에 늘어진 가지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봄마중을 재촉하는 영춘화 꽃송이.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