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표현된 불행 / 황현산
시는 모든 것에 대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끝까지 말하려 한다. 말의 이치가 부족하면 말의 박자만 가지고도 뜻을 전하고, 때로는 이치도 박자도 부족한 말이 그 부족함을 드러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능변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시를 잘 쓰는 것은 그럴 만도 한 일이겠지만, 어눌하게 말을 잇다가 자주 입을 다무는 사람들도 좋은 시를 쓴다. 물을 떠낸 자리에 다시 샘물이 고이듯 시가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유장한 말이 되기에는 너무 기막힌 생각이나 너무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특별한 상태에서 그 생각이 돌처럼 단단한 것이 되거나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기다린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 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 문예중앙, 20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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