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원적 / 김경성
강물을 몸에 들이고 사는 나무는
해질 무렵이면 강물 쪽으로 누워서 물베개를 베고
물이 섞이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를 듣고
빛의 결을 읽으면서 나이테를 늘리는 나무의 가계를 들여다보면
나무의 원적을 찾아낼 수 있다, 나무 아래 앉아서
풀잎 엮는 그대가 보인다
트라이아스기를 거쳐 공룡이 사라졌던 백악기를 지나
250만 년 전 신생대, 그대 발자국 찍힐 때까지
짐승의 포효보다 더 깊게 스며든
돌도끼에 묻은 사용흔적의 연대기는
움집 너머 강물 위에 물비늘 붙여서
날갯짓하듯 출렁거리게 하는 바람이 다스리는 제국이었으리
사냥을 다녀오는 슬기슬기 사람이 어깨에 멘
죽은 짐승의 숨만큼이나 간절하게 부는 바람은
지금도 물비늘 얹으며 강물 속에서 돌칼 갈고 있다
나무뿌리가 닿는 어디쯤
그대의 흔적이 있다
해질 무렵,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움집 근처
키 큰 나무 심하게 흔들고 가는 바람 있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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