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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나무의 원적

by 丹野 2010. 10. 21.






 

나무의 원적  / 김경성

 

 

 

강물을 몸에 들이고 사는 나무는

해질 무렵이면 강물 쪽으로 누워서 물베개를 베고

물이 섞이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를 듣고

빛의 결을 읽으면서 나이테를 늘리는 나무의 가계를 들여다보면

나무의 원적을 찾아낼 수 있다, 나무 아래 앉아서

풀잎 엮는 그대가 보인다

 

트라이아스기를 거쳐 공룡이 사라졌던 백악기를 지나

250만 년 전 신생대, 그대 발자국 찍힐 때까지

짐승의 포효보다 더 깊게 스며든

돌도끼에 묻은 사용흔적의 연대기는

움집 너머 강물 위에 물비늘 붙여서

날갯짓하듯 출렁거리게 하는 바람이 다스리는 제국이었으리

사냥을 다녀오는 슬기슬기 사람이 어깨에 멘

죽은 짐승의 숨만큼이나 간절하게 부는 바람은

지금도 물비늘 얹으며 강물 속에서 돌칼 갈고 있다

나무뿌리가 닿는 어디쯤

그대의 흔적이 있다

해질 무렵,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움집 근처

키 큰 나무 심하게 흔들고 가는 바람 있다

 

 

 

 

- 시집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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