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상상한 몽골, 내가 경험한 몽골
글 : 김미월(소설가)
몽골에 가보기 전 내가 상상했던 몽골은 저 멀리 신기루가 어른거리는 광활한 사막이나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푸른 초원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에서 겨울 사이 그곳에서 나는 사막의 신기루를 보고 초원의 양떼를 보고 소와 말과 야크와 낙타도 원없이 보았다. 손바닥 크기로 오려내 주머니에 넣어두고 싶을 만큼 청명한 하늘과 제아무리 근사한 이름을 붙여도 그 대상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천하절경 호수 앞에서 평생 내뱉을 감탄사를 한꺼번에 내뱉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몽골 땅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울란바타르였다. 동서남북 자동차로 꽉 찬 무법천지 도로와 멀쩡한 폐를 가진 이도 길을 걷다 말고 기침을 할 정도로 대기 오염이 극심한 그곳에서 나는 매일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잠을 청했다. 말하자면 삶은 거기에 있었다.
아, 물론 그렇다고 몽골에 다녀온 후 내가 떠올리는 몽골의 이미지가 그 황량하고 삭막한 도시로 전격 교체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궁금한 것이다. 과연 무엇일까. 지금 내가 기억하는 몽골, 내가 아는 몽골은.
그곳에서 유난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몽골 국민의 애국심이었다. 내가 만난 몽골인 열에 열 모두가 자신의 조국이 몽골인 것이 자랑스럽고 다음 세상에도 마땅히 몽골인으로 환생하겠노라 했다. 심지어 한국에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고 한국을 무척 동경한다는 한 젊은 여성은 몽골의 척박한 기후와 낮은 경제 수준 등에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그렇게 못마땅한 점이 많은데 왜 다시 몽골에 태어나려고 해요?”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그녀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꾸했다.
“다음 세상에 환생할 때쯤이면 몽골도 훨씬 더 발전해 있을 테니까요.”
언뜻 맹목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던 그 굳건한 애국심 때문인지 그들은 국기의 이미지나 몽골을 상징하는 소욤보(Soyombo) 문양을 일상생활에 널리 차용하곤 한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자동차 전면 유리에 부착한 스티커이다. 우리나라에서 차 앞유리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관용차량으로 오해할 텐데 몽골에서는 국기 스티커가 매우 흔했다.
그런가 하면 애국심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깊은 신심이다. 소욤보 이상으로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마니차라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몽골어로 후르트라 부르는 마니차는 원통 안에 경전 두루마리를 넣은 불교 법구로, 원래 티베트에서 문맹 신자들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손으로 그 통을 돌리기만 해도 경전을 읽거나 육자진언을 외운 것과 같은 공덕을 쌓게 된다고 믿는다. 몽골에서는 택시를 타도, 식당에 가도, 관공서에 가도, 사람들이 제 손 잘 닿는 곳에 놓아둔 마니차를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뿐인가. 도시든 시골이든 야트막한 언덕이나 높은 산 정상, 마을 입구 등에는 어김없이 ‘어워’(ovoo)가 있다. 그것은 돌무더기 꼭대기에 나무를 꽂아놓은 일종의 제단이다. 숭배나 추모의 대상에 거는 하닥이라는 헝겊 조각들로 나무를 감싸놓은 모양이 성격뿐 아니라 외양 면에서도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유사하다. 몽골인은 어워에 그 지역의 땅과 주민을 보호해 주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 주위를 돌면서 돌을 던지고, 보드카나 우유를 뿌리고, 돈이나 사탕을 올려놓고 소원을 빈다.
놀랍게도 어워는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동차로 대여섯 시간을 달려도 불빛 한 점 찾을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나 인적이 끊긴 지 수십 년은 되었을 황량한 폐사지 뒤편 같은 의외의 장소에서도 어워를 발견하고 소스라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만큼 몽골 땅 어디에나 몽골인의 삶 어디에나 있는 것이 바로 어워이고 종교이고 신이다. 어떤 종교 어떤 신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언젠가 몽골인 친구와 함께 내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어워에 간 적이 있다. 언덕 정상에 이르자 마침 두 사람이 어워를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사람은 허리가 기역으로 꺾인 모습이 칠십은 족히 넘었을 할머니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많아야 스무 살쯤 됐을까 싶은 청년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워를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그 청년과 안면이 있는지 갑자기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이 몽골어로 대화하는 동안 나는 어워 앞에 말없이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모아 쥔 두 손바닥 사이에 염주가 걸린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청년을 살펴보았다. 그의 목에서 빛나는 것은 십자가 목걸이. 그러니까 샤머니즘 제단에 나란히 고개 숙인 그들은 늙은 라마교 신자와 젊은 개신교 신자였던 것이다.
친구의 귀띔에 따르면 조모와 손자 사이인 그들은 청년의 어머니가 큰 병을 앓고 있어 매일 어워에 올라 기도드리는 것이라 했다. 서로 종교가 다른데도 할머니는 며느리가 이 신을 사랑하고 이 신이 며느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청년은 어머니가 이 신을 사랑하고 이 신이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워의 정령에게 기도한다는 것이었다. 앓아눕기 전에는 청년의 어머니가 매일 그곳에서 가족의 행복을 빌었다던가. 청년과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친구는 저도 그의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어워를 돌기 시작했다. 아무도 어워 앞에서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지 않았다. 어워가 그들에게 종교를 묻지 않듯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게 아름답고도 신성한 풍경이었다. 또한 신심보다 더 깊은 진심을 목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형체도 불분명하고 색깔도 모호하기는 하되, 내가 지금 기억하는 몽골의 이미지는 풍경보다 사람으로 더 많이 채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를 넋 놓게 했던 것은 눈앞에 일렁이다가도 막상 가까이 가면 사라지던 신기루 오아시스와 별들이 무리지어 강물처럼 흐르던 초원의 밤하늘과 수심 십수 미터 아래 사고로 잠겨버린 자동차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무섭도록 투명한 호수 같은 것들인데, 어째서 이제 와 돌아보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저 그곳의 사람들일까.
물론 그밖에도 몽골을 회상하면 두서없이 떠오르는 많은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몽골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된 생각이 아직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므로 몽골에 다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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