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 살며 빛 찾는 사람, 그게 시인
시 - 이영광 ‘나무는 간다’ 외 14편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몸으로 시 쓰는 사람”(시인 최정례), “응달의 정신”(시인 박형준), “울림이 큰 시”(평론가 강계숙)….
2011년 미당(未堂) 문학상 예심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왜들 이러셔’ 궁금할 법도 하다. 미당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공부 많이 한 이 시인이 왜 ‘몸으로 시 쓴다’는 평가를 받는지. 아픈 세상에 거친 펀치를 날리고, 때론 사랑과 죽음에 대해 서정적 절창을 쏟아내기도 하는 이 ‘전업 시인’에게 동료 문인들은 왜 열광하는지. 그래서 이영광(44)을 만났다.
나무는 간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 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왜 시를 쓰나.
“시는 말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라 말이 끊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할 말이 없는 상태, 말 가지곤 안 되는 상태,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찾는 또 다른 말, 도저히 말이 안 나올 것 같은 데서 나오는 어떤 말, 그게 시의 매력이다. ”
-용산 참사 때 현장에 나갔던 시인 중 하나였다. 당신의 시 어디에도 그 네 글자는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시의 딜레마는, 그런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쓸 때도 시인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말로 써야 한다는 거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자행하고 있는 폭력·고통·절망·죽음 같은 것은 씻어내고 풀어내야 하는데 사회질서, 법체계는 그런 걸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시인은 뭉쳐있는 감정을 파헤치고,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그것을 언어로 드러낸다.”
이씨는 시 ‘유령’ 연작에서 3차까지 술 마시고 택시도 못 잡고 취한 새벽에 시든 폐지더미 리어카에 싣고 지나가는 ‘유령’을 못 본 척 하지 못한다. 경기도 구리까지 대리운전 기사와 귀가하면서 대리기사라는 도시의 유령 또한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간 신문의 숱한 사망 소식 또한 덤덤하게 넘길 줄 모른다. 그는 선한 걸까?
“시가 사람을 바꾸는 면이 있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맨 얼굴로 대해야 하는 상황을 시가 제공한다. 인간 삶에서 보기 꺼려지는 거북한,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응달의 정신’은 울림이 크다. “시인은 그늘에 사는 사람이다. 응달에서 빛의 세계를 보는 것이 어쩌면 시인의 포지션인 것 같다. 응달, 그늘에서 바라보면 빛의 세계가 더 잘 보이니까.”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광=1967년 경북 의성 출생. 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2003년),『그늘과 사귀다』(2007),『아픈 천국』(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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