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그늘 학습
[중앙일보] 입력 2011.08.03 00:11 / 수정 2011.08.03 00:11느티나무 Zelkova serrata Makino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옆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더 앉아 있어야겠다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500만 장의 잎이 달린다. 벌레에게 양분을 나눠주고 구멍난 잎, 덜 자란 앙증맞은 이파리, 통통하게 물 오른 잎사귀. 제가끔 서로 다른 잎이 겹겹이 쌓이고 엉키며 그늘을 지어낸다. 살아 움직이는 그늘이다. 농담(濃淡)과 심천(深淺)이 있는 흰 그늘이다. 가장 밝은 어둠에서 가장 어두운 밝음까지, 빛의 흐름이 춤춘다. 부는 바람 따라 500만 장의 잎이 살랑이며 짙은 그늘을 지었다가 이내 흩어지며 옅은 그림자를 짓는다. 움직이는 빛을 품은 그림자다. 다른 모든 생명을 품어 안는 생명체의 너그러움이 싱그럽다. 가늣하게 스치는 산들바람 따라 새 소리 스며든다. 하루 노동에 지친 사람도 들어선다. 나무 그늘은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의 쉼터다. 언제나 부딪히는 사람의 마음도 잦아드는 안식처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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