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열 시집 『눈물이 시킨 일』
원시적인 언어로써 지향하는 우주적인 삶의 원리
정유화 (시인, 문학평론가)
인간에게 ‘눈물’은 감정의 소산물이다. 인간은 극한의 슬픔을 이기지 못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역설적으로 너무나 큰 기쁨을 맞이할 때 눈물을 흘기기도 한다. 눈물은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원초적으로 표현해주는 몸의 언어이다. 아마도 눈물만큼 인간의 감정을 잘 드러내주는 언어는 없을 것이다. 눈물은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 언어의 기능을 초월하는 몸의 언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몸의 언어인 ‘눈물’은 이성적 삶에 억압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을 해방시켜주는 의미작용을 한다. 이성적인 삶은 합리적, 논리적, 통일적인 사고를 강요하지만 감정적인 삶은 이를 벗어난 원초적, 감각적, 분산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전자가 정신적인 삶의 원리를 표방한다면 후자는 육체적인 삶의 원리를 표방하는 것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적인 삶은 육체성을 억압하는 이성적 사고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성과 감성의 분리와 대립으로 인하여 인간은 통합적인 삶을 경영하지 못하고 갈등과 분열의 파편화된 삶을 경영하고 있다. 인간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이성적 세계에 의해 억압된 감정적 세계를 한꺼번에 드러낸다는 뜻이 된다. 이를 통하여 인간은 자아를 쇄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합된 자아를 정립할 수도 있다. 이성적 산물인 언어 대신에 감정적 산물인 눈물로 말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나호열의 시집 제목은 『눈물이 시킨 일』 이다. 일반적으로 시집 제목은 그 시집의 내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적인 키워드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시집 제목에 들어있는 ‘눈물’이라는 단어는 시집의 의미를 확산 ․ 수렴하는 지배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나호열은 ‘눈물’을 통해서 다채로운 시적 의미를 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의미는 두 가지 축으로 모아진다. 하나는 이성적 산물인 언어의 세계를 해체하여 감성적 세계를 복원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모순된 삶의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전자가 삶에 대한 새로운 시적 발견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삶의 원리로 삼고자 하는 시적 욕망이 된다. 이러한 시적 의미의 출발점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예의 「눈물이 시킨 일」이다.
한 구절씩 읽어가는 경전은 어디에서 끝날까
경전이 끝날 때쯤이면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지나면 하루가 지워지고
꿈을 세우면 또 하루를 못 견디게
허물어 버리는,
그러나
저 산을 억 만 년 끄떡없이 세우는 힘
바다를 하염없이 살아 요동치게 하는 힘
경전은 완성이 아니라
생의 시작을 알리는 새벽의 푸르름처럼
언제나 내 머리맡에 놓여져 있다
나는 다시 경전을 거꾸로 읽기 시작한다
사랑이 내게 시킨 일이다
이 텍스트에서 대립되는 것은 경전의 세계와 실제 삶의 세계이다. 시인은 경전의 세계를 통하여 실제 삶의 세계를 완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경전의 완성된 세계와는 달리 실제 삶은 언제나 무너지고 버려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꿈을 세웠던 시인의 하루가 지워지고 버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의 세계와 실제 삶의 세계는 통합되지 못하고 더욱 괴리될 수밖에 없다. 부연하면 경전에 나타난 삶의 원리와 실제 삶의 원리가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이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댄 곳이 바로 경전의 세계인데, 오히려 그 경전의 세계는 시인에게 절망만 주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리 되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경전’이 이성적 산물인 ‘언어’로써 인간적인 삶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기에 그러하다. 언어의 세계는 관념적인 것으로서 실제 생활하는 인간의 감각적인 세계와 대립한다. 이를 구체화 해보면 ‘이성/감성, 형이상/형이하/, 정신/육체, 질서/산만, 의미/무의미’ 등의 대립항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이성적 산물인 언어의 세계는 ‘이성, 형이상, 정신, 질서, 의미’등의 우등한 의미를 취하게 되고, 감각적인 인간의 세계는 ‘감성, 형이하, 육체, 산만,무의미’ 등의 열등한 의미를 취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언어로 된 경전의 세계는 삶의 중심이 되고 감각적이고 사물적인 인간의 세계는 삶의 주변이 된다. 곧 주종의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억압이 생겨난다. 그러나 시인은 그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물의 세계, 곧 ‘산’과 ‘바다’가 보여주는 삶의 현상을 통하여 경전의 삶의 원리를 배제하고 감성적인 삶의 원리를 추구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언어의 지시적이고 획일적인 관념의 세계(의미론적 세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시인이 “다시 경전을 거꾸로 읽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경전을 거꾸로 읽”는 것은 이성적 산물인 언어의 세계를 해체하는 행위이다. 언어를 해체한다는 것은 의미를 해체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대상)’자체를 보여주는 원시적인 언어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에서 의미를 배제시키고 나면 남는 것은 순수한 사물(대상)뿐이다. 시인은 원시적인 순수한 언어로써 그러한 사물의 세계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말들은 /꽃에서 태어나서 가슴에서 죽는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을 가르치지만/그래서 침묵을 배우는 일은 더디고 힘든 일“(「파문」일부)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는 ‘꽃’이라는 사물에서 태어난다. 그러한 언어를 ‘의미’의 체계로 가르치려고 할 때에 그 사물은 사라지고 만다. 시인이 그 가르침을 어리석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호열의 시집에 실린 다수의 시편들은 그 소재가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원시적인 순수한 언어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 살 배기 유빈이가 한창 말을 배운다
봄 나무에 잎 돋아나듯
허공을 휘어잡는 가지처럼
단어가 늘고 문장이 이어진다
아, 예뻐라
곰도 알고 여우도 알고 나무도 알아
한 팔로 번쩍 안아 밤하늘을 보여주니
달도 가리키고 별도 안다
조금 있으면 숲도 알고 하늘도 알고
말 속에 숨어있는 슬픔도 배우게 되겠구나
언제일까
이것과 저것을 가르고
좋고 나쁜 것을 가르쳐야 할텐데
일급 수 맑은 눈빛과 마주칠 때
세상을 너무 돌고 돌아
희미해지고 낡아버린 내 눈이 너무 어두워
말문을 닫아버린다
문장을 지운다
- 「말 배우기」 전문
이 텍스트에서 시인은 세 살 배기 유빈이가 말(언어)을 습득해 가는 것을 보며 매우 기뻐하고 있다. 그런데 말을 익한다는 것은 사물의 세계를 하나하나 의미의 세계로 바꾸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조한다면 말을 통해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로 진입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의 이러한 세계로 진입하게 되면, 그 언어는 ‘사물(대상)’자체를 지시하지 않고 ‘의미’를 지시하게 된다. 지금 유빈이가 익히고 있는 ‘곰, 여우, 나무, 달, 별’ 등은 사물 자체를 지시하는 순수한 언어이다. 그래서 시인도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인은 오히려 유빈이의 말 익힘을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말을 이성적인 의미(의미론적 세계)로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말은 ‘이것과 저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는 도구적 언어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결국 시인은 말문도 닫고 문장도 지우고 만다.
나호열 시인이 “묵언의 수행자처럼 말을 버릴 때”(「참, 멀다」), ‘숲을 지나서/ 이윽고 다다르는 불의 산/ 긴 문장은 품사를 버리고 하늘을 우러“러(「불의 산」 일부)볼 때, 그가 새롭게 발견한 삶의 원리는 어떤 것일까. 부연하면 언어로써 살아야 할 시인의 시적인 삶의 원리는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직설적으로 언급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주적인 삶의 원리이다. 주지하다시피 시인은 이성적인 삶의 원리를 배제하고 감성적인 삶의 원리를 수용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적인 삶의 원리, 곧 육체적인 삶의 원리는 자연적인 삶의 원리, 곧 우주적인 삶의 원리를 수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주적 삶의 원리는 순환하는 리듬을 바탕으로 해서 모든 사물을 통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삶의 원리를 수용한 시인 역시 모순되는 삶의 의미까지 통합하고자 한다.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그의 시적 삶의 원리이다. 예의 순수한 원시적 언어가 그의 시적 의미들을 수렴하고 있다면, 모순을 통합하는 언어는 그것을 통해서 시적 의미들을 확신하는 것이 된다.
앞 마당 목련은
목젖까지 환히 들여다 보이게 웃다
떨어지고
뒷 뜰 목련은 이제야
가슴을 부풀리고 있는 중이다
피고 지는 선후가 무슨 문제이랴
우주와 몸 섞는 오르가즘 한 번이면
미련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은 꽃인데
그걸 모른다
오르가즘을 모른다
- 「 예감 」 전문
시인은 이 텍스트에서 우주적 삶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앞 마당에 있는 목련과 뒤뜰에 있는 목련은 그 공간적 차이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다. 인간 중심적인 삶의 원리로 보면, 그 초점은 꽃이 피고 지는 선후에 모아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떨어진 꽃은 죽음의 의미로, 피어나는 꽃은 생명의 의미로 나누어 파악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중심적인 삶의 원리로 보면, 꽃이 피고 지는 선후 시기의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연의 세계, 곧 우주의 세계에서는 ‘피고 지다’의 선후관계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의 순환하는 원형적인 리듬에 따라 피면서 지는 것이고, 지면서 피는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어느 것이 먼저라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적 삶의 원리에는 모순되는 것이 통합되어 나타난다. 피면서 지는 것, 지면서 피는 것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에 그러하다.
또한 자연 중심적인 삶의 원리로 보면, 피고 지다의 선후의 문제보다는 목련이 우주의 리듬을 따라“우주와 몸 섞는 오르가슴”이 더 중요한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와 몸(목련)의 교감에 의해 생명이 탄생되는 그 신비한 세계에 더욱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성적 산물인 언어로서는 그 생명의 비의성과 오르가슴을 도저히 궁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인간 중심적인 삶의 원리, 곧 이성 중심적인 삶의 원리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사람은 꽃인데/그걸 모른다/오르가슴을 모른다”고 말이다. 시인에 의하면 ‘사람’도 우주적 리듬을 따라 사는 ‘꽃’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도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적 삶의 원리를 체현하는 시인에게 이제 “어디든 세상의 중심”( 「세상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성적 언어가 구축해 놓은 ‘중심과 주변’의 대립항을 서서히 해체해가고 있다. 그 해체는 시인으로 하여금 모순된 사물의 의미까지 통합하게 해주는 삶의 원리로 작용한다. 가령, “물 같은 사람은 자신이 불이라 여기고/ 불 같은 사람은 자신이 물이라 생각하면서/ 결국은 물과 불이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어느 평생이 필요할까”(「폭죽」 일부)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서로 모순되는 ‘물과 불’을 하나의 세계(한 몸)로 통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도 그 통합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종일 강물 위를 걸었는데/ 발바닥에 티눈이 박였다/흘러가는 것들이 내게 남긴 발자국일까//걸으면서/ 아프게 웃는 연습/ 웃음이 절뚝거린다”( 「강물 위를 걷다」 전문) 가 바로 그것이다. 티눈은 발을 움직이는데 고통을 주는 불필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뽑아 버려야 한다. 하지만 시인에게 티눈은 “흘러가는 것들이 내게 남긴”존재이기에 뽑아 버리지 않고 몸의 일부로 소유하고 있다. 물론 그 소유로 인하여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아프면서 웃는 연습“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픔과 웃음을 통합하는 삶의 원리를 찾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웃음이 절뚝거리는‘ 절묘한 삶의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나호열의 시집 『눈물이 시킨 일』은 원초적인 순수한 언어로써 우주적인 삶의 원리를 체현하려는 시적 욕망을 담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시집은 이성적인 삶을 모토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잖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계간 『미네르바 』 2011년 여름호
출처 / 세상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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