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날 한가한 날을 깨워 기분 좋게 길을 떠난다. 경남 창녕은 제2의 경주라 일컫는 곳이다. 그만큼 우리의 옛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 가는 발길에 흥분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짧은 여유시간이라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아쉽다. 국보33호 신라진흥왕 척경비, 국보34호 술정리 삼층석탑,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조선시대 석빙고와 더불어 홍예모양의 만년교와 조선시대 가옥구조를 알 수 있는 술정하씨 초가 등 많은 답사꺼리 들이 산재해 있지만 지난날의 답사길로 대신 다독이며 기억을 더듬는다.
화왕산 아래 천년고찰 관룡사觀龍寺 입구에 다다르자 돌장승 벅수 두기가 이방인의 발길을 검열하고, 꼬장꼬장한 모습의 벅수는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한 기운을 모두 내려놓고 사찰로 들어서라 인상을 쓴다. 그들의 뜻에 따라 마음 속 합장을 하고 하늘의 맑은 청량한 기운을 받아 오른다. 이 장승은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장승이지만 어느 날 어리버리한 두 장승은 길을 잃었다. 대전의 어느 구석에서 울고 있는 것을 데려와 이렇게 절집초병으로 임무를 부여하니 제법 그럴 듯하다. 역시 사람이든 쓰임새에 따라서 품격을 달리하니 마음과 달리 어느 위치의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누는 등급의 인생이 문득 처량하게 느껴진다.
앙증맞은 작은 산문을 지나 관룡사 대웅전에 들어서니 불단인 수미단에 각각의 조각들이 눈을 붙잡는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한 줄기 햇빛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이루어 내리고, 그곳엔 작고 앙증맞은 주악천인상이 햇살의 조명아래 요염한 미소로 유혹을 한다. 그 유혹이 현세를 인도하고 도와주시는 관음보살로 내게 비춰지는 것은 허허로운 가슴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아름다운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하늘하늘 날개옷이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애써 털어내고, 흥분된 발길로 땀 흘리며 우뚝 솟은 용선대에 오른다. 그곳엔 높은 바위위에 석조석가여래좌상 한분이 당당하게 정좌하고 있다. 불상 앞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불쑥 나타나니 죄송하기 그지없지만, 그러나 다행인 것은 불상이 바라보는 아래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있으며, 반야용선에 무임승차한 기분이니 이보다 좋을까?
화왕산 중턱 화왕산성 갈림길의 용선대 마루, 높은 연화좌대 위에 결과부좌한 채 당당한 표정으로 웃는 듯 아닌 듯, 보는 이의 맘에 따라 서로 각기 다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곱슬의 나발이며, 머리 위 깨달음의 상징인 육계가 두드러져 보이고, 온화한 모습에 참 부드러운 표정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통견의 법의가 얕게 조각되어 있어 볼륨감은 줄어드나 얇은 옷감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맛을 주고, 통통한 볼살이 참 친근하게 느껴진다. 수인은 마귀를 굴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인데 새끼손가락 끝이 살짝 떨어져나가 내 것처럼 아프다. 어딘가 친근한 모습은 바로 경주 토함산 석굴암 부처를 닮아있기 때문이며, 크기가 작고 어깨는 다소 왜소한 편이지만 이곳에 정좌하고 있으니 크기와 균형에 상관없이 당당한 모습에 믿음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또한 팔각의 높은 좌대는 연꽃이 위로 핀 앙련대인데, 세 겹의 연꽃은 주름까지 부드럽게 피어나고, 그것이 이중으로 층층이 조각되어 양감이 두드러진다. 또한 회백색의 불상과 달리 황토의 짙은맛이 참으로 정겨워 만지면 사르르 오므라들 것만 같은 느낌을 갖는다. 가운데 긴 간주석에 안상을 음각하고, 아래에 다시 연꽃이 아래로 핀 복련의 받침을 주어 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층층의 앙련과 달리 볼륨이 심한 하나의 연꽃만이 다소 길게 피어있다.
이렇게 시원한 눈 맛의 시야 속에 정좌하고, 아무런 두려움도 갖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믿음의 공간연출을 한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위풍당당한 석불. 하늘을 가득히 머리에 이고, 서산으로 기울어가는 해를 뒤로하고, 멀리 차들이 지나는 소리까지, 향락의 중생들이 고래고래 절규하듯 마이크에 대고 알 수 없는 소리까지 포용하며 미동 없이 앉아있다. 멀리 인간세상을 굽어보는 그 표정에 오고가는 중생들의 무심한 눈길과 정성스런 마음의 울림까지 굽어보며, 빛에 비치는 양감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불상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고소공포증에 죄지은 만큼 내 다리는 후들거리고, 흠칫 놀라 뒤돌아 훔쳐본 부처님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굽어보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욕심내지만 까칠하고 저급한 성정이 또 한 번 서둘러 부끄러워진다. 높이 있음에 어지럼이 도질까 옆으로 내려와 석불의 옆모습을 먼발치에서 훔쳐본다. 내가 제삼자가 되어 또 다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며 있었다.
태어나고 죽는 고통이 가득한 차안此岸의 세상에서 억겁의 바다를 건너 진리를 깨달아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 피안彼岸의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반야용선의 모습을 관중이 되어 감상한다. 이때 갑자기 울리는 손전화의 소리가 내 감상의 애를 끊어버렸지만 참으로 감동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용선龍船이란 용이 호위하며 이끄는 배이다. 원래는 반야용선이라 부르는데 반야, 즉 지혜를 노로 삼아 힘차게 저어 피안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뱃머리에는 길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있고, 부처님께서 이 배의 선장으로 계신 것이니 여기 부처님이야 말로 피안으로 가는 반야용선의 선장인 것이다. 저 아래 너른 골짜기는 용선이 헤쳐 나아가야할 강물이자 고통이 가득한 세상인 차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소 억척을 부리자면 이곳은 바로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정좌하고 있는데 경주석굴암 부처가 그러하고, 대구팔공산 갓바위 부처가 그러하고, 남원실상사 철불이 그러하고, 이곳 용선대 석불좌상이 그러하다. 동지, 즉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음의 세계에서 양의 세계를 지향하는 풍수사상에 기원한다고 할 수도 있음이다.
몸이 온통 검은 까마귀들이 호들갑을 떨고 이방인이 바라보는 시선을 방해한다. 그러다 석불 주위를 몇 바퀴 돌다가 요란하게 사라지고 다시 돌기를 몇 번 반복하며 내게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금의 이 모습 그대로를 가슴 깊숙이 품고 살아가라는 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동적인 영상을 내 가슴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참 시원한 눈맛에 감동은 덤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중년 부부의 애정 섞인 농도 그렇게 정겹게 들릴 수가 없었다.
"우리 늦둥이 하나 점지해 달라고 빌자 응?"
나는 다시 저자거리에 돌아가 악을 쓰듯 살겠지만 한동안 이곳 용선대 석불좌상이 내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 같아 벅찬 즐거움이 샘솟는다.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9 관룡사
음악은 지니님꺼 슬쩍 했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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