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략과 압축의 의미
나호열
거두절미하고 시는 압축의 결정체이다. 일일이 그 성분을 헤아릴 수 없지만 여러 영양분이 농축되어 있는 당의정과 같다. 당의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압축된 시는 깨물어 볼 수도 있고 녹여볼 수도 있으며 온갖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쓰고 달고 맵고 짠 맛이 시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설탕은 달다. 소금은 짜다. 설탕과 소금은 그 쓰임새는 다르지만 우리의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설탕과 소금 중에 무엇이 좋은 것이냐? 하고 묻는 사람은 없다. 과다한 섭취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그래서 우리는 적절한 양을 섭취해야 한다. 음식을 맛보면서 ‘간이 맞다’라고들 한다. 압축은 바로 그런 것이다. 당분이 필요한 사람에게 설탕은 유용하다. 염분이 부족한 사람에게 소금은 유용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맛들이 버무려져서 식욕을 자극한다. 식욕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 안되는 중요한 욕구이다. 시를 쓰는 일이나 시를 읽을 때 우리를 식욕과 같은 욕구를 이해하여야 하고 ‘간이 맞는’ 자신의 삶이 어떤 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압축의 미학은 쉽게 얻어질 수 없다. 그것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여러 경로가 하나로 합쳐지고 고도의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언어 자체가 갖는 매카니즘과 규칙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기표와 기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굳은 벽에 못을 박으려면 망치를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요리를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칼질에 능숙해야 하는 것처럼 표현의 도구인 언어에 대하여 숙달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좋은 글을 쓰겠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그 다음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우리 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다. 우리 말은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의 유산이고 흔적이며 사유의 결집체이다. 언어에 대한 이해가 능숙하게 칼을 다루는 것이라면 우리 말은 조리되기 이전의 재료이다. 한 가지 더 붙여서 이야기한다면 자신에게 알맞은 소재와 주제를 찾아내고 거기다가 진실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은 그럴싸한데 속이 텅 빈 시는 혐오스럽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그렇다. 삶에 대한 깊은 관찰과 체험, 그리고 관조도 없이 아름다움을 꾸미려 한다면 사람만 실없어 지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에게 되물어라”.
전도연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최근에 그가 나온 영화, ‘인어공주’를 보았는데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는 지나치게 이마가 넓고 팔등신 미인도 아니고 특별나게 이쁜 구석이 없는 친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에서 인기 정상의 여배우로 인정받는 것은 배역에 대한 몰입과 깊은 자기동일시에 있다. ‘인어공주’에서 그는 일인이역을 하고 있는데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분장술의 덕도 있었겠지만 단순무식하고 순박한 시골처녀와 교육받은 도시처녀의 역할을 비교해 볼 때 그의 연기력은 참으로 탁월했다고 생각된다. 가장 탁월한 화장술은 아무것도 얼굴에 덧칠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말, 조금 튀어 보이는 말, 남들이 잘 쓰지 않는 사전 속에서 끄집어 낸 기어들로 시를 꾸미려 할 때 그 시는 백이면 백 실패하기 마련이다. 더 부연해서 말한다면 전도연이라는 여배우는 자신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역할을 분명히 이해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다는 희소성을 염두에 두거나 남들이 쉽게 동의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사랑’ 이라든지 ‘자연 예찬’이라든지 하는 장식적 요소에 빠져들면 아주 설익거나 제과회사에서 만든 수많은 빵 하나를 먹는 심심함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남들에게 거만하고, 공손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남에 대한 배려는 눈꼽 만큼도 없으면서 자신은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적어도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냉정한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 간절해질 때 그 때 비로소 압축의 미학은 우리 앞에 드러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비판이 없으면 우리는 어떤 일에도 간절해지지 않는다. 간절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을 덧붙이게 되고 글이 늘어지게 된다. 또 늘어진 글들을 싹둑 싹둑 잘라내다 보면 진의는 사라지고 생략된 흔적들만 가득 차게 된다. 생략된 글들은 전혀 논리성이 없다. 시가 논리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면 혹자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인간의 모든 행위는 논리성과 사유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던이나 다 그 나름대로의 사유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압축의 미는 논리성과 구조를 감추고 있는 형식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이다.
소요문학의 7월호의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 어느 시는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또 어느 시는 지나치게 생략적이라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제대로 간을 맞춘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좀 더 자신을 고열에 달구어내고 견뎌내는 모습들보다는 자신을 평범 속으로 스스로 가두는 모습들이 눈에 익숙했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은 단지 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이나 기행문 같은 산문 역시 생략과 압축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스러울 수 없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산문에서 압축의 문제는 구조와 결부되어 더 깊이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씀에 있어서 남녀노소의 구분과 경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약관의 나이에도 인생을 관통하는 혜안의 글을 쓸 수 있으며 노익장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청년의 씩씩한 기상과 기개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한여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한 여름의 더위와 강렬한 태양 없이 가을의 곡식은 여물 수 없다. 시간은 우리를 삭정이로도 만들고 알찬 열매로도 만든다. 그런데 그 시간의 주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2004년 7월
모짜르트 :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 364 제2악장 :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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