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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맨 발로 걷고 싶어지는 땅 속에서 울려오는 생명의 아우성

by 丹野 2011. 2. 7.

[나무 생각] 맨 발로 걷고 싶어지는 땅 속에서 울려오는 생명의 아우성

   지난 겨울, 눈 내리던 날 찾아본 충남 예산 추사고택 사랑채 풍경입니다.

   [2011. 2. 7]

   설 지나면서, 입춘도 함께 지났습니다. 더불어 날씨도 포근해졌습니다. 고향 집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갑작스레 포근해진 날씨 탓에 안개가 짙게 깔렸던 걸 빼면 고향 길은 그리 고단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귀성 귀경길 정체도 예년에 비해 그리 심하지 않았던 듯하고요. 길 위에서 아무리 곤한 시간을 보낸다 한들, 그렇게 고향을 다녀와야 나이도 한 살 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길 위에 몇 겹으로 덧쌓였던 눈도 어느 틈엔가 죄다 녹아 들었습니다. 촉촉이 젖은 땅 위를 맨발로 걷고 싶어졌습니다. 내일은 전남 지역의 나무를 찾아보러 나설 참인데, 나무 앞에 도착하면 신발부터 벗어제끼렵니다. 아마도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를 새싹 새잎의 꼼지락거림이 또렷이 느껴질 겁니다. 언제나 봄은 낮은 곳에서부터 살금살금 다가오니까요.

   방조제로 가로막혀 더 멀어진 바다를 향한 그리움에 사무친 김제 망해사 낙서전 앞의 팽나무.

   아직은 겨울 내음을 채 덜어내지 못했을 겨울나무들이 생각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겨울을 지나온 나무들이지만, 겨울나기는 갈수록 힘겨워집니다. 나무의 몸 안에 새겨진 선명한 겨울의 기억들만으로는 겨울나기 채비가 온전하지 않으니까요. 20년이라거나 혹은 40년만에 찾아온 추위, 또 지방에 따라서는 관측 사상 가장 추웠다는 겨울 날씨는 나무들에게도 뜻밖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철 흐르면 저절로 제 몸 단도리를 철저히 하는 나무라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를 견뎌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한번 최악의 추위를 경험하고 나면 다음에 다가오는 추위는 좀더 쉽게 견딜 수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다가오는 겨울 추위가 꼭 지난 겨울보다 따뜻하리라고 단언하기 어려우니까요. 겨울 뿐이겠어요. 다가오는 봄, 여름도 마찬가지겠지요.

   고려청자 도요지 옆에 서있는 천연기념물 제35호 강진 사당리 푸조나무에서는 언제나 옛 사람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사람의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나무는 사람이 느끼는 주변의 변화를 똑같이 느낍니다. 기후 변화 뿐 아니라, 들고 나는 사람들의 변화까지 그렇지요.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잎을 다 떨구고 헐벗은 채로 지내야 하는 겨울에는 더 그렇지요. 사람이야 추워지면 방안에 틀어박힐 수도 있고, 나무들이 화석 되어 지어내는 연료로 따뜻하게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부는 바람, 눈보라 모두 의연히 맞서야 하는 나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겨울을 보내며 바라보는 헐벗은 나무들은 참으로 기특해 보입니다. 아.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나무를 놓고, 기특하다고 해서야 어울리지 않겠네요. 장하고 고마울 뿐이라고 이야기해야 하겠죠. 그렇게 장하게 겨울을 보낸 나무들이 땅 속 깊은 곳의 가느다란 뿌리들에서부터 서서히 옅은 잠을 깨우려 합니다. 이제는 봄 기지개를 켜야 할 때입니다.

   바위처럼 견고한 침묵에 휩싸인 부산 좌수영지 푸조나무의 겨울 풍경.

   지난 주 신문 칼럼으로 소개했던 부산 좌수영지 푸조나무입니다. 니체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걸작 ‘이 사람을 보라’에서 “생명 그 자체였다기보다 생명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환기시켜주는 사람”이라고 했던 절묘한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며 소개했던 나무입니다. 저 푸조나무 뿐 아니라, 잎 떨군 낙엽성 나무의 겨울 모습은 대개가 다 그렇지요. 특히 크고 오래된 나무일수록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바위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 나무는 아무 말도 건네오지 않습니다. 견고한 침묵만이 그의 주위를 휨싸고 돌 뿐이지요. 그러나 실은 나무도 사람의 온기를 기다립니다. 나무는 지난 계절 동안 제 몸 안에 새겨 둔 사람살이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건네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무가 건네주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나무를 스쳐 지나는 시간과 사람을 스치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 때문입니다. 오랜 기다림과 눈맞춤으로 그의 시간에 맞출 만큼 천천히 바라보아야 비로소 나무들은 천천히 이야기를 건네옵니다.

   포근해진 날씨 사이로 피어나는 봄 기운 탓에 벌써부터 매화 피어나기를 기다려집니다. 사진은 도산서원 경내의 매화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면서 나무는 서서히 따스해지는 봄 햇살을 가장 먼저 느낍니다. 그리고 천둥처럼 온 가지에 화들짝 꽃을 피우겠지요. 사람들에게 봄이 다가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지요. 아니 어쩌면 봄이 다가왔어도 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딘 감각을 깨우쳐 준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벌써부터 봄 매화의 개화 소식이 기다려지는 입춘 부근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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