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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내 시에 영감을 준 여행, 여행지-②

by 丹野 2011. 1. 28.

 


 

 

 내 시에 영감을 준 여행, 여행지-②

[1편에 이어]
 
계간 시인세계

교통수단의 발달과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1990년을 전후한 시점부터 여행은 보편화와 대중화의 단계를 넘어 전문화, 특성화, 예술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 시와 시사 속에서도 여행은 시인들의 정서, 의식, 언어, 리듬, 상상력 등을 바꾸어놓을 만큼 중요한 시적 기제機制로 작용하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호 기획특집으로 마련된 <내 시에 영감을 준 여행, 여행지>는 갇힌 일상에서 벗어난 시인들이 낯선 시공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어떻게 시로 담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여행은 시인에게 위안과 함께 아름다운 삶의 서사를 느끼게 하며, 잊혀지지 않는 시상詩想을 꿈처럼 건네준다. 일상의 짐을 잠시 벗어 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여행은 지금-여기의 시공을 벗어나는 영혼의 날개가 되기도 하며, 바깥을 떠돌던 자아가 지금-여기라는 삶의 심층으로 다가서는 한 순간이기도 하다.  ―― 편집자

 
[15] 풍경에는 비밀이 있다

    송    재    학
 
 비밀

1
흥덕왕릉*의 숲에는 비밀이 있다 섭씨 19도, 서풍과 함께 듣는 솔방울 소리, 부재를 위해 텅 빈 공간이 부푸는 한낮, 밤이 아니라도 등불이 하나둘 차례차례 켜지는 느낌, 일만 그루 소나무가 손 뻗어 나를 만지도록 정지하는 것, 일만 그루의 소나무에 매달리는 섬모운동,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우는 울음이다

2
비밀이 탄로난 이유가 갑자기 휘몰아닥친 장대비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왕국을 베고 눕고자 했다 왕이 누리던 고요 외에 십삼층 석탑 같은 왕의 비애를 열어 보고자 했다 어떤 기미도 없이 절규의 힘으로 빗방울이 관 뚜껑 닫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비를 오게 하는 왕국의 슬픔이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인근의 신라 흥덕왕릉. 흥덕왕은 죽은 장화 부인을 못 잊어 내내 독신으로 살았다.

1992년 늦가을 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그 이후부터  풍경의 비밀에 접근하는 감각이 서서히 깨어났다고나 할까. 풍경이란 것이 아무렇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그 이후 알았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곳의 놀라움을, 흥이 나야 문득 안내해주는 한 시인의 뒤를 다른 시인들과 함께 따라갔다. 경북 안강에서 기계로 빠지는 지방도 중간쯤에서 시인은 골목과 전답과 축사를 복잡하게 따라가다가 빽빽한 소나무 숲 앞에 일행을 부려 놓았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숨막히는 풍광이 펼쳐졌다.
 
먼저 고요였지만, 촘촘한 늘푸른 솔잎 때문에 하늘은 보이지 않고, 그 아래 나무의 시커먼 둥치와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이 경이롭게 조화되어, 고요하면서도 어디선가 아우성 소리가 가득했다. 나무들은 땅에서 벋어나온 누군가의 손같이 꿈틀거렸다. 햇빛이 차단되어 나무 전체가 뒤엉키고 비틀리고 울부짖고 움츠린 탓에 굽이친 나무둥치의 검은 색과 푸른빛 솔잎은, 솟아오르려는 힘과 아래로 하강하려는 힘의 싸움터처럼 보였다. 고요와 아우성의 싸움터라 해도 마찬가지다. 숲을 천천히 돌아다닌다면, 아니 무언가 짓누르는 듯해서 뛰어다닐 수도 없었지만, 스스로의 한숨과 탄식소리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듯했다. 나무들의 섬모 같은 바람소리도 끊임없다. 세상을 왕릉의 소나무 숲과 숲 아닌 곳으로 분류하여야 마땅하지 않는가.

늪 같기도 하고 뻘 같기도 한 숲을 어렵게 벗어나니 능이 있는 공간이 홀연 나타났다. 갑자기 솟아오른 또 다른 별유천지의 공간은 저 숲의 가득함을 보상하려는 듯 몇 가지 석물만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 각기 한 쌍의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왕릉의 장엄미는 물론 확장된 공간성에서 나온 미학이다. 왜 능 주변의 공간이 그토록 넓어졌던가? 그것은 소나무 숲이 만든 환상이거나 천 년의 시간이 그에 붙들려 있다는 감상주의자의 심리적 감응 탓일까? 외래인 처용 같은 무인석 한 쌍은 왕릉의 분위기와 공간을 서역까지 확대시켜 신비를 북돋운다. 판석 사이에 돋을새김한 십이지신상에 이끌려 능의 주위를 자꾸 걷는 동안 마음과 시선은 다시 저 침묵과 함성이 엉킨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소나무 숲의 캄캄함과 환한 능의 대비는, 푸른 청솔가지와 소나무 둥치의 검은 색과 마찬가지로 밝음과 어둠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밝음과 어둠은 서로 부추기는 색깔임을 그곳에 가면 알 수 있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전라남도 우이도, 경상남도 함양 상림, 경상남도 창녕 우포

송재학 =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 『진흙얼굴』 등이 있음.
 

[16] 빗방울 속에 방 한 칸 들여

    전    동    균
 
 봉평 계곡

이 돌 많고 가파른 골짜기,
햇빛도 발이 시려 깨금발로 뛰어가는 여울목이라면
누렁개 한 마리 끌고 올 수밖에 없겠다
몸 밖으로 마음을 밀어내고 그 텅 빈 자리를 
막소주로 채울 수밖에 없겠다

누가, 도대체 누가
이토록 숨찬 급류의 사랑을 보내오고 있는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크고 작은 돌들은
옹이 많은 소나무들은
또 제 가슴 어디쯤 달린 눈을 열어
쏟아지는 물줄기 속 서럽도록
서럽도록 환한
사랑의 낯빛을 들여다보고 있는가

여울목 솔밭에 무쇠솥 걸어
장작불 피우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누렁개를 삶으며 우리는
우리가 지녀온 눈물 같은 것을
연기 같은 것을, 비릿한 피내음 같은 것을
남김없이 하늘로 띄워 보내고

돌 속에서 소나무 속에서 아니, 사방에서 걸어나오는
잇몸 붉은 처녀들의 허리를 감아
며칠 낮밤을 새울 수밖에 없겠다
비가 오면 빗방울 속에, 달이 뜨면 달 속에
아무도 못 찾을 방 한 칸 들여

강원도 쪽으로 발길이 놓인 지 여러 해 되었다. 벗들이 그곳에 있었기에, 대관령의 봄볕과 사천의 바닷가 묘지와 거진의 검은 바닷바람과 백담 계곡의 마른 나무들이 전해주는 묵언의 말들을 조금씩 엿들을 수 있었다.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과 풍경은 어긋나기 십상이어서 내 짧은 여행의 목록은 대부분 절을 찾거나 낚시가방을 멘 독행자獨行者의 것이었는데, 시시각각 빛깔과 크기가 달라지는 폭설의 눈의 영지領地―그곳의 산과 바다와 골짜기들은 사람과 더불어 있어도 괜찮았다.

「봉평 계곡」을 쓰게 된 것도 그랬다. 어느 해 여름날 김남극 형의 안내로 흥정 계곡 상류를 찾았을 때, 쏟아지는 급류의 물줄기에 눈이 시렸다. 끓는 햇빛 속에서도 차디찬 얼음의 숨결을 내뿜는 야성이 살아 있었다. 바윗돌도 거칠었고 비탈의 나무들은 얼마나 오래 바람과 맞서왔는지 한결같이 키가 작고 몸이 뒤틀려 있었다(그 깡마른 가난이라니!). 거칠게, 급하게 쏟아져 내리는 일만이 전부인 그 물길 속에, 처음엔 손을 담그고, 다음엔 낯을 씻었다.
 
그리고는 인적 없는 곳을 찾아 아예 그 속으로 허벅지를 걷고 들어가 몸을 적셨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속으로 처음 들어간 듯 슬프면서 좋았다. 이런 데서는 가마솥을 걸고 개 한 마리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을 했더니, 김남극 형이 말했다. 뒤틀리고 옹이 많은 이곳 나무들이 아무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오래 타고 불힘이 좋아서 땔감으로는 으뜸이라고. 그 말이 옹이처럼 박혀왔다.

풍경과 사람 사이를 걷는다. 때로는 사람이, 때로는 풍경이 숨길을 가로막는 탓에 그 사이를 갈 도리밖에 없는 것 같다. 절경을 절경 그 자체로 보는 눈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자에게 여행이란 도중에 이미 끝나버리거나 영원히 새로 시작되는 출가 같은 게 아닐까?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봄날의 강화 석모도, 여름의 파로호, 겨울 거진바다

전동균 =  1962년 경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6년 《소설문학》 신인상 시 당선. 시집 『함허동천에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등이 있음.
 

[17] 여행, 시로 오는

    황    학    주
 
 망상역

모래언덕으로 막 올라서는 오리 떼들의
뒤뚱대는 꽁무니와 가는 다리

역은 주말여행자들로 웅성거리고
부족한 시간을 태운 기차마다
사랑을 한 새들의 구겨진 깃털을 위한 의자가 있고
가기 위해서도 오기 위해서도 덜컹 흔들리는 사랑이
드나든다

아이 업고 손에 가방 든,
얼룩덜룩한 기린의 긴 목처럼
허공 밖으로 뻗은 여자의 시선이
객실을 살핀다
긍정도 부정도 떠돌다 온 얼굴이다
시작 없이도 갈 수 있다면 다시 시간을 데리고 가
끝, 이라고 내뱉고 오고 싶은

사람들의 눈에 야경이 시작된다
여객 취급을 시작한 피서철 망상
역을 떠난 기차는 플랫폼을 서서히 벗어나는데
시력이 어두운 척 좌석을 바꿔 앉는
헐거운 깃털의 오리들에게서 답을 찾듯이


장거리 기차여행 같은 걸 할 때 먹는 음식은 영혼이다.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가족이다. 동해안으로 가는 야간열차나 아프리카 여행지에서 만난, 그래서 당신이 내 가족이다.
……사람들은 음식이나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에 끼어들기 좋아한다. 그 속에 삶의 모양새가 드러난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당신과 나의 식생활도 조금씩 달라진다. 사랑이 끝나면 음식 나누기도 끝난다.
……시를 준다. 음식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만든다. 세상이 따뜻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거드는 사람들이 시인들임을 믿는 것.
……그래서 나는 음식꾸러미를 배달하는 사람들이 좋다. 세상의 골목골목을 찾아가는 음식의 여행이 흥미롭다.
여행은 음식을 바꾼다는 얘기다. 여행 중의 음식은 몸을 예민하게 만든다. ……
……여행 중에 물이나 음식에 몸이 예민해진다는 것은 몸이 시적詩的 상태로 재배열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행지의 불편함이 재배열하는 몸의 불안 속에서 번뜩이는 시적 징후 같은 것이 자라난다.
……나는 그 징후를 반긴다. 언제나. 기꺼이.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80년대 기찻길밖에 없던 강원도 사북의 어느 눈 오는 날, 80년대 4월 봄눈이 쏟아지던 강릉 바닷가, 전남 고흥군 도화면 구암리 <남만>에서 보는 다도해

황학주 =  1954년 출생. 1987년 시집 『사람』으로 등단. 시집 『저녁의 연인들』 『루시』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시선집  『상처학교』 등이 있음.
 

[18] 여행, 자신으로부터 도주이자 귀환

    임    동    확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며

무릇 여행이란 폐허의 가로지르기다,
그러나 폐허 이전 혹은 너머를 꿈꾸기라고
난 더듬거린다. 그게 무엇이든, 모든 폐허는
결국 폐허로 다가갈 수밖에 없는 원형 찾기라고

죽음의 웅덩이, 그 어둠의 중심부에 박힌
눈들이 보이지 않는 나의 상처와 치부,
끝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과 치욕,
희망과 절망의 끝까지 따라와 지켜보고 있다

경계선 없는 무한 속으로 삼켜진 모래알의 시간들
그 시간의 부식을 뚫고 그늘 짓는 모래언덕들이
모두들 제 가슴 속의 폐허가 두려워 도망치듯
갈 길 바쁜 사막 횡단 차량을 문득 가로막는다

오, 그러나 무한히 작고 큰 어둠의 모래무덤이여
우린 벌써 폐허 이전 혹은 너머의 어떤 심연
네가 미처 다 파묻지 못한 시간의 상류로
날개 다친 익룡처럼 거슬러 오르고 있다

다시 복원할 수 없다 해도, 탐욕스런 시간의 도마뱀이
겨우 남긴 꼬리와도 같은 공허의 사막 속에서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는 사랑의 구층탑이 솟구쳐오른다

몇 년 전 중국의 서부 신장지구 타클라마칸 사막에 있는 한 폐사지廢寺址에 갔을 때였다. 한때 서역으로 가는 출구이자 수많은 승려들이 머물렀던 대사원大寺院이기도 했다는 그곳에 서 있는, 벽돌로 만든 거대한 탑들과 건물 잔해들은 다시 벌건 흙의 속살을 드러내며 그 본래의 모습으로 풍화해 가는 중이었다. 또한 그 폐사지 중앙으로는 적지 않은 물길이 흐르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처음 난 제법 흥성거렸을 한 종교적 이념과 신앙의 흥망성쇠에 대한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회고감에 젖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나는 동행한 문인 일행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구경 다니거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남아 있는 건물 벽들과 탑들로 미뤄 보아, 그야말로 대사원이었을 게 분명한 이 폐사지가 다름 아닌 나의 내면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긴 바 있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이 신생보다는 폐허의 시간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놀랄 속도로 풍화되어 지워져 가고 있음에도 그 흔적을 미처 지우지 못한 내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새삼 확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란 바 있다. 그러니까 그 거대한 폐사지는 스무 살 이후 크고 작은 슬픔과 좌절로 엉망이 된 내 영혼의 자화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나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여행이 그 폐허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상상이나 추측의 수단일망정, 모든 여행은 폐허 이전 또는 그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모든 역사적이고 문명적인 폐허지들에 대한 우리들의 여행이 결국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 점의 상처나 아픔이 없는 원형 찾기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폐사지를 통해 내 청춘의 시절을 온통 피의 기억으로 물들이기 이전의 시대로 필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여행자들과 다름없이 잠시나마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익숙한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낯설음 또는 소외감을 즐겼을 법한 나는 그런 생각에 미치자, 경계선 없는 무한 속으로 삼켜진 사막의 모래알들의 시간들이 두렵지 않았다. 반복되는 동일성의 세계에서 차이성의 세계로 자발적으로 뛰어든 데서 오는 흥분과 충격, 감상과 관조의 시간도 잠시뿐, 너 정도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커다란 죽음의 심연을 벌리고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 위로 날개 다친 상태나마 거대한 익룡이 날아가고 있었다. 처절하고 철저하게 무너져가는 것만이 그만큼 건강하고 신선한 신생을 보장한다는 듯 무작정 흘러가는 세월에 벌거벗은 채 무방비로 노출된 공허와 적멸의 사막 속에서 환상 속에서나마 끝끝내 무너지지 않는 사랑의 구층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나에게 모든 여행은 단순히 차이성의 세계로 뛰어드는 모험이나 도전이 아니다. 낯선 세계로 여행하거나 거주하면서 부딪치는, 언어의 동일화에 순응하지 않는 정념의 사건 내지 경험들은 사실 제 안에 이미 와 있었거나 오고 있는 그 무엇과 마주침이다. 여행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여간해서 잘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른바 여행시를 극히 자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시 나에게 모든 여행은 자신으로부터 도주이자 귀환이기에 낯선 자연 또는 문명 앞에서 느끼는 신비와 경이의 감정은 금세 내 고향 또는 제 땅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역전된다.  낯선 거리와 풍경을 감도는 저녁 바람은 어느덧 고향 언덕에 부는 바람이 된다. 기껏  머나먼 이향異鄕으로 피난 또는 망명해 왔건만, 자신도 모르게 난 어느새 제가 떠나온 곳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화해의 긴 팔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해남 대흥사, 강진 마량 앞바다, 주문진

임동확 =  1959년 광주 출생. 시집 『매장시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5·18 20주년 기념 시선집 『꿈, 어떤 맑은 날』 등이 있음. 영랑시문학상 우수상 수상.
 
 


[19] 천년의 돌 속에 묻고 올, 내 생의 사랑 하나

    정    끝    별
 
 앙코르 호텔

기진맥진한 아열대 소나기였어
소란한 속도의 사소한 낙루였어
일만 삼천 상공에서 달려와
일만 삼천 호수에서 침묵하는 물그늘은
그리고 일몰 이후 별들의 망루는
서로의 발자국을 살피는 이별의 기별
꼬리 잘린 뱀아 같이 갈래?

네 손에 내 손을 포개면 쓰라렸어
머나먼 먼지를 머금은 막막한 손길이
밤의 스펑나무 뿌리처럼 뻗어갔어
뱀 머리를 곧추세운 열 손가락마다
생의 끝에서 다시 부르는 네 노래
생의 밀림에서 다시 밀려온 내 잠, 그리고
등 뒤로 돌아서 우는 걸 봤어

뒤돌아선 소금기둥이 오래 탑이 되면
아마도 네 몸? 뒤돌아서 삼켜버린 말이 오래
허물어진 돌더미가 되면 어쩌면 내 맘?

천년 묵은 돌의 심장에 입술을 대면
초침처럼 떨며 떨어지는
일만 삼천 상공에서 자라난
일만 삼천 고드름이라는 이름의 구름
눈물보다 길게 녹아내리는 시간의 온도
그건 지평선을 넘는 물의 계단이야!

바랐고 선 가파른 목울대가 꿈틀,
구름아 내려놓으면 내게 다시 내려올래?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딜까. 아마 앙코르왓은 아닐까. 세계 7대 불가사의 혹은 기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니까. 시간과 돌의 신비를 간직한 곳이니까.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가깝고 경비도 적게 드니까.

사랑을 잃은 혹은 잃을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한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어딜까. 역시 앙코르왓은 아닐까. 영화 <화양연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에 리바이벌되었던 Quizas Quizas Quizas에 마음을 담가본 사람들이라면, 양조위가 사원의 돌구멍에 입을 대고 자신의 사랑을 천년의 돌 속에 묻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가족을 이끌고 패키지에 묶여 떠난 여행에서 결핍의 풍경을 읽어내고 풍경을 내면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내 처음의 앙코르왓에 대해서라면 나는 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코르왓에 대해 시까지 쓰고 말았다. 보지 못했던 아니 볼 수 없었던 결핍의 풍경이자 내면의 풍경들, 그 어른거리는 잔상들을 붙잡아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곳의 지명이 왜 ‘앙코르’인 줄 아십니까? 이곳은 한 번 오면 반드시 ‘다시’ 오기 때문에 ‘앙코르’라 한답니다.” 가이드는 썰렁한 농담을 했었다. 그러나, 아마, 나도, 분명, 앙코르왓을 다시 가게 될 것이다. 천년의 돌 속에 묻고 올, 내 생의 사랑 하나쯤은 간직한 채 말이다. 그리고, 그때, 다시, 아마, 나는, 시간과 돌, 뱀과 구름, 이별과 눈물에 대해 다른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왕도王都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Angkor Wat’을 나는 여행 내내 이렇게 되뇌곤 했었으니…… “Encore, What?”,  “Encore, Why not?”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서귀포, 우포늪, 격렬비열도

정끝별 =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에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 『오룩의 노래』 『파이의 시학』 등이 있음.
 

[20] 환승객

    김    언    희
 
 파슈파트넛, SEOUL

서서 탈 테다 나는 불타는 자갈이

혈관 속을 굴러도 불붙은 머리가

발등 위로 굴러 떨어져도 나는 서

서 탈 테다 칸막이 없는 이 火葬막

끓는 내 기름을 훌훌 불어 마시며

나는 서서 탈 테다 면도날도 씹어

넘기는 기름에 쩐 가죽 전대 나는

서서 탈 테다 불붙은 손바닥을 쫙

부챗살처럼 펼치고 활활 부채질을

하면서  

SEOUL은 내게 언제나 SEOUL로 표기된다. 네 시간 안팎의 ‘시차’를 가진 외국의 도시들과 동일한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도시. 퉁퉁 부은 발목에 원수 같은 짐을 끌고 네 시간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는 피곤한 환승지, SEOUL.

오직 스쳐 가는 자만이 그 장소의 모든 것을 바늘처럼 감각한다. 쌓인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까칠할 대로 까칠해진 감각에 와락 달겨드는, 후욱, 끼치는 SEOUL 냄새. 열기 혹은 화기火氣, 구릿하고도 누릿한 SEOUL의 몸내.

환승을 기다리는 객의 얼빠진 몸을 끊임없이 갈구는 냄새, 고무와 살이 섞여 타는 듯한 냄새, 그 냄새에 실려 오래된 힌두의 한 성소聖所가 코끝으로 불려 나왔다. 파슈파티나트, 그랬다, SEOUL은 거대한 화장火葬막이었다. 칸막이 없는 화장막.

소맷자락에 불이 붙은 채 신문을 읽는, 바짓단에 불이 붙은 채 입씨름을 하는, 안경테에 불이 붙은 채 계산기를 두드리는 이 도시 사람들. 발등에 불이 붙은 사람도, 잔등에 불이 붙은 사람도, 귓바퀴에 불이 붙은 사람도 화급하게 자신의 불길에 부채질을 해대는 도시.  

타야 한다, 타야 한다, 타야 한다, 더 빨리 휘리릭, 더 뜨겁게 너훌너훌, 타야 한다, 지붕 위에서건, 방 안에서건, 차 안에서건, 타야 한다, 다 탄 다음에도 더 타야 한다. 이것이 SEOUL의 강박이고, SEOUL의 긍지였다.
 
불길이 치솟는 화장목火葬木 위에서 타다 만 사람이 벌떡 일어나 앉아, 너도 불이지, 너도 불이야. 불붙은 손을 불쑥 내미는 도시. 이곳에서 이따금 나는 본다. 머리카락도 낯가죽도 불타 사라진 해골 속에서 질기게 타고 있는 혀들을, 허연 해골바가지에 담긴 숯불 같은 혀들을.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서울 종로구 피맛골,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경상남도 합천군 영암사지

김언희   1953년 경남 진주 출생. 198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등이 있음.

 

[21] 모든 것이 끝장인 줄 알았다

    이    원    규
 
 동백꽃을 줍다

이미 져버린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닌 줄 알았다

새야,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
네게도 몸서리쳐지는 추억이 있느냐

보길도 부용마을에 와서
한겨울에 지는 동백꽃을 줍다가
나를 버린 얼굴
내가 버린 얼굴들을 보았다

숙아 철아 자야 국아 희야
철 지난 노래를 부르다 보면
하나 둘
꽃 속에 호야불이 켜지는데
대체 누가 울어
꽃은 지고 또 지는 것이냐

이 세상의 누군가를 만날 때
꽃은 피어 새들을 부르고
이 세상의 누군가에게 잊혀질 때
낙화의 겨울밤은 길고도 추웠다

잠시 지리산을 버리고
보길도의 동백꽃을 주우며
예송리 바닷가의 젖은 갯돌로 구르며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라는 것을

경아 혁아 화야 산아
시든 꽃잎을 물고 우는 동박새야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 줄 알았다

지리산에 깃들어 텃새처럼 살아도 그대는 아직 너무 먼 곳에 있습니다. 그 절절한 그리움이 나를 이끌어 바람처럼 여기 보길도로 오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산 윤선도 선생이 말년에 자주 찾았다는 동천석실의 차바위 위에서 작설차를 마시며 잠시 명상에 들어도 ‘내가 가는 모든 길은 이미 그대가 지나간 흔적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됩니다. 그대가 아직 지지 않은 붉디붉은 동백꽃에 입을 대고 하아, 하고 가볍게 입김을 불어넣으니 꽃잎 속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그대가 바라보는 나의 입 속, 목구멍 속도 한번쯤은 환해지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지요. 그대를 통해서 동백꽃 속에도 저리 환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이미 떨어진 동백꽃을 두 자루나 주웠지요. 꽃잎으로 차를 달이기도 하고 또 꽃술을 담기도 했지요. 동백꽃을 하나하나 주우며 ‘지지 않는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이미 져버린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닌 줄’로 생각했던 것이나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인 줄’ 알았던 지난날들을 반성해야 했지요.


마침내 향기가 보이는 듯했지요. 천수관음은 소리를 보았지만 나는 꿈속에서라도 동백꽃 향기를 붉은 꽃 속의 환한 길의 모습으로 보았으니 이름하여 향기를 본다는 ‘관향觀香’의 경지에 들어섰던 것일까요.
무련, 그대를 찾아 헤매다 문득 그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은 바로 관향의 세계였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대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향기의 몸으로 있었으니 이제껏 내가 본 것은 모두 허상이었지요.
떨어진 동백꽃 속의 환한 향기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나의 무련, 그대는 오늘 이 편지가 당도할 주소지에 살고 있는지요. 나의 몸 자체가 본적지이자 주소지인 것처럼 그대의 현주소지도 몸 그 자체인지요? 지리산에 돌아가는 날 다시 소식 전하겠습니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경상남도 하동군 섬진강, 남해군 창선면 후박나무,  거제도 여차해변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강물도 목이 마르다』 『옛 애인의 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빨치산 편지』 등과 산문집 『지리산 편지』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등이 있음. 신동엽창작상,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22] 가을 섬진강

    강    연    호
 
 섬진강에 지다

가을 섬진강을 따라가려면
잠깐의 풋잠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구례에서 하동쯤 지날 때
섬진강은 해가 지는 속도로 흘러간다  
어쩌면 지는 해를 앞세우기 위해
강은 제 몸의 만곡을 더욱 휘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는 길도 섬진강을 따라가므로
갈 길 바쁜 사람도 홀연 마음 은근해진다
나고 죽는 일이 괴롭다면 내처 잠들어
남해 금산 바닷물에 처박힐지 모른다
문득 깨어나 모골이 송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헛것이 이끌었다고 말하지는 말자
다 섬진강을 따라나선 죄일 뿐
정신 차리고 싶다면 쌍계사 절간 밑에서
은어회라도 바득바득 씹어보자
너도 먼 길을 취해 여기까지 왔구나
날것의 몸보시를 받다 보면
출가와 환속은 한통속처럼 저물 것이므로
그러면 또 삶이란 죽음이란
녹슨 단풍잎같이 애면글면 글썽거릴 것이다
그렇다고 그 까닭 모를 서러움을
섬진강 물결이나 가을볕에 빗대지는 말자

섬진강은 가을에 찾을 일이다. 섬진강의 느릿느릿한 흐름은 봄에도 어울리지만 대체로는 그 느림을 즐기기 힘들다. 느림은 느림이되 결코 막힘이 아니어야 하는데, 봄의 섬진강은 상춘의 인파로 결국 막힌다. 그도 그럴 것이 섬진강의 봄은 매화와 벚꽃과 산수유가 정의한다. 강을 따라 휘어지면서 곳곳 화개花開이므로 차를 세우거나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도리어 이상하다.

그러니 섬진강은 가을에 찾아갈 일이다. 생명과 자태를 다투었던 것들이 이때쯤이면 차츰 느려지고 가라앉고 깊어져서 이윽고 처연해진다. 섬진강을 끼고 들어앉은 지리산의 산자락들도 덩달아 야트막하고 완만하고 둥글둥글해서 제 그림자를 가만히 물결에 드리운다. 달콤쌉싸름한 한기가 문득 코끝에 쓸쓸해지면 가을이 깊은 줄 알 일이다. 살비듬을 털듯 세상은 헐거워져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제 신발코를 보며 터벅터벅 걷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다. 그렇지만 섬진강의 본색은 역시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을 거쳐 광양을 지나 남해 바다에 이르기까지의 하류에서 드러난다. 이때쯤 섬진강은 섬진강답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며 강은 흐르는데 그러나 강은 고요해서 인간의 시끄러운 경계를 넘어선다. 그러니 천은사, 화엄사, 쌍계사 등 인근의 절들이 아무리 크고 번창해도 풍경 소리는 결국 미미할 수밖에 없다. 숨죽이고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끼니 역시 가을빛만큼 처연한 것이어서 섬진강 어느 어귀에서는 또 어쩔 수 없이 저녁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은어회와 재첩국이 섬진강의 음식이다. 이때쯤 여행은 왜 떠나는가, 돌연 밑도 끝도 없는 화두를 던져놓아도 좋지만 답은 자명하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충남 서산 개심사, 경북 영주 부석사, 제주 서귀포 주상절리

강연호 =  1962년 대전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1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비단길』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 등이 있음. 

 
 
[23] 경남 남해 물미해안

    고    두    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 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삼십 리 해안길. 초가을 ‘물미해안’에 노을이 바알갛게 물들고 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해안은 여인의 나신처럼 아름다웠고, 미풍이 그 곡선을 타고 미끄럽게 흘렀다.
그곳에서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를 잉태했다. ‘가을’이라는 계절적 요소에 ‘노을’이라는 회화적 요소가 겹쳐지는 접점이라고 할까. 그 화선지 위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적 색채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자연이 내 몸에 붓을 대고 시를 써 주는 형국이었다.


가을과 노을과 그리움을 관통하는 상징은 시인 백석의 표현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림이었다. 언뜻 보면 ‘달콤한 사랑’과 ‘관능적인 풍경’의 화음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쓸쓸하고 외로운 거울’ 같은 것이기도 했다.
결핍이 완숙을 채운다고 했던가. 내가 물미해안에 각별한 느낌을 갖는 건 아마도 어머니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가족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의 작은 절집에서 지냈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처의 고등학교로 떠난 뒤, 어머니는 이제 됐다 싶었던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셨다. 보살의 품계에서 출가자의 품계로 ‘승진’한 셈이다. 그리고 물건리에 있는 미륵암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암자는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물건리방조어부림 옆의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연히 방학 때마다 나는 물건리로 ‘귀가’했다.


그런데 어릴 때는 왜 몰랐을까.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물미해안의 절경을 그 때는 별로 인식하지 못한 채 유년기를 보냈다. 이건 남해 금산이 그렇게 좋은 곳인 줄 미처 몰랐던 것과 비슷한 얘기다. 철이 나고서야 그 좋은 풍광을 재발견했으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 아름다운 물미해안을 아름다운 사람의 느낌으로 재발견한 것이 내게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의 입적이라는 개인사도 작용했다. 외환위기 직후 어수선하던 1998년 초가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물미해안이 나에게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행간에 젖어 흐르는 물기와 함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배어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2005년 여름에 이 시를 표제작으로 삼은 두 번째 시집을 냈는데, 사람들이 ‘도대체 거기가 어디냐’라고 자꾸 물었다. 그 덕분에 물미해안과 남해금산, 노도(서포 김만중 유배지), 다랭이마을 등을 둘러보는 남해문학기행 코스가 생겼다.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 일정으로 문학기행팀과 함께 고향을 찾을 때마다, 나는 내 몸을 빌려 시 한 편을 낳게 해준 물미해안의 낭창낭창한 허리를 은근하게 안아보곤 했다.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물건리 방조어부림에서 미조항까지 이어지는 삼십 리 해안은 남녘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그 길을 천천히 굽이도는 동안 나는 어느새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간다. 초심初心의 뿌리가 만져지는 시간. 유목민처럼 떠돌던 사람이 농사짓는 정착민의 마음을 찬찬히 되새겨보는 것과 닮은 그곳을 나는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경상남도 통영 욕지도, 충정남도 태안 만리포, 강원도 평창 상원사

고두현 =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24] 제스퍼 가는 길, 트랜스 캐나다의 하이웨이

    심    재    휘
 
 제스퍼 가는 길
 
하룻밤 묵기로 했던 마을을 지나
서쪽으로 두 시간을 더 운전해야 했다 그동안에도
대평원의 여름밤은 점점 푸르게 커져 갔다 
밀밭뿐인 서스캐처원 주*의 작은 마을 입구에서
마지막 남은 모텔방을 잡고 발을 씻었다
록키 산중의 제스퍼는 천국처럼 멀기만 해서
토론토를 떠나 벌써 몇 번의 일몰 속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나는 대평원의 한가운데다

오늘밤 이 마을에도 이제 빈 방이 없다
근처 어느 벌판에 새로운 철길이 놓인다는 소문이다
곳곳에서 철도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모텔마다
불 꺼진 방들을 지키고 있는 더러운 왜건들
몸집 큰 백인 하나가 제 방 앞에 앉아
희미하게 뜬 별처럼 맥주를 마신다

기차는 역도 없이 들판에 서서 밤을 새운다
어둠은 넓고 평원은 푸르고
언젠가는 저 기차 지평선을 넘어서겠지만
나는 단지 내일 밤에도
빈 방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돌아보면 동쪽의 지나온 길도
오래 오래 아득해서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대평원 지대인 서스캐처원 주는 캐나다의 중부에 있다.

낯선 곳에 가면 누구나 지도를 산다. 하지만 지도란 맨해튼의 사람들 사이를 우아하게 헤치고 나가기 위해서나 로마의 낡고 좁은 길들을 낄낄거리며 걸어가기 위해 필요할지 모른다. 캐나다 동쪽의 토론토에서 태평양 연안 록키 산중의 제스퍼까지는 대략 4000킬로가 넘는다. 무감각을 달래기 위해 지도에 자를 대고 그어보면 서울에서 방콕을 조금 더 지나는 거리다.
 
대평원에서 지도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정보란 그 정도밖에 없다. 눈을 감고 차를 몰아도 길을 벗어나지 않을 만큼 곧은 길,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선을 따라 해가 지는 방향으로 일직선인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 1번 고속도로다. 수확도 끝난 밀밭평원을 달리는 무료함이 그 여행의 본질일 만하다. 삶이 이렇게 간단해져 본 적이 있는가. 해가 지면 여관을 잡고 들어가 잔다. 해가 뜨면 또 가속 페달에 발을 얻고 달린다. 심장이 천천히 뛰고 동공은 무료하다. 진실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시간이 느려진다.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세 시간의 시차를 거슬러 가고 있기도 하거니와 서머타임 탓인지 밤 아홉시가 넘어도 훤하다. 대평원에는 역이 없으므로 기차가 들판에 서서 밤을 보낸다. 기차가 서 있는 푸른 밤의 평원을 보며 그동안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고정관념스러웠다고……. 그러나 그곳에서도 긴장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주유소가 나올 때마다 주유를 해야 한다. 이삼백 킬로마다 도시들이 나타난다. 도시 하나를 거르면 곤란하다. 그런데 주유등에 불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퇴근길의 올림픽도로를 달리는 기분. 옛날 서부영화의 멕시코마을 같은 곳에서 간신히 기름을 넣었다. 스무 집도 안 돼 보이는 마을 입구의 녹슨 주유기 한 대를 둔 구멍가게는 베트남 할머니가 주인이다. 보트피플이란다. 보트는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유注油와 주유周遊 혹은 주유舟遊라는 말은 같은 자모를 쓸 만하다. 그리고 나흘째도 거의 저물 무렵 드디어 뜬금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정말 순식간에 빙하기를 지나 갑자기 대륙의 판을 뚫고 융기해 있는 록키산맥, 그리고 제스퍼에서의 며칠. 제스퍼는 우리말로 옥玉이다. 인생의 종착지가 이런 곳이라면 정말 가볼 만하겠다. 그곳에서는 어떤 이별도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곳까지 나는 편도 사박 오일이었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전라북도 내소사, 강원도 강릉 초당마을, 제주도 서귀포

심재휘   1963년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 『그늘』 등이 있음.
 

 
[25] 등산길의 시집 한 권

    고    영    민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치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 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정성껏 읽는다
읽은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나서 묻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실화야?” “누구 시집인데?”
밝히건대 이 시의 내용은 실화다. 하지만 누구의 시집이냐, 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수 없다. 1987년 겨울이었고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나는 작은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혼자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고속버스를 탔으며, 강릉에서 다시 진부까지, 진부에서 다시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월정사 앞까지 들어가는데 나는 걷기 위해 일부러 중간쯤에서 버스를 버렸다. 저녁 무렵 월정사 입구에 도착한 나는 먼저 숙소를 정한 후 절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고는 다시 내려와 조금 늦은 저녁을 먹었다. 민박집 할머니는 날이 춥다며 나에게 일부러 이불 하나를 더 갖다 주었다.

 
가방 속엔 챙겨온 시집 한 권이 있었고 캡틴 큐 한 병도 있었다. 나는 이불을 턱까지 당겨 덮고 누운 채 시집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엎어놓고, 밖에 한번 나가 보기도 했다가 추위에 쫓겨 다시 방에 들어와 혼자 덩그마니 차가운 벽에 기대 있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는 태양이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니라는 것, 하늘을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잎사귀를 뻗고 대지를 향해 열정을 뿜어내던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것, 몸을 줄이고 생각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 감정 따위는 호주머니에 넣고 혼자 만지작거려야 한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잠이 오지 않았지만 새벽 일찍 일어나 꼬박 한나절을 걸어 소금강까지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해야 했다. 눈을 뜬 건 새벽 5시가 조금 못된 시간.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한 후 나는 숙소를 나섰다. 새벽바람이 말도 못하게 추웠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보이는 팻말과 숲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만 희끗희끗 보일 뿐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조금씩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떨리는 햇살로 반짝이는 숲이 아름다웠다. 흰 입김을 뿜으며 산 중턱을 오를 쯤 예기치 않게 똥이 마렵기 시작했다. 문제는 밑을 닦을 휴지가 없었다. 가방 속엔 시집 한 권, 캡틴 큐 한 병, 초코파이 몇 개가 전부였다. 어떤 것도 휴지를 대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궁리 끝에 시집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잊지 못할 여행지 3곳 : 해남 보길도, 오대산 월정사, 봉하마을

고영민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학교 문창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등단.시집 『악어』 『공손한 손』이 있음.
 

<총론>
모든 삶은 편도여행이다!

    장    석    주

1. 여행은 월경越境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시간에서 저 시간에로 넘어감이다.

2.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상징적 횡단의 시발점들, 즉 문·문턱·창구·통로들은 늘 붐빈다. 다른 공기를 숨쉬는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많은 것이다.

3. 여행이란 저 바깥으로 떠남이다. 아니다. 저 바깥을 향하여 나아갔다가 다시 내 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을 탐사하는 게 여행이다. 오랜 시간을 바깥에서 떠돌았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황야를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의 황야를 탐색하는 것이로구나.”(레비 스토로스, 『슬픈 열대』,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 그러나 한 시인은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라는 도발적인 반문을 새겨놓았다. 시인에 의하자면 첫여자, 첫키스, 첫슬픔이 그렇듯이 여행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의 계보에 속한다. 시인은 단호하게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우주의 시간여행자로서 우리는 결코 안 돌아오는 여행에 나선다. 이 삶이 편도여행이라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눈부신 사실인가!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들은 안 돌아오는 여행을 간 것이다
얼마나 눈부신가
안 돌아오는 것들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 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첫밤, 첫서리 뿌린 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을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휘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빛줄기인 줄은


없었다. 그 이후론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 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곳으로 여행 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가지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 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자꾸 틀린 말을 하더라도
  ―― 이진명, 「여행」(『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민음사, 1992)

4. 여행은 장소들의 숭고함을 눈으로 들이키는 문화적 행위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놓은 절벽, 바다의 광활함, 사막, 고산高山들의 절경, 계곡,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대지들조차 위대한 능력을 가진 전능한 존재의 신비한 역할과 숭고함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이 재라면 자연은 재속을 뚫고 나오는 불꽃들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왜 지금-여기에 있는지는 모른다. 자연이 품고 있는 숭고한 장소들은 지금-여기의 너머 저기에 있다. 저 너머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이자, 우리의 내면에서는 이미 고갈되어버린 고요와 놀라움이 서려 있는 장소들이다. 우리는 그 시간과 장소들을 살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들이다. 왜? 자연이 여행하는 법이란 절대로 없으니까. 일찍이 김수영은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자연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 김수영, 「말복」 일부

5. 자연이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자연은 고갈을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고갈되는 것은 우리들이다. 어제 먹은 밥을 오늘 다시 먹고, 어제 잤던 잠을 오늘 다시 잔다. 반복들 사이에서 새로워지는 것들은 우리 안에서 오글거리는 자질구레한 근심들이다. 근심들은 꾸역꾸역 몰려와 마음에 머물면서 존재를 갉아먹는다. 우리는 존재의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힌다. 존재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대신에 우리 안의 권태와 환멸은 뚱뚱해져서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해저海底로 가라앉는다. 그 어둠이 어둠인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 속에 오래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부른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작은 속삭임들이다. 이 작은 속삭임들은 낯선 것이기는 하되 우리 존재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중추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속삭임들, 먼, 머언, 속삭임들. 여행이란 우리 안의 낯선 속삭임들, 거기에서 나오는 불가사의한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솔방울 떨어져 구르는 소리.
가만 멈추는 소리.
담 모퉁이 돌아가며 바람들 내쫓는
가랑잎 소리.
새벽달 깨치며 샘에서
숫물 긷는 소리.
풋감이 떨어져 잠든 도야지를 깨우듯
내 발등을 서늘히 만지고 가는
먼,
먼, 머언,
속삭임들.


   ―― 장석남, 「속삭임」(『젖은 눈』, 솔, 1998)

6. 17세기의 철학자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작은 공간을…… 생각해 본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한히 광대한 공간들이 이 작은 공간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이 무섭고 놀랍다. 나는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고, 다른 때가 아닌 지금 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가?”(파스칼, 『팡세』, 단장 68.) 누가 나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가? 아무도 아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여기가 아닌 저곳에서 이 생이 아닌 다른 생을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생의 법에서 벗어나 치외법권 지대에 있는 또 다른 생을 꿈꿀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또 다른 생이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낯선 장소들. 보들레르가 「여행에의 초대」에서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 호사豪奢와 고요와 쾌락”인 곳이라고 말한 장소들. 저물녘에 도착한 은척도 그런 장소들 중의 하나일 터다. 나는 은척이란 곳을 가보지 못했지만, 그 지명은 내 안에서 떨림을 만든다.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상이라도 했으리. 그 장소들. 떠나지 못한 자의 한숨으로 덕적도, 인천, 은율, 정선, 백석, 격렬비열도와 같은 지명들을 호명했으리. “이제 첫눈이 오리 / 덕적도에, 인천에, 은율에, 정선에, 백석에, 격렬비열도에”(박정대, 「집으로 가는 길」,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민음사, 2001).

저물녘에 은척에 도착했다

높고 낮은 산언덕과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생애를 이루고 있는 곳


내가 두 눈이 멀어
음악만이 나를 끌고 가는 곳


이곳에 오니
나도 이제는
한 생애쯤 마감하고 싶어라


또 다른 생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은척의 저녁에서,

예감이 국도처럼 피어오른
푸른 길의 유혹에서


   ―― 박정대, 「은척에서」(앞의 시집)

7. 일상의 반복과 제약들은 우리를 쉽게 지치게 만든다. 그때 피로는 존재를 덮치는 작은 질병이자 고갈이다. 일상은 존재를 착취해서 헐벗게 만든다. 메마른 사고들이 판친다. 삶은 나날이 좀스럽고 피폐해진다. 육체의 고갈과 영혼의 고갈은 불가피하다. 그 고갈의 평등 속에서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외로움에 감염된다. 어느 날 그 고갈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으로 여행을 떠난다. 공항과 기차역, 그리고 여객선의 터미널들은 어디론가 떠나는 자들로 붐빈다. 그 장소들은 국경과 국경 사이에 가로놓인 문턱이자, 이곳과 저곳을 가로지르는 ‘사이’들이다. 이 ‘사이’를 통과할 때 우리는 존재의 질적인 변환을 겪는다. 이전의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 형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 둘은 같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내가 망명에 성공한다면, 내게 남는 것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 생물학적인 존재, 단독자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김연수, 『여행할 권리』, 창비, 2008) 여행자들은 일상의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을 때보다 기후에 더 민감해지고, 어떤 전조前兆들에서 더 자주 영감을 받고, 더 계시적인 상상력을 펼쳐낸다. 그들은 여행을 떠나오기 전의 사람과는 마치 다른 사람과 같다. 여행이 그들의 무딘 감수성을 깨운 것이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정영목 옮김, 이레, 2004)

8. 도시에서 우리는 거의 유령들이었다. 도시는 유령들의 사막이다. 유령들은 그 본질에서 무국적자들이다. 그러나 유령과 이방인은 다르다. 이방인들은 조국이 없는 자들, 혹은 조국을 버린 자들이다. “조국에 애정을 느끼는 사람은 향락주의자다. 온 대지가 조국인 사람은 이미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온 세계가 유배지인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다.”(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1993) 여러 지식인들이 제 고향에서 내침을 당한 뒤 온 세계를 유배지로 삼고 살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렇고, 발터 벤야민이 그렇고, 에밀 시오랑이 그렇다. 그 혼성적 지식인들! 굴원이 그렇고, 두보가 그렇고, 소동파가 그렇다. 망명의 고독을 내재화한다는 점에서 여행자들 역시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방인들, 즉 디아스포라(diaspora)의 운명을 품는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르탕스 블루, 「사막」

이방인들이란 ‘사이’의 존재들이다. 안과 바깥, 산 것과 죽은 것들, 떠남과 머묾, 나와 너, 영원과 찰나, 모순과 비모순, 있음과 있어야 함과 같은 대립하는 것들의 중간들을 거처로 삼는다. ‘사이’는 중간지대다. 중간지대는 개와 늑대가 동시적으로 출현하는 곳이며, 여행자와 도둑과 부랑자와 살인자들이 섞여 떠도는 공간이다. 중간지대는 위험한 장소이고, 개와 늑대들, 즉 내 안의 야성과 길들임 사이의 카오스가 일어나는 지대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가는 자들은 제 신체에 새겨진 법과 권위, 관습의 포획에서 자신을 탈영토화하며, 반드시 이 중간지대를 거친다. 자크 데리다는 이 ‘사이’를 “정의되지 않은 방향 전환의 거처”라고 말한다. 사실 삶이란 것이 ‘사이’ 아닌가! 대립하는 두 힘들의 ‘사이’ 속에서 맹렬한 멀미를 느낄 때가 있다.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중간에 걸쳐져 있는 내 식어버린 마음의 복판에 어느덧 ‘사이’가 들어와 있다.

9. 아마도 시인이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떠난 것도 그 ‘사이’가 만든 멀미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행은 지리의 이동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이동이고, 문화의 이동이다. 여행자들은 걸어가면서 상상하고, 욕망한다.

어느 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사방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사방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지평선의 충격은 그렇다
아무것도 없는데 아득한 곳에 선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직선이 아니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커다란 선은 둥글었고
그 텅 빈 원 속에
원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텅 빈 원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사막의 태양
소리 없이 몰려와 지평선을 뭉개버리는 화산재 같은 구름들


   ―― 최승호, 「지평선」 일부(『고비』, 현대문학, 2007)

시인은 사방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놀란다. 세계는 텅 빈 원 속이고, ‘나’는 그 안에 있는 작은 점이다. 늘 제 존재의 위치를 떠올리는 것은 이방인, 이주자, 망명자들의 관습이다. 이방인, 이주자, 망명자들은 잠시 머물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측면에서 여행자들과 닮아 있다. 정주민들은 장소의 방위나 장소 그 자체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냥 장소들에 소속되어 있는 까닭이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은 그 장소들의 관습과 명령들이 틈입하지 않는 치외법권 속에 산다. 여행자들은 장소들 안의 섬으로 거주한다. 그들은 스스로 방외로 내쳐져서 고립된 채 점에서 점으로 움직인다.

만약 늑골들이 현이었다면, 그리고 등뼈가 활이었다면, 바람은 하나의 등뼈로 여러 개의 늑골들을 긁어대며 연주를 시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막이라는 청중으로 꽉 찬 사막에서 뼈들의 마찰음과 울림은 죽은 늑대의 뼈나 말의 뼈와 공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적막이라는 청중의 마음을 깊이 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뼈의 음악은 그렇다. 아무런 악보도 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흔든다. 청중으로서는 적막이 제일이고 연주자로는 바람이 적합하다.

   ―― 최승호, 「뼈의 음악」(앞의 시집 『고비』)

바깥에서 나가서 바라보면 산다는 것의 의미가 보다 투명해진다. 여행자들이 보다 현명해지는 것은 현실과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그 거리가 객관적 투명성을 얻게 해주는 것이다. 시인은 사막에서 산다는 것이 “아무런 악보도 없이 뼈로 뼈를 연주해 텅 빈 뼈들을 뒤흔”드는 것임을 알았다. “적막이라는 청중”들로 꽉 찬 사막에서 시인은 “뼈의 음악”을 듣는다. 제 삶을 사막으로 내친 자만이 그 “뼈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0. 여행을 떠나려는 욕망은 때때로 불가사의하다. 그것은 갑자기 솟구치는 불꽃 같아서 무엇도 그 욕망의 격정을 잠재울 수가 없다. 낡은 정원도, 황량한 불빛도, 아이에게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저기에 폭풍우와 난파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떠나는 자들을 붙잡을 수 없다. 떠나는 자들은 어떤 기약을 안고 떠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떠나는 것이다. 저 유명한 말라르메의 에피그램,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라는 구절은 피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의 계시啓示다.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라! 그대 돛대를 흔드는 기선이여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한 권태 있어, 잔인한 희망에 시달리고도,
손수건들의 마지막 이별을 아직 믿는구나!
그리고, 필경, 돛대들은, 폭풍우를 불러들이니,
바람이 난파에 넘어뜨리는 그런 돛대들인가
종적을 잃고, 돛대도 없이, 돛대도 없이, 풍요로운 섬도 없이……
그러나, 오 내 마음이여, 저 수부들의 노래를 들어라!


  ―― 스테판 말라르메, 「바다의 미풍」(『시집』, 황현산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

11. 누군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대답한다. 나는 여행자입니다. 여행은 권태와 환멸의 형태로 주어진 삶의 모욕에 대한 보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꺼이 떠나리라! “미지의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새들 / 도취하여 헤매는 저곳으로!” 여행은 낯선 곳, 미지의 시간을 향한 첫걸음이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가 여행을 하며 “매일 미래에 가 닿았던”(이장욱, 「여행자들」,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지성사, 2006) 것이라고 썼다. 우리 모두는 이 세계의 여행자들이다!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서로 다른 아프리카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 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사소한 운명을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그가 결연히 뒤돌아서자
그녀는 우연히 같은 리듬으로 춤을
그리고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


우리는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무엇이든 생각하지 않으면 물이 돼버려
그는 영하零下의 자세로 정지하고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시작하고
당신은 그저 뒤를 돌아보겠지만


성탄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끝날 거야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 이장욱,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앞의 시집)

우리는 “어두운 심연深淵으로부터 와서 어두운 심연에서 끝을 맺으면서 우리는 반짝하는 그 사이의 삶을 부른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어두운 심연에서』, 김문환 옮김, 현대사상사, 1975) 그 ‘사이’의 여행자들인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 돌아온다. “마침내 서로 다른 황혼이 되어 / 서로 다른 계절에 돌아왔다”. 누군가는 김밥을 말고, 누군가는 그 김밥을 사먹는다. 누군가는 우유를 배달하고, 누군가는 그 우유를 마신다. 삶은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이 삶은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이다. 이미 저곳과 저 미지의 시간을 머금은 삶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하고 헤어지겠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다.  
 
장석주 =  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및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몽해항로』 『절벽』 『햇빛사냥』 등과 평론집, 산문집, 서평집 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문화저널21 & 계간 시인세계 munha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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