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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창작 강의

아름답게 사는 법

by 丹野 2011. 1. 25.

 

 

 

 

정직함만이 상처를 치유한다

강신주 _ 철학자

 

   

시인을 한 명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그와 있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패널로 방송국에 왔던 저는 스튜디오로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놓아야 했습니다. 물론 다음에 만날 약속으로 아쉬움을 달래면서 말이지요.

 

 

마침내 토요일 1시가 되었고, 저는 약속장소에 일찌감치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광화문에 있는 유명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1시 10분 전에 도착한 저는 시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저의 기다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인은 2시 30분이 되어도 심지어는 3시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마침내 저는 전화기를 꺼내들고 시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 강신주인데요. 저랑 2시에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러자 시인은 말했습니다. “예, 그런데 오늘은 별로 시내로 나가고 싶지 않네요. 다음에 보도록 하지요.”

   

너무나 당혹스러웠고, 한편으로는 화도 치밀어 올랐습니다. 나를 하찮게 보지 않았다면, 그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지요. 화를 삭이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더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조그만 깨달음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그건 바로 솔직함과 정직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시내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말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이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 나란 사람이 싫어서는 아닐 겁니다. 단지 지금 시인은 다른 일로 저와 만날 마음 상태가 아니었을 겁니다. 반대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약속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인이 나왔다면, 그는 우울함을 억누르고 유쾌한 척 대화에 임했을 겁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이때 전화로 부족한 듯해서 내일 친구를 직접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그렇지만 통화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한결 좋아진 것을 느끼며, 괜히 만날 약속을 잡았다고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사람은 약속장소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 우울한 척 그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겁니다. 친구는 우리의 우울함을 달래주려고 나왔으니까 말입니다. 과연 이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일까요?

   

자 돌아보세요.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자신의 속내에 정직하고 솔직한 적이 얼마나 있으셨나요. 시인에게 바람을 맞던 날, 저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시인이 저를 편안하게 유쾌하게 만날 수 있을 때 나오기를 원합니다. 저는 시인이 약속 때문에 억지로 나와서 제 앞에 앉아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껍데기와 앉아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시인을 포함한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은 위대했던 겁니다. 자신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으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시인의 시 중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아시나요.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째 네 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위대한 시인의 시라고 하기에는 조금 허접하지요.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김수영이 시인으로서 갖는 위대함의 비밀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이 민주투사인 척했을 때, 김수영은 자신의 소시민적 나약함에 정직하게 직면했고, 그것을 숨기지 않고 노래했던 겁니다. 그래서 김수영은 위대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치장하던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인처럼 자신의 삶과 감정에 직면할 때에만 관습, 자본, 권력으로부터 참혹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상처는 백일하에 드러날 수 있는 법입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희망할 수 있고, 뒤에 올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상처를 받지 않을 사회를 꿈꿀 수 있게 될 겁니다. 철학자를 포함한 모든 인문학자, 혹은 시인을 포함한 모든 작가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시, 소설, 영화, 그리고 철학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치부를 털어놓는 친구 앞에서, 누구든지 자신도 정직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시를, 그리고 철학을 읽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처럼 정직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필자소개

 

강신주는 연세대에서 장자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철학자이면서 현재는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 상상마당 운영위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학 나아가 인문학의 정신이 인간이 자유와 기쁨의 전망을 꿈꾸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상처받지 않을 권리』『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철학 VS. 철학』등이 있다. contingent@naver.com

 

 

출처 - 세상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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