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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도로
이재무
길의 맨 얼굴이 그립다
평지돌출한 돌멩이들 걷는 발 아프게 물었다 뱉던,
길게 휘어진, 들어서면 사람보다 제가 먼저
울퉁불퉁 두근거리는 길
저녁이면 먹다 남긴 면발처럼 풀기 없는 기색이다가도
아침이면 튀는 공처럼 탄력 되살아나던,
한밤 달빛 소복 쌓이고 달리는 바퀴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들던 풀벌레 울음이며
비 젖어 생각 깊던, 사람과 짐승이 함께 다니던 길
속으로, 백치가 될 때까지 길의 혀에 착착 감겨
길게 걷고 싶은 것이다
미역국을 끓이다
이재무
외박하고 돌아온 날로부터
찬바람 도는 아내와 냉전의 사흘 보내고 나서
맞는 일요일 아침
식구들 몰래 일어나 미역국을 끓인다
엊저녁 물에 담가 두었던 마른 미역
한 밤 새 통통 살이 올라
바가지를 흔들 때마다 철썩 철썩 파도를 부르고 있다
한 솥 가득 바다를 끓여내어
밥상에 올려놓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더운 국물 식은 몸 덥히는 동안
아내 가슴에 옹골차게 박힌 돌
슬그머니 자취 감출 것인가
거실에 훈기가 돌고
영하의 날씨 베란다 얼어붙은 유리창에 핀
성에꽃들 죽죽 눈물 흘리며 창문 떠나고 있다
생활의 한 굽이,
또 그렇게 애써 외면하며 돌아가고 있다
-『 우리詩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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