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이야기 II] 겨울 채비로 분주했던 지난 가을의 꽃 이야기
[2010. 12. 6]
잠깐이었지만, 겨울의 걸음걸이를 재촉하는 눈도 내렸고, 지난 주중의 이틀 동안은 바람도 매우 찼습니다. 그렇게 가을은 저만치 달아나고, 겨울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도 벌써 둘째 주로 들어섰습니다. 사람들마다 계절을 보내는 방법이 제가끔이겠지만, 제게는 한 해 중 11월이 가장 바쁜 달인 듯합니다. 올에만 그랬던 게 아니라, 거의 모든 해마다 11월은 정신없이 보냈어요. 이 때는 어쩌면 숲의 나무들에게도 가장 바쁜 시기 아닌가 싶습니다. 저마다 한햇동안 애써 맺어온 열매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시기이니까요.
수목원의 식물 가운데에는 그렇게 열매 맺기에 바쁜 가을에 꽃을 피웠던 식물들이 여럿 있습니다. 짙은 보랏빛의 자그마한 꽃을 가지 끝에 조롱조롱 매단 이 식물은 황금(Scutellaria baicalensis)이라는 이름의 식물입니다. 중국이 고향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지요. 발음만으로는 황금(黃金)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름입니다. 황금의 금은 풀을 뜻하는 글자인 풀 艸를 머리 위에 이고 나온 ‘풀이름 금(芩)’입니다.
황금을 민간에서는 ‘골무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보기 어려운 풍경 가운데 하나가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어느 집이나 어머니들이 정성껏 만든 반짇고리도 꼭 있었고, 그 안에는 어김없이 몇 개의 골무가 있었지요. 찾아보기 어려운 사물이 됐지만, 그래도 옛 골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꽃이 마치 손가락 끝에 바로 그 골무를 끼운 것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식물을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다.
조금 혼란스러운 것은 황금 종류의 식물 가운데 아예 골무꽃(Scutellaria indica)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있다는 겁니다. 황금이 60센티미터까지 자라는데, 골무꽃은 그보다 조금 작은 20~40센티미터 정도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꽃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황금에 비해 작아서 골무 모습은 오히려 황금이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골무꽃이나 황금이나 모두 골무를 손가락에 끼운 모습인 건 똑같습니다. 비슷하게 골무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로 애기골무꽃(Scutellaria dependens), 다발골무꽃(Scutellaria asperiflora), 참골무꽃(Scutellaria strigllosa), 광릉골무꽃(Scutellaria insignis), 그늘골무꽃(Scutellaria fauriei), 구슬골무꽃(Scutellaria moniliorhiza), 산골무꽃(Scutellaria pekinensis var. transitra) 등도 있습니다. 모두가 꽃의 생김새는 비슷한데, 색깔이나 크기에서 약간의 차이를 갖고 피어납니다.
황금과 마찬가지로 보랏빛이 강한 꽃이 또 있었습니다. Salvia farinacea 'Blue Bedder'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루비아 혹은 샐비어라고 불러왔던 식물의 한 종류이지요. 이름 그대로 풀어보면 ‘푸른 화초’ 샐비어 정도가 될 겁니다. 우리는 집안의 마당에서 심어 키우던 가을에 꽃을 피우는 빨간 샐비어에 익숙합니다. 꽃 생김새도 그렇지만, 꽃 송이 안쪽에서 달콤한 꿀맛이 더 먼저 기억나는 그 샐비어입니다. 우리 말 이름이 깨꽃(Salvia splendens)인 식물이지요.
그러나 샐비어의 여러 종류 가운데에는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우는 종류가 많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이 꽃처럼 짙은 푸른 빛의 꽃을 피우는 식물이 적지 않습니다. 또 종류가 워낙 많아서, 자라는 키에서도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해 이맘 때에는 키가 2미터 가까이 자라는 샐비어를 보여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푸른 화초라는 이름의 샐비어는 그리 크게 자라지 않습니다.
이 샐비어는 키가 작을 뿐 아니라, 꽃 송이도 앙증맞게 작습니다. 저도 처음에 보았을 때에는 이걸 샐비어 종류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꽃차례가 샐비어와 비슷해서, 혹시 하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꽃의 생김새가 좀 다르다 생각했던 거지요. 오히려 앞의 황금이 기존의 샐비어를 닮지 싶었지요. 게다가 Salvia farinacea 'Blue Bedder'는 가냘플 정도로 가지가 가늘고 꽃도 무척 작은 편이에요. 또 꽃잎에 난 하얀 무늬까지 기존의 샐비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으니까요.
도감에는 샐비어가 세계적으로 무려 900종이나 있다고 하네요. 특별히 뜨거운 날씨이거나 습기가 많은 지역이 아니라면 지구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잘 자라는 식물인 까닭이라고 합니다. 또 꽃의 색깔이 화려하다는 것도 이 식물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넓은 영역에서 자랄 수 있게 한 까닭이 될 겁니다. 저마다 꽃의 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해서 식물도감을 들여다보는 데에 짧지 않은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을 정도입니다.
이 꽃은 이삭여뀌(Persicaria filiforme)라는 이름의 식물입니다. 꽃이 워낙 작아서, 꽃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눈에도 잘 띄지 않는 식물입니다. 우리 수목원에는 이 꽃이 큰 연못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에 새로 놓은 긴 의자 바로 뒤편에서 그야말로 겸손한 자태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만일 농촌의 논이나 밭에서 자랄 경우라면 어김없이 뽑아내 없어질 운명의 식물입니다.
이삭여뀌는 여뀌(Persicaria hydropiper)와 함께 농촌에서는 작물을 키우는 데에 방해되는 ‘잡초’로 여기는 식물이거든요. 여뀌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 식물만 해도 수십 종이 되는데, 그 대부분은 농부들을 매우 귀찮게 하는 식물입니다. 그저 ‘잡초’라 부르는 식물인 겁니다. 그러나 사실 잡초라는 말을 쓰는 데에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잡초라는 표현을 놓고,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있었지요. 그 시작은 아마도 미국의 자연주의 시인 랄프 에머슨이었던 듯합니다.
에머슨은 아예 잡초라는 개념을 버리자 하면서, 모든 식물들이 나름대로 살아가는 의미를 갖춘 것이니,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에머슨의 생각을 따랐던 월든의 헨리 데이빗 소로 역시 잡초에 대한 생각으로 많은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소로 역시 모든 잡초에게도 존재 이유가 있다면서, 그를 모두 지켜내려 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먹을 식량인 콩을 키우게 되자, 판단을 머뭇거리게 됩니다.
주변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들에 대해 빠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던 거죠. 물론 소로는 그 풀들을 뽑아내지 않고, 새들에게라도 먹이가 된다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연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폴란은 스스로 정원을 가꾸며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잡초를 뽑아내는 게 맞는 일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최종 결론은 여러분들 스스로 하셔야 할 일이겠지만, 아무 거나 잡초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건 맞는 일인 듯합니다.
하여간 이삭여뀌는 대부분의 여뀌 종류와 함께 논이나 밭 작물의 생육을 방해하는 식물입니다. ‘잡초’라 부르는 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 이삭여뀌 역시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잘 자라는 식물이지요. 작물을 잘 키워야 하는 농부들에게라면 필경 아무짝에 쓸모 없는 식물이겠지만, 수목원 한 켠에 보금자리를 틀고 자라는 이삭여뀌를 놓고는 그렇게 쓸모없는 식물이라는 말은 하지 않게 됩니다. 특히 가을에 꽃 피울 때 그렇습니다. 좁살처럼 작은 알갱이를 빨갛게 다닥다닥 돋우며 피어난 이삭여뀌는 새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삭여뀌를 이야기하면서 여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우리 농촌 옛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이 꽃을 이용해서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지요. 그런 걸 천렵이라고 하지요. 여뀌의 꽃을 따서 돌로 짓찧어 낸 즙을 개울에 풀면, 물고기들이 순간적으로 기절을 한 답니다. 그때 물 위에 떠오른 물고기들을 그냥 건져내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여뀌의 꽃에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그런 건데, 이 독성이 그리 심한 게 아니어서, 기절했던 물고기도 금세 회복될 뿐 아니라, 사람에게는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잡초가 아니라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눈에 띄는 것 위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단박에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해도 모든 식물들은 나름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원리에 충실히 살아갑니다. 물론 그 동안 천리포수목원의 식물들을 두루 소개하려 한 저조차도 제 눈에 잘 띄는 식물 위주로 이야기했던 게 사실일 겁니다. 하기야 눈에 띄지 않는 식물들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을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러다보니, 우리 수목원을 십년 넘게 오가면서도 여태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식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식물을 관찰하고 비교적 꼼꼼하게 정리한 메모 수첩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종류는 우리 수목원이 가지고 있는 식물의 종 수인 1만5천 종의 절반도 채 안 되니까 말입니다. 잡초가 아니라 해도 우리들의 관심은 늘 그렇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위의 사진은 Elaeagnus x ebbingei 'Limelight'라는 이름의 식물입니다. 제가 우리 수목원에서 처음 본 식물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 동안은 이런 존재가 있었는지 몰랐던 겁니다. 사실 꼼꼼히 뒤지지 않았다면 이번 가을에도 이 친구가 꽃을 피웠다는 걸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우리 수목원 윈터가든의 뿔남천이 서있는 가운데에서 미선나무가 자라는 좁다란 사잇길 옆에 서있는 작은 키의 나무인데, 지나치면서도 꽃이 피어있는 줄 몰랐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작은 꽃이 무성하게 피었지만, 흰 빛이 그리 밝지도 않고, 꽃잎에 무수한 점이 박혀 있으니,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거죠. 좁은 길을 조심조심 지나다가 문득 뭔가 생경한 느낌이 있어서 지나친 길을 되돌아와 살펴보니, 아 글쎄. 이리 엄청나게 많은 꽃이 조롱조롱 피어있었습니다. 꽃에 점이 박혀있는 것을 빼놓고 보면, 보리수나무(Elaeagnus unbellata)의 꽃과 같은 모양입니다. 우리 수목원에서는 처음 보는 식물이지만, Elaeagnus x ebbingei 'Limelight'는 보리수나무과에 속하는 품종이었던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꽃 송이 하나하나는 보리수나무의 꽃과 똑같습니다. 비슷한 식물로 보리밥나무(Elaeagnus macrophylla), 보리장나무(Elaeagnus glabra) 등과도 꽃의 모양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절집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리수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라는 것입니다. 절집에서 말하는 보리수나무는 대개 피나무과의 보리자나무(Tilia miqueliana)를 잘못 부르는 이름입니다. 이 보리자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는 지금 이야기하는 보리수나무가 절집에서 말하는 보리수나무와 다르다는 것만 말씀 드립니다.
이제 완연한 겨울입니다. 12월 들면서 제게도 조금씩 시간의 짬이 드러나는 듯해서 마음은 한결 푸근합니다. 유난히 지난 학기에 만났던 학생들의 성의가 돋보였던 까닭에 이번에 오는 긴 겨울방학은 더 푸근할 듯합니다. 식물들도 겨울방학에 들어갈 채비를 모두 마친 듯합니다. 모두에게 그런 푸근한 겨울 되시기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이탈한 자가 문득 > 풍경 너머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을 하는 순간, 사랑을 느끼는 순간 (0) | 2010.12.13 |
---|---|
고려불화 보낸 중앙박물관, 실크로드 맞는다 (0) | 2010.12.07 |
[천리포 이야기 II] 어수선한 가을 보내고, 평안한 겨울 맞이하기 위해 (0) | 2010.11.29 |
사람은 가끔 시험 받을 필요가 있다 (0) | 2010.11.26 |
[그림]Rho Sook Ja, (0) | 2010.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