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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달의 뒤편· 2

by 丹野 2010. 10. 22.

 

 




달의 뒤편· 2  / 김경성


     -우물



그렇게 많은 달의 즙을 삼키고도 가득 차서 넘치는 법이 없다

기다림만 잔뜩 무는 하루는 길었다

달을 찾으려고 그 많던 물 다 퍼내고 맨발로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있었다

물이끼 긁어내고 바닥이 드러나도록 닦아도 달은 보이지 않고

모서리에 박혀서 빠지지 않는 사금파리 조각 발바닥을 찔렀다

다시 물이 차오르고,

우물에서 빠져나와 밤마다 달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의 장미꽃잎 같은 가슴 안쪽에도 달의 즙이 스며들었다

미나리꽝 쇤 미나리 꽃 피어 잎 희뜩거렸다

달을 삼키고, 해를 삼키고, 바람마저 삼키는 우물

바람 서늘해지니 물이 따스해졌다

나도 그만 자박자박 그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서 얼굴을 묻었다

물컹, 달이 만져졌다

 

 

 

-「시와 세계」2010년 새로운 시

 

 

 

* 시 읽기

 

  달과 우물은 화자를 표상하는 객관적 상관물일 것입니다. 화자는 그 무엇을 구하기 위하여 깊은 우물 속에 뛰어들었을까요, 생사를 건 광기를 부릴까요? 우물 속에 맨발로 들어가 사금파리에 발을 찔리기도 하면서 구하는 것! 좋은 詩의 탐착, 혹은 지고지순한 생의 탐색이겠지요.

 

  시인은 능청스럽게도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 달을 찾으려고 그 많던 물 다 퍼내고 맨발로 우물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고 기망합니다만 정작 달을 찾으려고 우물 속에 뛰어든 사람은 화자 자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끼 긁어내고 바닥이 드러나도록 닦아도 달은 보이지 않” 습니다. / 다시 물이 차오르고, / 우물에서 빠져나와 밤마다 달을 베고 잠이 들었다 /는 시인이여, 애면글면 좋은 詩를 꿈꾸며 잠든 것이겠지요. 그러자 “장미꽃잎 같은 가슴 안쪽에도 달의 즙이 스며들었” 으며 개화를 멈춘 쇤 미나리도 꽃이 핀 것이겠지요. 그 우물은 다시 “달을 삼키고, 해를 삼키고, 바람마저 삼” 키고, 하물며 바람이 서늘해도 따스한 물! 물은 사람의 생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며 뼈를 깎는 고통이 낳은 옥동자일 것입니다.

 

  이 시에는 은근한 방식으로 남성성이 없는 듯 존재합니다. 시인은 13행에 이르러 마침내 “나도”라는 언술로 화자가 직접 개입합니다. / 자박자박 그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서 얼굴을 묻었다/는 그 사람, 이 좋은 시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닐까요. 시인과 술, 광기를 점화하는 미량의 극독이겠지요. 술에 취해 달을 잡으려고 물속에 뛰어든 이태백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술 한 잔 하지 못하는 김경성 시인께서 우물 속에 뛰어든다면 나는 목숨 걸고 말릴 것이다.  (시인 조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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