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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수백마리 백로들의 힘겨운 사투

by 丹野 2010. 7. 25.

‘톱질’에 맞선 수백마리 백로들의 힘겨운 사투

경향신문 | 경향닷컴 이상철 기자 | 입력 2010.07.25

 
 
마구잡이로 잘려 쌓여있는 나뭇가지들. 그 위로 살아남은 백로들이 여전히 떼를 지어 앉아있다. 전날까지 장맛비가 내린 탓일까. 훗훗한 기운이 가녀린 생명들의 몸을 휘감는다. 24일 오전, 수백마리의 어린 백로들은 열흘 넘게 버거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둥지를 잃어버린 백로들이 잘려진 나무 더미 위에 흩어져 앉아있다. 이상철 기자
경기 고양시 사리현동 32번지. 한적하고 아늑한 환경에 인근 하천에 먹이도 많아 수년전부터 백로들이 모여들어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며 여름을 나는 곳이었다.

둥지를 잃어버린 어린 백로 두마리가 잘려나간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다. 이상철 기자


어린 백로가 물 웅덩이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먹고 있다. 이상철 기자
그러나 지난 12일과 13일. 귀청을 찢는 전기톱 소리와 중장비의 굉음이 이곳을 휩쓸었다. 당일 현장에서만 150여마리의 백로가 죽었다. 몸을 다쳐 치료했지만 끝내 폐사한 백로도 23일까지 약 140여마리에 이른다. 100여 마리는 경기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주주테마동물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고양시 백로를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는 13일부터 현장에서 백로 구조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대책위는 서식지 보존 및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통제라인을 설치하고 3곳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백로의 먹이를 공급하고 있다. 몸이 약하거나 어린 백로들은 별도의 격리된 공간을 마련해 성장을 돕고 있다. 24일 현재 현장에는 350여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둥지를 잃어버린 어린 황로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다. 이상철 기자
대책위는 "아무리 사유지라 하더라도 1천여마리가 넘는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이루고 생명을 잉태하던 곳을 무차별로 훼손하고 파괴하는 개발주의 행태에 분노한다"라며 "야생 동식물의 보호를 위한 구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합리적인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어 "오로지 개발과 이익을 위한 무도한 행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며 "실효성이 없는 현행 < 야생동물보호법 > 개정과 <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조례 > 룰 제정하는 시민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로를 지키기 위한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백로를 훨훨 날게해주세요"라는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상철 기자

경향닷컴 이상철 기자 rigel@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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