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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詩

키 큰 나무 / 나호열

by 丹野 2010. 6. 12.

 

 

키 큰 나무 / 나호열

 

 

 

1
  슬플 때면
  팔 뻗쳐 푸른 하늘
  한 장 뜯어내어 눈물 닦고
  그 손마저
  발 밑에 버리고
  
  2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를 붙잡고 욕설처럼 내뱉는 삶의
더러움에 대하여
  늦은 밤 식은 오뎅 국물 흘리며 포장마차를 끌고 가는
늙은 부부에 대하여
  죽음을 앞두고 새벽기도회에 나서는 이웃들에 대하여
  더 이상 떠날 곳이 없는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3
  예고되지 않은 빙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뒷덜미에 내리꽃히는 불확정의 겨울
  살아 있으나 수동형의 두려움에 묶인 서늘한 등줄기  
  다시는 봄이 오지 않으리라는 안타깝게 業치는 팔의
노동과
  깊은 흙내음에 취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가닿는 어질
한 뿌리
  누구에게든 집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발 밑에 퇴색한 깃발로 쌓여가고 있었다

  4
  바라보았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바라보고 싶다는 꿈 하나를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어디에선가 나를 찾는 사람에게 이정
표가 되는 것, 더 키를 세우고 이 겨을 잠들지 않도록 바
람의 매, 그 회초리를 즐거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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