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있다
빈 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 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 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다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 나절을 몇 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계간 『창비』 2009년 겨울호
저 돌 / 복효근
돌이 목련을 피웠으리
내 안에 박힌 돌을 어쩌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때
목련나무 아래 아주 오래된 큼직한 돌덩이 보았네
내 안엣 것은 어쩌지도 못하고
목련나무 아래 저 돌부터 어찌해보자고
돌을 파내려 겨우 들췄을 때
거기 오글오글 모여있는 것들
돌을 지붕 삼아
어둠을 집 삼아
가느다란 목련의 실뿌리들이 얽혀있었네
저 돌로 실뿌리들이 아플 때
돌을 싸안고 무작정 꽃 피웠으리
돌은 돌대로 세상과 맞장뜨다가
깨어지고 금간 흉터에 목련의 하얀 실뿌리를
붕대처럼 휘감고 목련의 눈물을 훔쳐주었으리
저 무모한 공생을 훔쳐본 날
나도 내 안에 박혀 여문 돌 가만 쓸어보았네
계간 『시안』 201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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