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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세상과 세상 사이

노고단 기행

by 丹野 2010. 3. 20.

 

 

 

노고단 기행

 

                                                          나호열

 

 

첫째 날 노고단에 오르다

 

 광복절 짧은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남녘 지리산 자락 연곡사 부도를 보러 가자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져서 사학자 김용은 박사와 함께 길을 떠났다. 첫 날은 노고단을 오르고 이튿날 화엄사와 연곡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하룻밤 묵을 숙소는 화엄사 밑에 있는 콘도로 정하고 아침부터 내려 쬐는 햇살은 따가운데 피서철을 지난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네 시간을 달리는 내내 장엄한 초록의 물결이 하늘과 맞닿아 출렁거리고 있었다.

산은 직접 올라도 좋지만 멀리서 유장하게 흘러가는 능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도시의 답답한 직선의 벽들이 차단과 구분의 경계인 것과 달리 지리산의 길고 장엄한 마루금은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쉬엄쉬엄 눈길을 이끌며 산 너머 세상의 풍경을 간지럽힌다.

 

 산채 비빔밥으로 느긋한 점심을 마치니 머리 위로 여름 해는 강렬한 老炎을 쏟아 붓고 있었다. 오늘은 노고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지리산은 서쪽 끝의 노고단(1507m), 서쪽 중앙의 반야봉(1751m) , 남한 내륙의 최고봉 천왕봉 (1915m)등 3봉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00여 리,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능선만 40 킬로미터를 넘나드는 거대한 산악군으로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에 걸맞는 위용을 자랑한다.

 

어려운 발걸음을 했으니 천왕봉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욕심이지만 짧은 여정으로는 어림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의 올림픽 구호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산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고 하지 않고 산에 든다고 한다.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 산을 우러르는 사람에게만 산의 가르침은 깊이 사무치는 법.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태에 나도 모르게 염습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요즘은 하루거리로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소개되어 있을 정도이니 자신을 더 낮추고 더 느린 걸음으로, 그래서 남보다 덜 나아가는 수행은 세상만사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노고단 가는 길 (화엄사에서 연기암 가는 길)

 

 화엄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은 약 7킬로미터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화엄사까지 내려오는 계곡을 오른쪽에 두고 코재에서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길목까지가 7킬로미터이고 노고단 정상은 그곳으로부터 약 2킬로미터를 더 가야하므로 화엄사에서 노고단 정상까지는 4시간 정도를 잡아야 할 거리인 것이다. 여름 해가 긴 탓에 빠른 걸음이라면 저녁 걸음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화엄사 밑 너른 주차장 오른쪽 숲길은 녹음에 우거져 언뜻 보이지 않지만 차도가 있다. *연기암까지 가는 길이다. 화엄사 옆 개울을 건너 연기암까지는 2킬로미터, 차로 가는 길은 3.8킬로미터이다 2킬로미터 산길을 걸으면 3,40 분이 걸릴 것이고, 차로 가면 10분이면 넉넉할 것이다. 차도로 걸으면 어떨까? 선택은 마음가짐에 따라서 달라진다. 숲내음을 맡으며 타박타박 걷기, 정담을 나누며 나란히 걷기, 시간을 아껴 다음 일정을 메꿔 나가기. 마음은 이미 기울어 날도 덥고 노고단까지 오르는 길이 어떨지 모르니 다리 힘을 아끼려면 당연히 차로 연기암까지 쏜살같이 달려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유혹을 떨치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수고롭게 그늘 우거진 산길을 걷는 것으로 한다. 연기암까지 가는 숲길은 호젓하고 정비도 잘 되어 있고 계곡 물도 바로 옆에서 뛰어 내려와 그리 힘든 길은 아니다.

 

노고단으로 가는 산행은 연기암 입구부터 본격적으로 가팔라진다. 계곡은 저 발치 아래 떨어져 내리고 제법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숨을 턱 밑까지 차오르게 한다. 우리처럼 노고단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까지 오르는 코스를 선택하므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산행의 묘미를 알고 느끼는 사람들이 아니면 쉽사리 오를 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혼자 배낭을 짊어지고 앞에 가던 젊은이는 바위 턱에 앉아 한참을 쉬다 내려가고 우리 발자국 소리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다. 느닷없이 화사花蛇 한 마리가 숲길을 가로질러 간 후 온 몸의 땀방울들이 소름으로 돋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요즘에야 산이건 물이건 인간의 입장에서는 삶의 도구일 뿐이지만 나무에, 돌에, 산에, 들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이야말로 경건함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살찌웠는지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신화와 설화, 구전되어오는 전설 속에서 오늘날 微物로 취급 받는 자연들이 인간의 반면교사였던 것을 되짚어보는 것은 단지 뱀 한 마리에 놀란 내 자신을 꾸짖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老姑는 신라의 첫 번째 왕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높여 이른 말이다. 노고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시고 나라 신으로 받들어 봄, 가을에 제사를 올렸다는 神壇이 있었다는 얘기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인간의 보잘 것 없음을 경계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때 산에 오른다는 것은 마땅히 신령의 품으로 든다는 의미로 고개 숙여야 마땅하다.

 

 화엄사에서 코재를 넘으면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길을 만난다.

                              노고단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노고단 정상이 눈 앞에 아른거리다가 사라질 때쯤, 청명했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휴식을 취하니 발 아래 세상은 온통 구름밭이다. 지리산 팔경 중의 하나인 老姑雲海가 바로 이것인가! 비와 섞인 구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고 한 때 人跡에 수난을 당하여 황폐해졌던 30여만 평의 원추리 군락지는 노고단 출입제한 조치에 힘입어 제법 그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7월 말에서 팔월 다 가기 까지 붉은 원추리의 향연을 만날 수 있으나 노고단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감상을 위해서는 사전에 출입 시간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하여 하산을 서두르면서 지금은 폐허로 버려져 있는 외국인 별장을 둘러본다. 일제 강저기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여름 휴양소로 만든 벽돌 건물들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는데 이 靈山 꼭대기까지 人工의 부질없음을 지고 올라왔을 어리석음이 비단 그 옛날 서양들만의 행태만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쓸쓸하다. 날이 저무는데도 성상재 휴게소에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오는 젊은 부부도 있고, 무거운 배낭을 매고 천왕봉이나 반야봉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천은사에서 달궁에 이르는 37킬로미터의 이른바 지리산관광도로는 성삼재 휴게소에 차를 머물게 하고 손쉽게 노고단에 오르게 함으로써 이제 노고단은 힘들게 땀흘리며 오르는 산길이 아니라 관광코스가 되어버렸다. 천은사 입구에서 성삼재로 오르려면 곧잘 시비가 붙는다. 천은사에서 거두어들이는 통행료 때문이다. 천은사에서 시암재에 이른 산록이 천은사 소유이기 때문에 뱀사골 달궁 쪽에서 내려오는 차들은 통행료를 받지 않지만 반대쪽으로 주행하는 차들은 통행료를 내야 한다. 시비곡절이야 어쨌든 그리 유쾌한 일은 되지 못하고 천 미터가 넘는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과 동물들의 이동통로를 막으므로 해서 야기되는 생태계 파괴는 지리산 관광도로의 전면 폐쇄나 아니면 지리산 곳곳에 케이블 카를 놓아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번져 오늘날에도 설왕설래가 그치지 않는다.

무엇이 생태계를 살리고 지역 경제를 살리며 나아가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을 느끼고, 이해하며, 나아가서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라는 생각이다.

 

불편을 감수하라! 수고를 아끼지 말라! 더디게 오르라!

 

둘 째 날 아름다운 집 - 상사화와 부도

 

어제 저녁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어두운 길을 오르는 몇 사람을 지나쳤다.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걸머지고 묵묵히 고개 숙이고 산길을 올라오는 그들은 아마도 노고단 대피소에서 일박을 하고 지리산 일출을 맞이하거나 오랜 종주를 거쳐야 할 것이다.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지만 그들이야말로 정말 산을 사랑하고 산에 대하여 외경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의 극기를 실험하기 위해서,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서 저문 밤을 오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화엄사로 내려올 때까지 몇 사람을 마주쳤지만 그들은 모두 단독 산행자였다. 경박한 발걸음으로 뒤쫓아 오는 어둠을 피했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어둠을 헤치며 고독해지는 행복한사람들이었다.

 

                        화엄사 입구 배롱나무가 붉다

 화엄사 각황전과 석등..그리고 대웅전 앞의 탑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화엄사는 분주했다. 伯仲이면서 하안거 해제일이어서 경내에는 발걸음이 또박거렸다. 우리 역사와 함께 한 불교는 산 속 깊이 한 송이 꽃처럼 절들을 피워올렸다. 오늘날과 달리 사람도 드물고 길은 더욱 아득했던 시절에 생사에 대한 간절한 해답과 희구가 없었다면 이렇게 풍성한 볼거리와 생각거리가 후대에 남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서 깊은 절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엄사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신라 진흥왕 때 인도 승려 연기가 세웠고, 선덕여왕 때 자장이 세웠다는 등 여러 설이 있었으나 1979년에 발견된 신라화엄경사경 新羅華嚴經寫經에 신라 경덕왕 때 황룡사 승려 연기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의 논쟁은 불필요할 것이다.

 

 나와 같이 불심도 없고 사찰의 건축 구조나 의미를 띄엄하게 아는 사람들에게도 눈치는 있는 법이어서 사찰마다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지형에 맞게, 절의 살림살이에 맞게 건축물의 구도와 배치가 다른 것을 알 수는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교리에 어긋나게 하는 법 없이 나름의 멋을 추구하는 재치를 느끼는 것 만으로도 절 구경은 충분할 것이다. 가장 큰 존숭의 대상인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이나 그 사찰의 주존불을 모신 법당은 한 눈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일직선으로 가다가 몸을 틀고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아침햇살에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더욱 붉고 북쪽 산기슭에 등을 기댄 각황전의 우람한 모습을 보니 옹졸한 가슴이 팽창하는 느낌이다. 우리니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불전이라는 覺皇殿은 조선 숙종 때 169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4년 만에 완공을 한 우리니라 국보 제 67호 이다. 겉으로는 2층 구조이지만 안에서 보면 통층 구조이어서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그 위압감이 대단하다. 각황전에 걸맞게 그 앞의 석등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으로 높이가 6 미터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석등이라는 말도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어 그 자리에 현존하는 각황전보다 더 우람한 불전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각황전을 옆으로 돌아가면서 한 무리의 상사화를 만났다. 오래 전 선운사 앞 마당에 핀 상사화를 보려고 몇 번이나 발걸음을 했었는데 끝내 보지 못하였던 서운함을 달래려고 쓴 시가 있다.

 

두두둑 목 부러지는 동백도 아니 보고/ 그리운 상사화 아직도 피지 않아

발길 또 서운해지려 합니다

마음 눈 맑지 않으면 바위 속으로 숨어버리는 / 마애불 찾지 못하여 못내

서운해지려 합니다//

동백도, 상사화도 마애불도/ 너의 마음 속 / 비결처럼 숨어있다고

그립고 사무치는 일 조금은 서운히 남겨두는 것이 / 사는 기쁨이라고

저만치 올라오는 산객이/ 모른 척 지나가며 일러줍니다

시 「도솔암 가는 길」전문

 

                                                                    사사자삼층석탑

 

 조금 모자라고 안타까운 아쉬움을 남겨두면 이런 기쁨을 만나게 되는가! 사슴처럼 길게 목을 끌어올리고 고아한 뿔처럼, 맑은 부끄러움 같은 얼굴처럼 상사화는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행운이란 이렇게 뜻밖에 찾아오는 것이다. 간절하게 바라던 일은 오늘을 살아 받아들이는 감사함으로 눈물겨운 것이다. 각황전을 뒤로 하고 오르는 계단은 동백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사자삼층석탑은 그 앞에 석등으로 인해 더욱 눈시울이 붉다. 조금 전 만났던 상사화의 내력처럼 네 마리의 사자가 받들고 있는 탑은 월악산 자락의 그것에 비해 감흥은 덜 하지만 석등 쪽에서 탑을 바라보면 묘한 조화에 떨림이 온다. 탑 앞의 석등 안에 무릎 꿇고 삼층 석탑 안에 합장한 스님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모습은 구전되어 오는 설화처럼 어머니에 대한 효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아도 오래 그 자리에 머물며 자신만의 悔悟를 느끼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각황전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계단 .상사화가 한창이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연곡사로 향한다. 하동가는 국도를 따라 가다 연곡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피아골 입구에서 반야봉으로 오르는 끝 마을인 稷田里 가는 길을 잡으면 연곡사 매표소가 보인다. 여기서 더 올라가면 직전리에 닿고 차는 더 이상 갈 수 없다. 8월 중순 땀을 식히기 위해 들어간 연곡천 계곡물은 이미 찬 기운이 가득 서려 있다. 연곡사 화엄사와 더불어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는 하나 믿을만하지는 않고 우리가 보려고 하는 부도를 볼 때 나말여초에 융성했던 사찰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산지가람과 달리 평지가람의 형태인 연곡사는 화엄사와는 달리 인적이 없다. 멀리 개짖는 소리만 우렁하고 스님들도 대중들도 보이지 않는다. 사찰의 부침도 인간사와 다를 바 없어서 본사가 말사가 되고 말사가 본찰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절 입구의 떨어진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천상으로 올라가 성불한 그 누구의 벗어놓은 신발 같을 뿐이다.

 

 

                                                         연곡사 입구

 

 구 한말 의병장 고광순이 1907년 수 백의 의병을 이끌고 진을 친 곳이 연곡사였기에 일본군의 무참한 진압 작전에 사람도 절도 살육과 병화의 참상을 이기지 못하였는데 세 점의 부도와 한 점의 부도비, 한 점의 삼층 석탑이 의연할 뿐이다. 대웅전 뒤쪽 산기슭에 동부도가 있고 그 위쪽으로 백 오십 미터를 더 올라가면 북부도, 북부도에서 다시 북서 방향으로 비탈길을 백미터쯤 내려오면 서부도가 서 있다. 부도비가 소실되어 부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동부도와 북부도에 비하여 서부도는 명확하게 그 주인이 조선 중기의 소요대사 임을 알려주는 명문이 몸돌 안에 새겨져 있다. 완벽하게 원형으로 남아 있는 동부도와 동부도 보다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북부도는 거의 형태가 비슷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으나 화려함과 세밀함, 허공을 향해 적당히 솟아오른 높이의 균형과 몇 果의 사리로 담겨졌을 어느 선사의 정신의 고매함이 느껴져 절로 탄성이 새어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入寂의 당사자는 결코 바라지 않았을 터이지만 구도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남겨진 사람들은 천 년 후 우리들에게도 손에 잡히지 않는 공안을 던지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다. 이를 일러 아름다운 집이라고 한다면 내게 손가락질을 할 사람이 있을까? 부디 어려운 발걸음을 이곳 피아골 연곡사로 돌려 보시라! 당신은 얼마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연곡사 동부도 

 

 

아름다운 집 2

- 燕谷寺 동부도

 

백중날 피아골 절집은 비어 있다 하릴없이 바람이 지나가는지 배롱나무는 허물 대신 붉은 꽃잎을 퉤퉤 내뱉고 누렁이는 산쪽으로 귀를 세운다

 

태어나면서 꽃으로 피고

살면서 꽃으로 지고

죽어 장작더미에 올라 마지막으로

훨훨 꽃으로 너울대었으니

 

창도 없고

문도 없는

돌의 정적에 천 년을 사는구나

 

*緣起庵은 화엄사의 원찰로서 백제 성왕 때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본문에 밝힌 바와 같이 그 연기조사가 인도 승려인지 아니면 황룡사의 승려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2008년 조성된 문수보살상은 좌대 5m, 보살상 8m, 광배 13m 의 석조물이다. 연기암은 화엄사의 부속암자라고 하기엔 규모가 크다. 경내에서 내려다 보이는 섬진강의 조망은 으뜸이다.

 

 * 월간 <<예술세계 >2009년 8월호 게제  

 

출처 / 세상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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