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r a h a
제주도 시에 나타나는 공간성
이태희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
──문충성, 「제주바다·1」
1.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봄이면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유채꽃,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 깎아 지른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장쾌한 폭포들, 섬의 중앙에 우뚝 솟은 한라산, 가을이면 오렌지 향기 날리는 제주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 탓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해외로의 여행이 부쩍 늘었지만, 국내 관광의 1번지는 단연 제주도였다. 때로 짙은 안개와 거센 비바람이 관광객의 발길을 묶지만 그것조차도 신비로운 제주의 자연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을 호사스럽게 누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제주도민들에게는 제주도가 뭇사람들의 발길에 관광지화되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앞에 인용한 문장은 스무 해 전에 나온 문충성의 시집 『제주바다』의 표제작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필자의 발목 아니 손목을 잡아 당기는 저 문장의 악력을 피하여, 제주를 배경으로 한 시편에 나타나는 공간의 의미를 살피는 데 이 글의 목적을 둔다.
먼저 신화 속으로 떠나 본다. 고대 신화 속에서 제주도는 신인이 솟아난 땅이다. 옛기록에 따르면 태초에 제주에는 사람과 가축과 곡식이 없었는데 홀연히 세 신인이 땅으로부터 솟아났다고 한다. 그 신인들은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인데 이들은 모두 용모가 비범하고 도량이 활달하여 세상의 속됨이 없었다고 한다. 이 신인들은 어느날 동해 바다에서 떠내려온 나무 궤짝에서 나온 세 공주와 베필을 맺고 그 속에 들어있는 소와 말과 오곡의 종자를 얻어 기르니 날로 번성하게 되었단다. 이 신화는 고대신화에 나타나는 신의 탄생유형 중 ‘지중용출형’으로 유명한데,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드물다. 신인들이 땅에서 솟아났다는 의미를 온전하게 밝히기는 어려운 일지만, 필자는 이 신화에서 솟구치는 활화산의 이미지, 불쑥 불쑥 솟아있는 오름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한편, 이 신인들의 이야기와 달리 제주도 창제설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설문대할망은 엄청난 거인으로 알려졌는데,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바다에 닿아서 발로 물장구를 칠 정도였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서 쏟아부은 것이 한라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설문대할망에게는 속곳이 없어 제주도 섬사람들이 할망의 속곳을 한 벌 지어주면, 섬사람들의 소원대로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기로 하였단다. 그런데 섬 안의 무명을 전부 모아도 99통 밖에 안 되어 결국 할망도 다리를 놓아주다 말았단다. 문충성 시인은 이 전설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가난한 섬사람들 무명 한 통이 모자라
모으고 모으고 섬 안에 있는 무명 다 모아도
마침내 설문대할망 속곳 못 지어냈네
제주 바다 건너가는 연육連陸의 꿈은 산산산
가난하게 깨어져 절해고도
제주섬은 영원한 섬으로 남아
가난과 한숨의 땅이 되고 설문대할망은
한라산 베개삼아 누워
제주 바다에 두 발을 담그고 참방참방
모진 세상살이 파도도 지어내고
그 세파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내고
설문대할망은 아무리 가난 가난해도
아들 오백 키우며 섬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였네 눈물은 어디서 오나
──문충성, 「설문대할망」 중에서
설문대할망의 이야기에 스며있는 제주도 사람들의 소망은 ‘연육의 꿈’이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그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시인은 그래서 제주섬이 ‘가난과 한숨의 땅’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설문대할망을 모진 세상살이의 파도를 지어낼 뿐만 아니라 그 세파를 이겨내는 인내심도 길러내는 존재로 그려낸다. 이야기 속에서 설문대할망은 한라산 물장오리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시인은 설문대할망의 죽음을 “설문대할망은 점점 더 빠져들면서/ 제주 바다 아득히 끝간데/ 손금 죄 풀어 수평선을 지어내고/ 한마디 말도 없이 깊이 없는 물장올이/ 깊이를 만들어냈데 마침내/ 설문대할망은 눈물 한 방울로/ 이 세상 삶과 죽음의 깊이 찾아냈네”라고 노래한다. 설문대할망은 제주의 창조신이며, 슬픔과 기쁨,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된 것이다. 여신의 죽음은 한라산 물장오리의 깊이, 나아가 제주의 역사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중국의 창조신 반고의 죽은 몸이 이 세계를 구성해 가는 원리와 같다. 할망은 섬과 한 몸이 된 것이다. 그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는 이어도 전설로 이어지고, 제주 아낙네들은 민요가락 <이어도사나>를 부르며 모진 세월을 견뎌온 것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고통이 없는 꿈의 섬이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는 그러한 꿈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루고 있다. 제주의 신화와 전설 속에는 제주 섬사람들의 꿈과 의지가 녹아있다.
다랑쉬오름 - 잃어버린 마을의 느티나무 / p r a h a
2.
삼국시대 이전까지 제주도는 탐라라는 이름의 독립국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백제와 신라의 지배를 받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세워지자 탐라는 처음에 고려에 예속되길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탐라가 고려의 한 군이 된 것은 숙종 10년인 1105년 5월이라고 한다. 이때에 고려는 탐라라는 국호를 폐지시키고 탐라군을 설치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중엽 몽고의 침략에 항거하여 싸웠던 삼별초의 항쟁은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마지막 항쟁터가 바로 제주도였다. 이후 숱한 민란과 소요가 끊이질 않았으며, 파란의 역사를 간직한 땅 제주도는 특히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배의 땅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왕조 5백년간 약 3백 명에 이르는 많은 국사범들이 이 섬에서 귀양살이를 했는데, 그 중에는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도 있고, 송시열과 최익현 같은 학자도 있다. 한편, 추사 김정희 역시 제주에 유배와서 유명한 <세한도>를 그리기도 하였다. 허허로운 벌판에 허름한 오막살이 한 채와 그 양편으로 늘어선 잣나무와 소나무의 기개는 그가 그림에 적어 놓은 논어의 한 구절─“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처럼 그의 올곧은 선비정신을 드러낸다.
이와 같이 숱한 민란과 유배의 땅이었던 제주도, 그 역사적 상처와 고통은 현대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8년 4월 3일. 이른바 제주 4.3사건으로 불리는 항쟁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따라비, 좌보미, 비치미 오름 건너
높은오름, 동검은이, 용눈이 끼고 돌면,
하늘에 여왕의 치맛자락 턱 하니 걸려 있다.
다랑쉬, 이삿날 슬쩍 내다버린 저 놋화로
불 한 번 토해놓고 잠시 쉬는 분화구여
화산탄 날아간 자리, 증언하라. 꽃향유
증언하라, 그 자리 오로 숨던 다랑쉬동굴
소개령 끝난 반세기 댓잎들은 돌아와도
4·3의 ‘4’자도 금했던 역사는 갇혀있다.
왕릉이 아니라데, 피라밋도 아니라데.
무자년 솥과 사발, 녹 먹은 탄피 몇 개
한 마을 이장해 가듯, 고총 같은 동굴이여.
──오승철, 「다랑쉬오름」 전문
지난 1992년 4월에 다랑쉬오름의 한 작은 동굴에서 11명이나 되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이들은 4.3의 참화를 피하기 위해 1948년 12월 경 이곳에 숨어들었으며 소개령에 의해 양쪽 구멍에 불을 놓아 질식해 죽은 것으로 발표되었다. 오승철의 시조는 이러한 내용을 그린 것이다. “한 마을 이장해 가듯, 고총 같은 동굴이여”라는 탄식은 제주의 현대사의 아픔을 극명하게 전한다.
다랑쉬오름 / p r a h a
3.
우리 현대시 가운데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세 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정지용의 「백록담」을 들 수 있다.
1.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소모된다. 한 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 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하다. 산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아도 뻐꾹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암고란巖古蘭,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白樺가 촉루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白樺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 육천 척 위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 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소를 송아지가 어미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어진다.
6.
첫새끼를 낳노라고 암소가 몹시 혼이 났다. 얼결에 산길 백 리를 돌아 서귀포로 달아났다. 물도 마르기 전에 어미를 여읜 송아지는 움매―움매―울었다. 말을 보고도 등산객을 보고도 마구 매어달렸다. 우리 새끼들도 모색毛色이 다른 어미한테 맡길 것을 나는 울었다.
7.
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솨―솔소리, 물푸레 동백 떡갈나무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가 다시 칡넌출 기어간 흰 돌바기 고부랑길로 나섰다. 문득 마주친 아롱점말이 피하지 않는다.
8.
고비 고사리 더덕순 도라지꽃 취 삿갓나물 대풀 석용별과 같은 방울을 달은 고산 식물을 새기며 취하며 자며 한다. 백록담 조촐한 물을 그리어 산맥 위에서 짓는 행렬이 구름보다 장엄하다. 소나기 놋낫 맞으며 무지개에 말리우며 궁둥이에 꽃물 이겨 붙인 채로 살이 붓는다.
9.
가재도 기지 않는 백록담 푸른 물에 하늘이 돈다. 불구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조차 잊었더니라.
──정지용, 「백록담」 전문
이 작품은 1939년 4월 『문장』지 제3호에 발표되었다. 이에 앞서 정지용은 1938년 8월에 <조선일보>에 한라산 등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수필 「다도해기」를 연재한 것으로 미루어, 「백록담」은 1938년 경의 제주 여행을 바탕으로 창작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 투영된 한라산(백록담)은 ‘피폐한 정신의 회복과 상승을 꾀하는 공간’이다. “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꽃 키가 점점 소모”되는 극한의 상황에서 화자는 결국 “기진”하게 된다. 그러나 화자는 “암고란巖古蘭, 환약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아”나 “가재도 기지 않는” 청정한 백록담에로의 등반을 멈추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노정되는 제주의 자연은 “풍란이 풍기는 향기, 꾀꼬리 서로 부르는 소리, 제주 휘파람새 휘파람 부는 소리, 돌에 물이 따로 구르는 소리, 먼 데서 바다가 구길 때 솨―솨―솔소리”에서처럼 생명력 충만한 공간이다. 이러한 자연과 “취하며 자며” 이루어낸 합일의 세계가 바로 「백록담」이 지향하는 세계다. 정지용은 해방 후에 발표한 어느 산문에서 “『백록담』을 내놓은 시절이 내가 가장 정신이나 육체로 피폐한 때”였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정지용의 백록담은 일제 강점기의 피폐한 몸과 정신을 회복시키는 구도의 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것을 ‘등산객의 버전’으로 부르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제주의 자연공간과 혼연일체가 된 구도적 세계가 훼손될 것 같지는 않다.
해방과 전쟁의 격동기를 거쳐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제주는 비로소 안정적 모습을 찾게 된다. 이후 늘어난 관광 유람객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며 이중섭의 슬프고 아름다운 생애를 노래한 김춘수의 시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젊은이들을 제주로 향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제주가 선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생진의 시 역시 제주를 동경과 낭만의 공간으로 그려낸다.
그리운 성산포 / p r a h a
바다를 본다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한 마리의 들쥐가
구멍을 빠져나와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바다를 본다
평생 보고만 사는 내 주제를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나를 더 많이 본다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1978년에 발간된 이생진의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모두 81편으로 된 연작시집이다. 이 시집의 앞에 실린 스물 네 편까지의 시들은 모두 한결같이 첫행을 “성산포에서는”으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이 시집은 시인의 말대로 ‘성산포를 고향’으로 하는 시집이다. 이 시집이 형상화하는 ‘성산포 바다’ 역시 자연과 합일의 공간이다. 시 속의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능동적이다. 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 드는 것도 바다가 시키는 것이며, 설교조차도 목사의 몫이 아니라 바다의 몫이다. 인간 중심이 아니라 자연 우위의 관점이다. 그래서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고 말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생진의 시의식은 2000년에 나온 그의 시집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 그에게 “우도로 가는 길은/ 숨겨둔 꽃을 찾아가는 나비”와 같은 설렘의 공간이다. 그에게 제주라는 섬은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무명도(우도)」)에서 보는 것처럼 외로움을 달래 줄 충족의 공간일 뿐이다. 그의 바다 사랑은 “저 세상에 가서도/ 바다에 가자/ 바다가 없으면/ 이 세상에 다시 오자”와 같이 나타난다. 이 지독한 바다 사랑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산포에서는/ 살림도 바다가 맡아서 한다/ 교육도/ 종교도/ 판단도/ 이해도” 모두 다 바다가 주관하는 일인 것처럼, 제주의 섬과 바다는 그에게 절대적 신앙이다. 이 절대적인 자연숭배적 사유는 그 시선을 자연에 고정시킴으로써 제주 섬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반면,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같은 해에 시집 『제주 바다』를 출간한 제주 출신의 시인 문충성의 시는 사뭇 그 출발부터 다르다.
누이야, 원래 싸움터였다.
바다가 어둠을 여는 줄로 너는 알았지?
바다가 빛을 켜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아니다, 처음 어둠이 바다를 열었다. 빛이
바다를 열었지, 싸움이었다.
어둠이 자그만 빛들을 몰아내면 저 하늘 끝에서 힘찬 빛들이 휘몰아 와 어둠을 밀어내는
괴로와 울었다.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 왔다.
누이야, 어머니가 한 방울 눈물 속에 바다를 키우는 뜻을 아느냐. 바늘귀에 실을 꿰시는
한반도韓半島의 슬픔을. 바늘 구멍으로
내다보면 땀 냄새로 열리는 세상.
어머니 눈동자를 찬찬히 올려다보라.
그곳에도 바다가 있어 바다를 키우는 뜻이 있어
어둠과 빛이 있어 바다 속
그 뜻의 언저리에 다가갔을 때 밀려갔다
밀려오는 일상日常의 모습이며 어머니가 짜고 있는 하늘을.
제주濟州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濟州 바다를 알 수 없다.
누이야, 바람 부는 날 바다로 나가서 5월 보리 이랑
일렁이는 바다를 보라. 텀벙텀벙
너와 나의 알몸뚱이 유년幼年이 헤엄치는
바다를 보라, 겨울 날
초가 지붕을 넘어 하늬바람 속 까옥까옥
까마귀 등을 타고 제주濟州의
겨울을 빚는 파도 소리를 보라.
파도 소리가 열어 놓는 하늘 밖의 하늘을 보라, 누이야.
──문충성, 「제주바다·1」 전문
시인의 첫시집 해설에서 한 평자가 지적한 것처럼, “제주 바다가 싸움터였다는 것만도 지식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고 할 때, “진짜 제주 바다”는 어떤 바다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싸움터”로 표현된다. 제주 “바다는/ 괴로움을 삭이면서 끝남이 없는 싸움을 울부짖어”온 “바다”이며, “한반도의 슬픔”을 간직한 공간이다. 결코 아름다운 파도가 넘실대는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 이 시의 공간은 제주의 오랜 역사의 상처를 끌어안고 있는 삶의 공간인 것이다.
위에서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몇 편의 시에 나타난 공간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정지용의 ‘백록담’이 자기 치유와 정신적 상승을 꾀하는 구도의 공간이었다면, 이생진의 ‘성산포 바다’는 인간을 겸허하게 하는 자연 신앙의 이상적 공간이었으며, 문충성의 ‘제주 바다’는 상처와 아픔을 간직한 현실적 삶의 공간이었다. 이들의 다양한 개성적 공간의 의미 창출은 어쩌면 아름다운 제주의 또 다른 미덕이 아닐지. 그것은 큰 바다와 큰 산이 온갖 섬과 온갖 나무들을 크나 큰 숨결로 제 품에 안고 있는 것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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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196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인천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오래 익은 사랑』이 있다. 현재 인천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 세상과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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