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산 / 나호열
- 민둥산 억새
긴 문장 하나가 산을 오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맹목의 날들처럼
검은 상복의 일개미들의 행렬처럼
발자국들 눌리고 덮히며 수직으로 서려는 탑인 듯
길은 꿈틀거린다
고독한 여행자 같은 가을이 느릿느릿
산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식은 땀을 흘리는 숲을 지나서
이윽고 다다르는 불의 산
긴 문장은 품사를 버리고 하늘을 우러른다
사랑을 잃은 척박한 가슴이 저럴까
막 날개가 돋은 새들이 비상하기 전에 내지르는 으악 소리가
추억을 태울 때 드러나는 하얀 불길 같다
쉬익 쉬익 능선을 타고 달려온 말 무리들
어둠별을 닮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씨앗을 날리기 위하여
바람 맞으러 왔다
혹은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길은 스스로 몸을 버렸다
시인 나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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